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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80권, 영조 29년 10월 3일 갑신 1번째기사 1753년 청 건륭(乾隆) 18년

사간 김이만이 수령의 간택에 관해 아뢰다

사간(司諫) 김이만(金履萬)이 상서(上書)하기를,

"오늘날 백성의 피폐가 심합니다. 왕년의 돌림병과 지난 겨울의 홍역으로 죽은 자가 잇단 것은 팔도가 같고, 남은 백성은 논밭이 황폐하고 집이 무너져 본토에서 안주하지 못하고 흔히 유랑하니, 마을이 쓸쓸하여 다시는 풍부하던 전일과 같지 않습니다. 불행히 또 올해도 가뭄과 장마의 재해가 있었으므로, 양남(兩南)192) 은 비록 조금 곡식이 잘되었다 하나 경기와 각도가 대체로 여물지 않은 것이 많고 전해 들은 말로는 혹 웃자란 것도 있다 하는데, 호서(湖西)제천(堤川)과 관동(關東)의 원주(原州)와 경기의 지평(砥平)·양근(楊根)·양주(楊州)·광주(廣州) 등지에 이르러서는 신이 부름받고 오는 길에 지나다가 눈으로 직접 본 것입니다. 논은 태반이 황폐하고 기장·조 등속의 곡식도 또 풍재(風災)에 손상되었으므로 가을 곡식이 성숙할 때가 되어도 항아리나 섬에 담을 거리가 못되니, 가엾은 우리 백성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아! 백성은 나라에 의지하고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니, 백성을 따르게 하여 보전하는 방책을 조금도 늦출 수 없는데, 그 요체는 오직 수령(守令)을 신중히 간택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대조(大朝)께서 신칙하신 명이 지극하지 않음이 없었거니와, 열읍(列邑)을 두루 살펴보건대, 대체로 사람을 위하여 벼슬을 선택한 것이 많고 벼슬을 위하여 사람을 선택한 것은 드뭅니다. 백성을 벗겨 자기를 살찌우는 자도 이따금 있는데 도신(道臣)의 전최(殿最)193) 는 반드시 죄다 공의(公議)를 따르지 못하고, 탄핵하는 글[白簡]에 거론하거나 수의(繡衣)가 논계(論啓)하는 것은 특히 그 천백(千百) 중에서 하나뿐입니다. 혹 장오(贓汚)를 범한 것이 다 드러나더라도 결국 감죄(勘罪)하는 것은 두어 해 동안 금고(禁錮)하거나 도형(徒刑)에 처하거나 유배(流配)하고 마는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탐오(貪汚)한 관리가 징계되어 두려워할 것이 없어서 더욱 노략질을 일삼으므로, 백성의 고통 소리가 달로 더하고 날로 심해진 것은 실로 장법(贓法)이 엄하지 않은 데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아! 한(漢)나라의 구양흡(歐陽歙)은 당세의 유종(儒宗)으로서 지위가 삼사(三事)194) 에 올랐어도 장죄(贓罪)로 사형(死刑)을 논하게 되었을 때에 제자 1천여 인이 대궐을 지키며 불쌍히 여겨 용서하여 주기를 청하였으나 광무제(光武帝)가 끝내 용서하지 않아〈옥중에서 죽었습니다.〉 법이 진실로 이러하다면 탐욕이 많은 자가 있더라도 또한 감히 탐학(貪虐)을 부릴 수 없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저하(邸下)께서 대조(大朝)께 여쭈어, 모든 수령을 차견(差遣)할 때에 먼저 전관(銓官)을 신칙하여 각별히 선택하게 하되 각별히 선택하지 못하면 전관을 죄주고, 그 다음에 도신을 신칙하여 태거(太去)하게 하되 태거하지 못하면 도신을 죄주며, 한번 장오를 범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법으로 재결하여 가벼운 자는 귀양보내고 무거운 자는 죽이되 오래도록 계속하고 조금도 느슨히 하지 않아서 사람마다 경계하고 두려워하게 하소서. 그러면 탐오의 풍속이 조금 고쳐지고 유랑하는 백성도 또한 안정하게 될 것입니다. 대개 백성을 가까이하는 것은 수령만한 자가 없으니, 수령이 어질고 어질지 못한 데에 백성의 기쁨과 슬픔이 달려 있고 백성의 기쁨과 슬픔에 또 국가의 안녕과 위란(危亂)이 따르니, 어찌 크게 두렵지 않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아뢴 바는 마땅히 유념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7책 80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498면
  • 【분류】
    정론(政論) / 보건(保健)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註 192]
    양남(兩南) : 경상도와 전라도.
  • [註 193]
    도신(道臣)의 전최(殿最) : 관찰사가 각 고을 수령(守令)의 실적을 조사하여 중앙에 보고하는 일. 성적을 조사할 때 상(上)을 최(最), 하(下)를 전(殿)이라고 하여 매년 6월 15일과 12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시행하였음.
  • [註 194]
    삼사(三事) : 삼공(三公).

○甲申/司諫金履萬上書言:

今日蒼生之凋瘵甚矣。 往歲之瘟疫、前冬之麻疹, 死亡相枕, 八路攸同, 孑遺之氓, 田荒室露, 不能安堵, 往往流散, 邑里蕭條, 非復前日之富庶。 不幸而又有今年旱、潦之災, 兩南雖曰稍豐, 畿甸及各道大抵失稔者多, 傳聞之說, 容有過實者, 而至於湖西之堤川、關東之原州內之砥平楊根楊州廣州等地, 臣於赴召之路, 所經歷而目覩者也。 稻田太半陳廢, 黍、粟等穀, 又損於風災, 節屆西成, 而甔石之資不足, 愍我蒸黎, 何以爲生? 嗚呼! 民依於國, 國依於民, 懷保之策, 不容少緩, 而其要惟在乎愼簡守令。 大朝申飭之命, 非不至矣, 歷觀列邑, 率多爲人而擇官, 鮮有爲官而擇人。 剝民肥己者間亦有之, 而道臣之殿最未必盡循公議, 白簡之刺擧, 繡衣之論啓, 特其千百而一耳。 雖或犯贓畢露, 而畢竟勘罪, 不過數年禁錮、徒年、流配而止。 墨吏無所懲畏, 益事漁奪, 民生之殿屎, 月滋日甚, 實由於贓法之不嚴也。 噫! 歐陽歙, 以當世儒宗, 位登三事, 而以贓罪論死, 弟子千餘人, 守闕求哀, 而光武竟不之容貸。 法苟如是, 則雖有饕餮, 亦不敢肆爲貪虐矣。 伏願邸下, 稟于大朝, 凡諸守令之差遣也, 先飭銓官以另擇, 不能另擇則罪銓官, 次飭道臣以淸汰, 不能淸汰則罪道臣, 一有犯贓, 必裁以法, 輕者竄逐之, 重者誅殛之, 持以悠久, 不少懈弛, 使人人警懼。 則貪黷之風少革, 而流散之民, 亦可安集矣。 蓋親民莫如守令, 守令之賢否, 而生民之休戚係焉, 生民之休戚, 而國家之安危隨之, 豈不大可畏也哉?

答曰: "所陳當留念。"


  • 【태백산사고본】 57책 80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498면
  • 【분류】
    정론(政論) / 보건(保健) / 인사(人事)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