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80권, 영조 29년 7월 16일 기사 1번째기사
1753년 청 건륭(乾隆) 18년
임금이 태묘에 거둥하다
임금이 태묘(太廟)에 거둥하였는데, 왕세자(王世子)가 수가(隨駕)하였다. 전배례(展拜禮)를 행하고 나서 왕세자는 먼저 환궁(還宮)하고 임금은 이어서 육상궁(毓祥宮)에 나아갔다. 예를 행하고 삼락당(三樂堂)에 나아가 이조 참판 조명리(趙明履)에게 말하기를,
"소녕원(昭寧園)119) 에 계명산(鷄鳴山)이 있는데, 예전에 감여(堪輿)120) 를 잘 아는 자가 이곳을 지나다가 한 글귀를 외어 ‘금계가 울며 활개를 치니 왕기가 옹장에 감추어 있구나![金鷄鳴而搏翼王氣藏於甕匠]’ 하였다. 옹장은 그 마을에 옹기장이가 많으므로 그 마을에 이름붙인 것이니, 어찌 기이하지 않겠는가?"
하매, 조명리가 말하기를,
"이 뜻을 어제(御製) 가운데에 넣어야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상도(常道)에 맞지 않는 일에 가까운데, 어찌하여 반드시 글에 나타내야 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7책 80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492면
- 【분류】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