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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76권, 영조 28년 3월 6일 정묘 1번째기사 1752년 청 건륭(乾隆) 17년

대렴을 행하고, 대전관이 대렴전을 행하다

대렴(大斂)을 행하였다. 시임·원임 대신과 도감의 제조, 강서원과 위종사, 승지와 사관이 입참하였다. 대렴교(大斂絞)는 백색 방형의 사주(紗紬)로 하였고 염금(斂衾)을 썼으며 면복(冕服)의 산의(散衣)114) 는 90칭(稱)이었다. 종친과 문무 백관이 들어와 자리에 나아갔다. 염이 끝나자 교(絞)를 묶었고 보쇄(黼殺)로 발에서부터 씌워 올린 뒤에 금모(錦冒)로 머리에서부터 씌워 내려 일곱 매를 묶었다. 재실(梓室)을 받들고 들어와 영상(靈床)의 남쪽에 놓고서 시신을 받들어 재실에 넣고 손톱·발톱과 머리카락을 네 귀퉁이에 넣은 다음 개(蓋)를 덮고 임(袵)을 설치하여 그 합봉된 곳 주위에 옻칠을 발라 가늘게 문지른 뒤에 수보(繡黼)의 관의(棺衣)를 덮고 병풍을 쳤다. 종친과 문무 백관이 곡하고 재배가 끝나자 내시가 제수를 받들어 영좌 앞에 진설하니, 대전관이 대렴전(大斂奠)을 행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5책 76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43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丁卯/午時, 行大歛。 時原任大臣、都監提調、講書院、衛從司、承旨、史官入參。 大歛絞以白方紗紬, 用歛衾, 冕服散衣九十稱。 宗親、文武百官入就位。 卒歛, 結絞, 以黼殺韜足而上, 後以錦冒韜首而下, 結七帶。 奉梓室, 入陳靈床南奉, 卽梓室, 將爪髮, 納于四隅, 加蓋設袵, 其合縫處, 周回以漆塗細布, 覆以繡黼棺衣, 乃施屛。 宗親、文武百官哭, 再拜止, 內侍奉饌設靈座前, 代奠官行大歛奠。


  • 【태백산사고본】 55책 76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43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