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궁에 거둥하였다가 환궁하는 일로 논란하다
우의정 김상로가 비국의 여러 재신들과 청대하니, 임금이 손수 글을 써서 답하기를,
"비록 옛날에 선왕이 승하하셨을 때에 따라 죽지 못하였으나, 또 어찌 차마 오늘날 하례의 일을 성대히 벌일 수 있겠는가?"
하고, 송현(松峴)의 옛 궁으로 거둥하겠다고 명하였다. 그러자 약방·정원·옥당이 청대 하였는데, 허락하지 않고, 승여소(乘輿所)로 나가 화협 옹주의 집까지 두루 들리겠다고 명하였다. 해가 저물 무렵에 송현궁으로 향하여 소주소(小駐所)에 도착하자, 여러 신하들이 깊은 밤에 빈 궁전에 들어가서는 안되니 빨리 어가를 돌리자는 뜻으로 극력 청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이 하례를 드리겠다고 청하였는데, 말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하례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지금 이 궁에 누어서 경들의 청을 사양해야 하겠다."
하자, 여러 신하들이 말하기를,
"하례를 받는 일은 인정이나 예절로 보아 폐지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어려움을 만나 불효하고 공경스럽지 못한 바람에 전후로 헤아릴 수 없는 흉한 말을 실컷 들었으니, 지금 하례를 받는다면 더욱 불효가 되는 것이다. 지금 나를 무망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
하고, 차마 듣지 못할 하교를 잇따라 내렸다. 드디어 궁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때 눈비가 섞여 내렸다. 예조 판서 원경하가 사모를 벗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어가를 돌리자고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백 번 머리를 깨뜨리더라도 나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대사간 서지수, 장령 김광국이 청대하여 들어가 아뢰었는데, 임금이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상로 등이 대왕 대비전의 합문 밖에 나아가 승전색을 불러 구두로 전해 아뢰기를,
"신들이 전하의 6순 경사를 맞아 감히 선조(先朝)에서 거행하였던 전례를 인용하여 사당에 고한 다음 하례를 드리겠다고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효성의 마음으로 굳게 거절하시고 갑자기 옛 궁으로 행차하시더니 심지어는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고 하교하셨습니다. 신들이 애타 어쩌할 줄을 몰라 죽음을 무릅쓰고 우러러 아뢰니, 빨리 분부를 내리셔서 성상의 마음을 돌려 주소서."
하니, 대비가 언서(諺書)로 답하기를,
"송현궁으로 거둥하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마는, 구두로 전한 계사를 들어보건대, 이 지경에 이르렀다 하니 놀라움을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속히 봉서(封書)를 보내려고 한다."
하였다. 김상로 등이 또 왕세자에게 청대하여 이로써 아뢰니, 왕세자가 말하기를,
"이처럼 황급한 때를 당하여 어느 겨를에 호위를 갖출 수 있겠는가? 보연(步輦)으로 가겠다."
하였다. 승지가 동궁이 이 소식을 듣고 방금 온다고 아뢰자, 임금이 말하기를,
"너무 지나치다."
하였다. 대왕 대비전의 승전색이 봉서를 가지고 도착하자, 임금이 바깥 난간으로 나가 엎드려 받아 읽고 나서 소매 속에 넣은 다음 대신을 불러 입시케 하라고 명령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이 만약 경축한다는 일에 대해 다시 말하지 아니한다면 내 마땅히 자전의 분부에 따르겠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니, 김상로가 말하기를,
"지금은 신이 한결같이 굳이 간쟁할 수만 없으므로 죽음을 무릅쓰고 명을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드디어 언서로 회답을 올렸는데, 아뢰기를
"나올 때에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이렇게 밤이 깊었으니 이는 모두 신이 불효한 소치로서 그지없이 황공합니다. 지금은 대신이 신의 뜻을 양해하여 경축하는 일을 그만두려고 하니,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지금 곧 돌아가려고 하니, 자전께서는 마음을 너그러이 가지소서."
하고, 이내 궁으로 돌아왔다. 왕세자가 소여(小輿)를 타고 돈녕부 앞길에 이르러 임금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돈화문 밖으로 되돌아와 맞이하여 대내(大內)로 돌아왔다.
- 【태백산사고본】 56책 78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46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辛卯/右議政金尙魯, 與備局諸宰請對, 上以手書答曰:
雖不能攀髯於昔年, 又何忍張大於今日乎?" 命幸松峴舊宮。 藥房、政院、玉堂請對, 不許, 上出乘輿所, 命歷臨和協主第。 日將夕, 向松峴宮, 至小駐所, 諸臣以深夜空宮不可入臨, 卽速回鑾之意力請, 上曰: "卿等陳賀之請, 言則是矣。 予則以不受爲定, 故今當臥此宮, 以謝卿等之請。" 諸臣曰: "受賀, 在情禮, 不可廢矣。" 上曰: "予遭罹艱險, 不孝不悌, 飽經前後罔測之凶言, 今若受賀, 尤爲不孝矣。 今之以予爲誣者何事?" 連下不忍聞之敎。 遂入宮內, 時天雨雪。 禮曹判書元景夏脫帽以頭叩地, 請回鑾, 上曰: "雖百碎頭, 吾不恤也。" 大司諫徐志修、掌令金光國請對入奏, 上不答。 尙魯等詣大王大妃殿閤外, 招承傳色口傳啓曰: "臣等以殿下六旬之慶, 敢援先朝已行典禮, 仰請告廟陳賀矣。 殿下以孝思牢拒, 遽有臨幸舊宮之擧, 至以仍留爲敎。 臣等焦遑罔措, 冒死仰籲, 亟降慈旨, 勉回聖心。"
大妃殿以諺書答曰:
松峴宮擧動知之, 而聽口傳啓辭, 至於斯, 驚不可測。 欲速爲封書矣。
尙魯等又請對於王世子, 以此仰達, 王世子曰: "當此罔措之時, 何暇具陪衛? 當以步輦往矣。" 承旨以東宮聞此報, 方出詣之意仰奏, 上曰: "過矣。" 大王大妃殿承傳色, 以封書至, 上出外軒, 伏而受之, 覽訖, 納于袖, 命召大臣入。 上曰: "卿等若以稱慶一事, 勿復爲言, 則予當奉承慈敎, 不然決不還矣。" 尙魯曰: "今則臣不可一向强爭, 冒死奉承。" 上遂以諺書, 上回奏曰:
出來時仰達矣, 至此夜深, 皆臣不孝攸致, 不勝惶恐。 今則大臣諒臣, 意欲止之, 始可以歸拜。 今將還歸, 伏望寬慈心焉。
遂還宮。 王世子以小輿, 行至敦寧府前路, 聞上還, 遂回至敦化門外, 祗迎還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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