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 공무를 동궁으로 들여보내라는 명이 있어 이를 가지고 논란을 벌이다
임금이 선화문에 나아가 대신·비국 당상 및 약방·정원·옥당의 관원을 불러 보았다. 이때에 대신을 불러 입시케 하라고 명하였는데, 우의정 김상로가 즉시 입시하지 않았고, 약방에서 합문에 나아갔으나 눈비가 섞여 내렸기 때문에 문 안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임금이 ‘내가 할 일이 있다.’는 분부를 잇따라 내리고 또 대소 공무를 동궁에게로 들여보내라는 하교가 있었다. 그러자 정원·옥당에서 청대하였고, 대사간 서지수·장령 김광국도 와서 청대하였는데, 모두 선화문 밖으로 와서 입시하라고 명하였다. 약방에서 증세를 진찰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허락하지 않고 말하기를,
"이 문에 앉은 이유는, 희정당은 정사당(政事堂)이므로 왕세자에게 대리 청정케 한 뒤로는 다시는 앉고 싶지 않아서이다. 송현궁에 거둥한 것은 나의 큰 뜻이었는데, 자전의 분부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였다."
하니, 영성군 박문수가 말하기를,
"오늘 누가 감히 봉승하겠는가 여겨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탄하십니까?"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이 옷을 벗은 뒤라야만 이 마음이 드러날 것이다. 태조와 영묘(英廟)317) 께서도 이미 행하셨다."
하였다. 예조 판서 원경하가 선왕이 어제(御製)한 ‘곽공(郭公)318) 처럼 길이길이 다복하게 살지어다.[永年多福郭公如]’라는 시를 가지고 읽으면서 간하니, 임금이 책상에 엎드려 곡(哭)하며 말하기를,
"이 어제시(御製詩)는 내가 연잉군(延仍君)으로 있을 때에 주신 것이다. 내가 그냥 연잉군으로 있었다면 어찌 이런 아픔이 있겠는가? 이 옷을 벗지 않는다면 무슨 얼굴로 지하에 돌아가 형님을 뵐 수 있겠는가?"
하였다. 김상로가 말하기를,
"눈보라가 치는 혹독한 추위에 필시 몸에 손상이 올 것인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경이 개연하게 생각할 줄로 여긴다."
하였다. 김상로가 말하기를,
"병 때문에 부름을 받고도 즉시 나오지 못하였고 또 대신의 반열에 끼어 있으면서 의당 거행해야 할 전례를 윤허받지 못하였으니, 신은 정말 죽을 죄를 졌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은 이로 인해 평소에 먹은 마음을 이룩할 수가 있게 되었다."
하였다. 승지 김치인(金致仁)이 양정합(養正閤)에 나아가 구대(求對)하고 이 말을 아뢰니, 왕세자가 듣고 앞에 나아가 엎드려 내린 전교를 회수하기를 청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너는 지금 나의 마음을 모르고 있다. 태조께서는 정종에게 선위(禪位)하였고 영묘(英廟)께서도 이미 거행하신 전례이다. 그러므로 네가 너의 아비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자 한다면 이 옷을 항상 입도록 허용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 청포(靑袍)를 입은 것은 사실 의도가 있는 것이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또 하교를 회수하라고 극력 청하니, 임금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우리 국조에서 선수(禪授)한 일이 어찌 없었는가?"
하니, 이조 판서 조재호가 말하기를,
"전하께서 손에 태아(太阿)를 가지고 계신 것이 얼마나 존숭(尊崇)한 일인데, 이러한 거조를 하신단 말입니까?"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나의 이 마음을 펴기 위해서이다."
하였다. 대사간 서지수가 말하기를,
"옛 궁에서는 어가를 돌리실 때에 대신이 우선 뜻을 따르겠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성덕에 누가 되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서지수를 우선 체차하라. 의리를 안다는 서지수가 이렇단 말인가? 서지수는 본디 괴상한 무리인데 그의 아비와 할아버지부터 그러하였다."
하였다. 장령 김광국이 약간 그를 위해 변명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대신(臺臣)도 당을 비호하려고 하는가? 체차하라."
하고, 서지수를 울산부로 귀양보내라고 명하였다. 김상로가 말하기를,
"신들은 비록 돌보아 줄 것조차도 없지만 원량은 생각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차라리 원량을 사랑하지 않을지언정 차마 선조께 불효할 수는 없다. 경들은 나로 하여금 지하로 돌아가 형님을 뵈올 체면이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경묘께서 대리를 하라고 명하실 때에 대소 공무를 모두 나에게 들여 보냈는데, 이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흉측한 말을 들었다. 지금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나의 괴로운 마음을 펼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대신이 이 일을 동조(東朝)께 아뢰겠다고 먼저 나갔다. 임금이 손수 글을 써서 내려 말하기를,
"이 뒤로는 사전(祀典)이나 순감군(巡監軍) 군호(軍號)의 일로 표신을 청하는 일 이외에는 모두 동궁에 들여 보내라."
하니, 여러 신하들이 돌려보냈다. 임금이 말하기를,
"대리 청정하는 것이 하나의 기휘(忌諱) 거리가 되었다. 노론은 일찍이 이 때문에 화를 받았기 때문에 겁을 먹어 뜻을 받들지 않고 있으며, 소론은 일찍이 대리 청정하는 것을 죄로 삼았기 때문에 이것을 의리로 삼으려고 뜻을 받들지 않고 있는데, 신하들의 노론이니 소론이니 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기에 하나는 무함이라고 하고 하나는 무함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겠는가?"
하니, 김상로가 말하기를,
"성상께서 어찌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까?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야사(野史)에서는 어떻게 쓴지 모르겠지마는 어찌 통분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세자궁에 들어간 공문서 이외에는 모두 정원(政院)에 머물러 두도록 하라."
하니, 여러 신하들이 서로 이끌고 극력 간하였다. 영부사 김재로가 들어오자 임금이 그의 손을 붙잡고 말하기를,
"지금 경을 보니, 내 마음이 기쁘다. 경은 나의 이 괴로운 마음을 이룩하게 해야 할 것이다."
하니, 김재로가 말하기를,
"오직 빨리 정전으로 나아가셔서 어리석은 신의 소견을 다 말씀드리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홍준해·이양천·한종제를 제외한 그 나머지 이목의 유신으로 귀양간 사람을 모두 풀어주라고 명하고, 또 민백상·조명정을 풀어주라고 명하였다. 김상로 등이 대비전 합문 밖에 나아가 구두로 전하여 아뢰기를,
"신들이 성상의 마음을 감동시켜 돌리지 못하였습니다. 요즈음 신들의 죄로 인하여 또 대소 공사와 군호를 동궁으로 들여보내라고 하교하시고 인하여 선화문으로 나가셨는데, 동궁이 울며 청하였으나 되지를 않았습니다. 신들이 정성이 얕고 힘도 미약하니, 오직 우리 자전께서 빨리 분부를 내리셔서 성상의 마음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대비전께서 언서(諺書)로 하답하기를,
"엊그제 일로 인하여 아직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는데, 또 계사를 보게 되었구나. 이미 거행하였던 전례를 주상께서 따르는 것은 이게 바로 계술하는 효도이다.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몹시 추운 때에 선화문으로 나가서 대소 공사와 군호를 동궁으로 들여보내라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이제 친히 희정당으로 가서 마음을 돌리라고 권하려 한다. 주상의 효성으로 어찌 따르지 않겠는가?"
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뜰 가운데로 내려와 엎드렸다. 대비가 희정당에 나아가 승전색을 시켜 구두로 전교하기를,
"주상은 무슨 연고로 찬 곳에 앉아 있는가? 즉시 올라오는게 어떻겠소?"
하니, 임금이 승전색으로 하여금 돌아가 아뢰게 하기를,
"자전께서 추운 궁전에 나오시게 한 것 역시 신이 불초한 죄입니다만,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울적하여 감히 명을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대비전에서 또 하교하기를,
"주상에게 들어 볼 말이 있으니, 청컨대 잠시 들어왔으면 하오."
하니, 임금이 일어나 들어갔는데, 얼마 안되어 나와서 자리로 내려와 굽어 엎드리고 있었다. 대비전에서 또 하교하기를,
"이처럼 찬 곳에 앉아 있으려면 애당초 왜 뜻을 받들겠다고 답하였소? 빨리 올라오시는 게 어떻겠소?"
하니, 임금이 관을 벗고 승전색으로 하여금 돌아가 아뢰게 하기를,
"마음이 몹시 답답하니, 소신의 마음을 굽어 양찰해 주시기를 천만 번 엎드려 바랍니다."
하였다. 대비전에서 또 하교하기를,
"아까 명을 따르겠다는 말을 해 놓고 또 왜 이러시는거요? 빨리 올라오시는게 어떻겠소?"
하니, 임금이 승정객으로 하여금 돌아가 아뢰게 하기를,
"임오년319) 부터 머리를 땋고 받들어 모시었습니다마는, 오늘의 하교는 받들어 따를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대비전에서 또 하교하기를,
"아까 따르겠다고 대답하시기에 마음에 매우 다행히 여겼는데, 지금 왜 이러하십니까? 실로 주상의 효성답지 않소. 어서 빨리 올라오시는게 어떻겠소?"
하니, 임금이 승전색으로 하여금 돌아가 아뢰게 하기를,
"방금 군호에 대한 일로 충성스럽지 못하고 효성스럽지 못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전께서 이렇게까지 분부하시니, 자리로 올라가겠습니다."
하고, 군호를 들이라고 명하였다. 대비전에서 또 하교하기를,
"정사와 군호를 모두 처리하겠다고 대답해 놓고 왜 이러시는 겁니까?
하니, 임금이 또 자리로 내려가 관을 벗고 승전색으로 하여금 돌아가 아뢰게 하기를,
"이렇게까지 하교하시니, 이는 모두 신이 불초하고 무상한 죄입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대비전에서 또 하교하기를,
"군호는 이미 들여오기로 하였다고 들었소만, 정사 등의 일은 주상의 효성으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아직도 추운 궁전에 앉아 있으니, 빨리 들어오시는게 어떻겠소?
하니, 임금이 승전색으로 하여금 돌아가 아뢰게 하기를,
"이 모두가 불효하고 무상한 소치입니다. 차라리 오늘날 불효를 저지를지언정 차마 옛날의 불효는 되풀이 할 수는 없습니다. 심사가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대비전에서 또 하교하기를,
"말할 일이 있으니, 들어오시는 것이 어떻겠소?"
하니, 임금이 승전색으로 하여금 돌아가 아뢰게 하기를,
"아버지가 부르면 느리게 대답하지 않고 임금이 부르면 느리게 대답하지 않는 것인데, 자전께서 하교가 계신데도 즉시 명을 받들지 않았으니 불효하고 무상합니다. 그러나 또한 소신의 마음을 펴기 위해 한 걸음도 감히 들어가지 못하겠으니, 이것이 더욱 신의 죄일 따름입니다.
하였다. 대비전에서 또 하교하기를,
"오늘 얼마나 춥습니까? 그런데 내 여기에 앉아 있은지 이미 오래 되었소. 주상의 평상시의 효성으로 볼 때 어떻다 하겠소? 빨리 들어오시는 것이 어떻겠소?"
하니, 임금이 들어가 조금 있다가 탑상(榻上)으로 나와 앉았다. 대비전에서 승전색으로 하여금 구두로 전하여 여러 대신들에게 하교하기를,
"지금은 주상께서 모두 내 말을 따르겠다고 대답하였으니, 종사의 다행이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30년 동안 고심해 오던 일을 지금 또 이루지 못하였으니, 마음이 슬프고 아플 뿐입니다."
하였다. 대비전에서 또 하교하기를,
"희정당으로 빨리 들어가시는 것이 어떻겠소?"
하니, 임금이 승전색으로 하여금 돌아가 아뢰게 하기를,
"삼가 마땅히 명에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김상로가 말하기를,
"전후로 내리신 전교를 오래 머물러 둘 수 없으니, 모두 회수하셔야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한쪽 조선은 임금 군(君) 자 하나만으로 넉넉하다. 나는 지금 태상왕(太上王)이 되었다."
하였다. 김상로가 말하기를.
"이렇게 하시면 자전의 뜻을 받들어 따르는 의의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자전의 뜻을 받들어 따른 것은 다만 임금 군(君) 자 하나 뿐이다."
하고, 손수 전교를 써서 승지에게 주면서 시행하게 하였다. 승지가 도로 회수할 것을 극력 청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절목 중의 일에 불과한 것이다."
하였다. 대비전에서 또 하교하기를,
"아까 들어오겠다고 말씀해 놓고 지금까지 들어오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오? 내가 기다렸다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궁으로 돌아가겠소."
하니, 임금이 승전색으로 하여금 돌아가 아뢰게 하기를,
"조금 전에 들어가겠다는 뜻으로 말씀드렸는데, 여러 신하들이 절목 중의 일로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이 역시 신의 죄입니다."
하였다. 대비전에서 또 하교하기를,
"정사 등의 일은 모두 주상이 처리하겠다고 답하였으므로 여러 신하들의 청 또한 이같은 것이오. 내가 추운 궁전에 있으므로 병이 날까 염려되니, 빨리 들어오시는 것이 어떻겠소?"
하니, 임금이 하교를 받들어 즉시 일어나 신하들에게 유시하기를,
"친히 쓴 전교를 만약 가지고 가지 않을 경우에는 내 마땅히 동조(東朝)에게 명을 내려 주기를 청하지, 들어갈 수는 없다."
하였다. 여러 승지가 간쟁하다가 마지못해 이내 받들고 나가니, 임금이 대내(大內)로 들어갔다.
- 【태백산사고본】 56책 78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468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註 317]영묘(英廟) : 세종.
- [註 318]
곽공(郭公) : 당나라 화주(華州) 사람인데, 자는 자의(子儀)이다. 무과(武科)로 출신하여 벼슬이 삭방 절도사(朔方節度使)까지 이르렀고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의 난을 평정하여 가장 큰 공을 이룩하였다. 숙종(肅宗)이 그를 위로하기를 "나라가 중흥된 것은 경의 힘이었다." 하고 분양왕(汾陽王)에 봉하였다. 그의 자손들이 이름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인사를 드리면 턱만 끄덕였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복한 사람으로 곽영공(郭令公)을 일컬었다.- [註 319]
임오년 : 1702 숙종 28년.○甲午/上御宣化門, 召見大臣、備堂、藥房、政院、玉堂。 時命召大臣入, 右議政金尙魯不卽入, 藥房詣閤, 而以天雨雪, 坐於門內。 上連下 ‘予有所爲之事’ 之敎, 又有大小公事入于東宮之敎。 政院、玉堂請對, 大司諫徐志修、掌令金光國亦來請對, 竝命入侍于宣化門外。 藥房請診候, 上不許之曰: "坐於此門者, 以熙政堂是政事堂, 故代理後, 不欲復坐矣。 松峴宮行幸, 卽予大志, 而因慈敎不得遂矣。" 靈城君 朴文秀曰: "今日孰敢奉承而乃以不得遂意爲恨歎之敎耶?" 上曰: "脫此衣而後, 可白此心。 太祖、英廟已行之矣。" 禮曹判書元景夏持先朝御製 ‘永年多福郭公如’ 之詩, 讀而諫之, 上伏案哭曰: "御製卽予延礽君時所賜也。 予若以延礽在, 則豈有此痛乎? 不脫此, 則以何顔歸拜於皇兄乎?" 尙魯曰: "風雪嚴寒, 必致傷損, 此何事也?" 上曰: "予以卿爲慨然矣。" 尙魯曰: "病未赴召, 且忝大臣, 不得準請於應行之典禮, 臣誠死罪矣。" 上曰: "今則可以因此得遂平日之心矣。" 承旨金致仁詣養正閤, 求對陳達, 王世子聞之, 進伏於前, 請收還所下傳敎, 上曰: "爾今不知予心矣。 太祖禪於定宗, 英廟亦行之。 此乃列祖已行之典, 爾欲爾父之安心, 宜許此衣之常服。 今日服靑袍者, 意實有在矣。" 諸臣又力請還收, 上厲聲曰: "我國朝禪授之事, 豈無之乎?" 吏曹判書趙載浩曰: "殿下手持太阿, 何等尊崇, 而有此擧措乎?" 上曰: "伸我此心。" 大司諫徐志修曰: "舊宮回鑾時, 大臣姑先奉承之言, 爲聖德之累矣。" 上怒曰: "徐志修爲先遞差。 知義理之徐志修如此乎? 志修本自怪類, 自其父其祖而然矣。" 掌令金光國略爲伸救, 上曰: "臺臣亦欲護黨乎? 遞差。" 命徐志修 蔚山府投畀。 尙魯曰: "臣等雖不足恤, 獨不念元良乎?" 上曰: "寧不慈於元良, 不忍不孝於先朝也。 卿等宜使予有歸拜皇兄之面也。 景廟命代理時, 大小公事皆入於予, 而以此被罔測之凶言。 今不爲此, 豈可伸苦心乎?" 大臣以陳請東朝, 先爲退出。 上以手書書下曰:
此後祀典、巡監軍軍號, 請標信外, 皆入東宮。
諸臣繳納。 上曰: "代理聽政, 作一諱字。 老論則曾以此受禍, 故㤼而不爲奉承, 少論則曾以聽政代理爲罪, 故欲以是爲義理, 不爲奉承。 臣下之老、少論, 於予何關, 一以爲有誣, 一以爲非誣, 予何以堪乎?" 尙魯曰: "聖敎何至於斯耶?" 上曰: "不知野史則何以書之, 豈不痛乎?" 又敎曰: "入於世子宮外, 竝留院。" 諸臣相率力諫。 領府事金在魯入來, 上握其手曰: "今見卿, 予心喜矣。 卿可使予遂此苦心。" 在魯曰: "惟願亟御正殿, 許臣畢愚。" 命洪準海、李亮天、韓宗濟外, 其他耳目儒臣投畀人, 竝放送, 又命閔百祥、趙明鼎放送。 尙魯等詣大妃殿閤外, 口傳啓曰: "臣等不能感回聖心。 近因臣等之罪, 又下大小公事、軍號入于東宮之敎, 因出御宣化門, 東宮泣請不能得。 臣等誠淺力微, 惟望我慈聖, 亟降慈旨, 以回聖心。" 大妃殿以諺書下答曰:
以頃日事, 尙未定心矣, 又見啓辭。 已行之前例, 主上之聽從, 乃所以爲繼述之孝也。 何可不聽從乎? 如此極寒, 出御宣化門, 大小公事及軍號, 入於東宮, 驚愕不可測。 今方親往熙政堂, 欲爲勸回。 以主上孝心, 豈不聽從耶?
上降伏庭中。 大妃殿臨熙政堂, 以承傳色口傳敎曰: "主上何故坐冷處耶? 卽爲陞御何如?" 上使回奏曰: "慈聖之臨御寒殿, 亦臣不肖之罪, 而心甚煩鬱, 未敢承命。" 大妃殿又敎曰: "有欲奉聞於主上者, 請暫入來。" 上起而入, 小頃出, 又下席俯伏。 大妃殿又敎曰: "如是坐冷處, 則初何以奉承爲答耶? 卽卽陞御何如?" 上免冠使回奏曰: "心甚煩鬱, 下諒小臣之心, 千萬伏望。" 大妃殿又敎曰: "俄以奉承之意言之, 而又何如是? 卽卽陞御何如?" 上使回奏曰: "自壬午年, 以編髮奉侍, 而今日之敎, 無以奉承矣。" 大妃殿又敎曰: "俄者以奉承爲答, 心甚爲幸, 今何如此? 實非主上之誠孝。 卽卽陞御何如?" 上使回奏曰: "俄以軍號事, 奉承不忠不孝。 慈敎至此, 當陞座矣。" 命入軍號。 大妃殿又敎曰: "政事、軍號, 皆爲之爲答, 而何如是也?" 上又下席免冠, 使回奏曰: "下敎至此, 皆臣不肖無狀之罪。 不知所達矣。" 大妃殿又敎曰: "軍號聞已入之, 而政事等事, 以主上誠孝, 何如是也? 尙坐寒殿, 速爲入來何如?" 上使回奏曰: "此皆不孝無狀之致, 寧爲今日不孝, 不忍爲昔年不孝。 心事至此, 不知所達矣。" 大妃殿又敎曰: "有可言之事, 入來何如?" 上使回奏曰: "父召無諾, 君召無諾, 有慈聖下敎, 不卽承命, 不孝無狀矣。 亦欲伸小臣之心, 一步地不敢入, 此尤臣罪而已。" 大妃殿又敎曰: "今日何等寒澟耶? 予坐此已久。 以常時誠孝, 當如何? 速爲入來何如?" 上入少頃出御榻上。 大妃殿以承傳色口傳下敎于諸大臣等曰: "今則主上, 以皆聽之爲答, 宗社之幸矣。" 上曰: "三十年苦心, 今又未遂, 一心悲慟而已。" 大妃殿又敎曰: "熙政堂卽速入臨何如" 上使回奏曰: "謹當承命矣。" 尙魯曰: "前後傳敎不可留滯, 竝宜收還矣。" 上曰: "一隅靑丘一君字足矣。 予今爲太上王矣。" 尙魯曰: "如此則烏在奉承慈敎之意乎" 上曰: "慈敎奉承, 只是一君字矣。" 以手書傳敎授承旨, 使之奉承。 承旨力請收還, 上曰: "此不過節目間事。" 大妃殿又敎曰: "俄以入來爲言矣, 至今不入何故也? 予俟見而還宮矣。" 上使回奏曰: "俄以入去之意告達, 而諸臣以節目間事固執, 此亦臣罪。" 大妃殿又敎曰: "政事等事, 俱以奉行爲答矣, 諸臣之請, 亦如此。 予於寒殿, 病發可慮, 卽速入來何如?" 上承敎卽起, 諭諸臣曰: "親書傳敎, 如不持去, 予當請命於東朝, 而不可入去矣。" 諸承旨爭之不得, 遂奉出, 上入內。
- 【태백산사고본】 56책 78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468면
- 【분류】왕실(王室)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註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