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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73권, 영조 27년 5월 1일 정유 2번째기사 1751년 청 건륭(乾隆) 16년

좌의정 조현명이 상소하여 균역법을 계속 시행할 것을 청하다

좌의정 조현명(趙顯命)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2필(疋) 양역(良役)의 폐단이 나라를 망치는 근저(根柢)가 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조종조(祖宗朝) 이래로부터 누차 변통시키는 계책을 강구하였지만, 지금에 이르도록 시일만 지체하면서 폐단은 날로 더욱 심해지니, 그 형세는 필경 백성도 없고 나라도 없게 된 뒤에야 그칠 것입니다.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이에 성상께서 만년(晩年)에 정치를 더욱 힘쓰시어 큰 뜻을 더욱 분발하여 반드시 백년 동안의 고질적 폐단을 진작시켜 하루아침에 개혁하려고 하시니, 매우 거룩한 일입니다. 급기야 재차 문에 임하기까지 하시어 민정(民情)을 널리 물으시고, 호전(戶錢)·결포(結布)의 주장을 모두 행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개연(慨然)히 눈물을 흘리시며, ‘2필의 양역을 비록 다 혁파할 수는 없지만 1필로 줄이는 정치는 행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교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성상의 뜻이 이처럼 간절하고도 독실하셨는데, 저는 대신의 신분으로서 한 가지 계획이라도 펼쳐 우리 전하의 백왕(百王)보다 높으신 지업(志業)을 우러러 돕지 못하였으니, 이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드디어 전배(前輩)의 서론(緖論)에서 얻어들은 것에다가 신의 어리석은 소견을 첨가하여, 홀기(笏記)093) 약간의 조항을 그어서 명정전(明政殿)에 전좌(殿座)하셨을 때에 올리고, 이어서 반령(頒令)을 청하였습니다. 부족한 신의 생각에는 대체로 양역의 폐단은 쓸데없는 비용의 용도가 많은 데에 말미암은 것이니, 그 중에서 변통할 수 있는 것은 변통하고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인 연후에 쓸데없는 비용의 지출이 막힐 것입니다. 쓸데없는 비용의 지출이 막히면 감포(減布)·급대(給代)의 수효가 많지 않을 것이고, 감포·급대의 수효가 많지 않으면 구획하여 재물을 만들어 내는 방책이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홀기 중에 가장 긴요한 여러 항목은 바로 군의(群議)의 견제를 당하여 채용됨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허다한 급대의 수효를 모두 백지(白地)에서 판출(辦出)해야 하므로 그 형세는 각 영곤(營閫)에 분배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그래도 부족함이 우려되니, 이는 목전(目前)도 지탱해낼 수가 없는데 더구나 영구히 준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이 이 뜻을 연중(筵中)에서 진달하여 마침내 4건(件)의 일을 구획한 것이 있으니, 이른바 ‘어염(魚鹽)·진전(陳田)·은결(隱結)·군관(軍官)’ 등의 일이 이것입니다. 그 의논은 혹은 신에게서 나오기도 하고 혹은 요상(僚相)과 여러 당상(堂上)에게서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대체로 모두 토지(土地)·인민(人民)의 소출(所出)로써 미려(尾閭)의 누설(漏泄)094) 을 거두어 들이고, 탈세의 전답에 대해 부세하고 부역을 도피한 무리를 찾아내는 것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애당초 일정한 세금 외에 각박하게 긁어내고 교묘히 거두는 것이 아니었으며, 또 거두어 들이고 나누어 주어 이식(利息)을 취하여 음험하게 백성의 재물을 빼앗기를 청묘법(靑苗法)처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허술하여 이루기 어려울까 우려되었는데, 지금은 점점 엉겨 모여 대략 계산해보니 급대의 미목(米木)의 수효와 거의 서로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크게 변통을 가하여 만족하게 구획하기를 신의 홀기의 주장처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차스럽게 땜질한 부분이 오히려 많습니다. 신이 보기에도 감히 ‘만전 무폐(萬全無弊)하다.’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중외(中外)에서 거행하는 즈음에 역시 다 잘하지 못한 점이 없지 않으니, 헐뜯는 말이 떼 지어 일어나는 것도 또한 마땅합니다. 그러나 대체(大體)는 이미 섰으니, 이것을 가지고 조금 발전시키고 점차 바로잡아 나가기를 대동법(大同法)을 처음 실시하던 때와 같이 한다면, 거의 이룰 수 있을 것이고 역시 거의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천하의 일이란 온전히 이롭기만 한 것도 없고 온전히 해롭기만 한 것도 없으며, 반드시 이로움과 해로움이 맞서게 되니, 요컨대 많은 것이 이길뿐입니다. 앞으로 설사 폐단이 있다 하더라도 1백여 만의 2필 양정(二疋良丁)이 아내와 자식을 팔고서 일자리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폐단이 어느 것이 많고 어느 것이 적겠습니까? 원망하는 자가 참으로 또한 있기는 하지만, 1백여 만의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고통받는 백성들이 하루아침에 수화(水火)의 고통에서 벗어나 기뻐 고무(鼓舞)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어떤 것이 많고 어떤 것이 적겠습니까? 저 납포(納布)하는 자들은 모두 하호(下戶)·잔민(殘民)입니다. 그들이 고락(苦樂)의 심정을 스스로 진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단지 그 원망이 있는 것만을 듣고 그 기쁨이 있는 것을 듣지 못하니, ‘부옥(蔀屋)095)당폐(堂陛)096) 에서 멀리 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은 그윽이 홀로 슬프게 여깁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백성이 풍족하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부족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지금 전하의 백성은 거의 장차 풍족해질 것입니다. 비록 용도에 부족하더라도 의당 걱정하지 않을 일인데, 더구나 잘만 한다면 재용도 풍족해질 수 있는데 더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이의(異議)와 분쟁(紛爭)을 싫게 여기지 마시고 더욱 소상함을 더하여 이 한 건의 큰 일을 성취해 내신다면, 실로 생민(生民)의 복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균역(均役)을 의논하는 자들이 그 주장에 단서가 많으니, 신이 조목조목 변론하려면 문자(文字)가 번잡하여 전하께서 보시기에 방해될까 두렵기에 이 뒤에 마땅히 소책자(小冊子)로써 문답(問答)을 만들고, 겸하여 홀기의 앞서의 내용을 아뢰어 상소를 따라 올려서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상소를 다듬어 올리려 할 즈음에 헌신(憲臣)의 상소가 있어 지척(指斥)함이 범상치 않았다는 것을 듣고 신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바라건대, 신의 집요(執拗)하게 나라를 그르친 죄를 다스려서 대의(臺議)에 사과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우악한 비답을 내렸다.


  • 【태백산사고본】 54책 73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401면
  • 【분류】
    정론(政論) / 군사(軍事) / 재정(財政)

  • [註 093]
    홀기(笏記) : 의식의 순서를 기록한 것.
  • [註 094]
    미려(尾閭)의 누설(漏泄) : 미려는 바다 바닥에 있는 쉴 사이 없이 물이 빠져 나간다는 곳. 즉 국가의 재정이 낭비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
  • [註 095]
    부옥(蔀屋) : 오막살이 집.
  • [註 096]
    당폐(堂陛) : 궁전과 누대의 층계.

○左議政趙顯命上疏, 略曰:

二疋良役之弊, 爲亡國根柢久矣。 自祖宗朝以來, 累講變通之策, 而迄玆遷就, 弊日益甚, 其勢必至於無民無國而後已。 寧不痛哉? 乃聖上晩政愈勵, 大志益奮, 必欲振百年痼弊, 一朝更革之, 甚盛擧也。 及至再次臨門, 博詢民情, 戶、結之議, 皆不可行, 則遂慨然流涕, 至以 ‘二疋之役, 雖不得盡罷, 減疋之政, 不可不行’ 爲敎。 聖志之懇篤如此, 而身爲大臣, 不能發一謀, 以仰贊我殿下高百王之志業, 是則可愧也。 遂以得於前輩緖論者, 參以愚見, 盡爲笏記若干條, 以進明政殿殿座時, 仍請頒令, 區區之意, 蓋爲良役之弊, 由於冗費之多門, 就其中可以變通者變通之, 可以省減者省減之, 然後冗費之門杜。 冗費之門杜, 則減布給代之數不多, 減布給代之數不多, 則區劃生財之策不難故也。 笏記中最緊要諸條, 乃爲群議所掣, 不能見用。 許多給代之數, 皆從白地辦出。 故其勢不得不分排於各營閫, 而猶患不贍, 此不足以支過目前, 則況可以永久遵行平? 臣以此意陳達筵中, 遂有四件事區劃, 所謂魚鹽、陳田、隱結、軍官等事是也。 其議或出於臣, 或出於僚相諸堂。 蓋皆土地人民之所出, 不過收尾閭之泄, 括漏稅之田, 搜逃役之類而已。 初非剝割巧歛於常賦之外, 又非歛散聚息, 陰奪民財如靑苗之爲者也。 始慮落落難成, 今則稍稍凝聚, 大略計之, 與給代米木之數, 幾乎相當矣。 然初不能大加變通滿心區劃, 如臣笏記之說, 故苟且塗抹處尙多。 以臣見之猶不敢自謂萬全無弊, 而中外擧行之際, 亦不無未盡善者, 則謗議之朋興亦其宜也。 然大體旣立, 卽此而稍加展拓, 漸次釐改如大同設施之初, 則庶乎其可成, 而亦庶乎其可繼也。 噫! 天下事無全利而全害者, 必利害相奪, 而要之多者勝耳。 前頭設有弊端, 較之於百餘萬二疋良丁, 賣妻子流離失業者, 其爲弊孰多而孰少也? 怨之者誠亦有之, 然較之於百餘萬倒懸之民, 一朝出水火而懽欣鼓舞者, 孰多而孰少也? 彼納布者, 皆下戶殘民也。 其苦樂之情無由自達, 故今之人只聞其有怨而不聞其有喜, 蔀屋之遠於堂陛, 正謂此也。 臣竊獨悲之也。 孔子曰, ‘百姓足, 君誰與不足?’ 今殿下之民, 庶將足矣。 雖不足於用, 宜在所不恤, 況善爲之, 則用亦可足也耶? 伏願殿下, 勿以異議紛爭之爲可厭, 而益加消詳, 要以成就此一件大事, 則實生民之福也。 今之議均役者, 其說多端, 臣欲逐條辨說, 則文字繁蕪, 恐妨乙覽, 從當以小冊子設爲問答, 兼申笏記前說, 隨疏投進, 以俟處分焉。 治疏將上之際, 聞有憲臣疏, 指斥非常, 臣不勝悚然也。 乞治臣執拗誤國之罪, 以謝臺議焉。

上優批答之。


  • 【태백산사고본】 54책 73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401면
  • 【분류】
    정론(政論) / 군사(軍事)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