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종 황제의 기신을 맞아 후원에서 망배례를 행하다
임금이 후원(後苑)에서 망배례(望拜禮)를 행하였으니, 의종 황제(毅宗皇帝)의 기신(忌辰)이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의종이 우리 나라가 성하지맹(城下之盟)076) 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조금도 성내는 뜻이 없이 단지 일찍 구원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였으니, 명나라 조정의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메인다."
하고, 하교하기를,
"삼황(三皇)077) 을 보사(報祀)한 뒤에 오늘의 의종 황제의 기신(忌辰)에 후원에서 망배(望拜)하니, 향 연기가 북쪽으로 향하여 어슴푸레 용어(龍馭)078) 가 다시 내려온 것 같다. 지난 세월을 회상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적신다. 아! 해동(海東)의 한 모퉁이에 명나라가 아직 존재하고 있도다. 5월 초 10일은 고황제(高皇帝)의 기신이고 7월 21일은 신종 황제(神宗皇帝)의 기신이니, 마땅히 한결같이 예(禮)를 행하여 조그마한 정성이나마 표할 것을 의조(儀曹)에 분부하라. 아! 수염이 희어진 만년에 편안한 날이 항상 적으나, 만약 지금 하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훗날 사왕(嗣王)이 나의 이런 마음을 생각해 준다면 어찌 다만 나만의 다행일 뿐이겠는가? 바로 우리 성조(聖祖)와 성고(聖考)의 존주(尊周)의 거룩한 덕을 본받는 것이니,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4책 73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99면
- 【분류】왕실(王室) / 외교(外交)
- [註 076]성하지맹(城下之盟) : 조선조 인조(仁祖) 14년(1636) 병자년에 군신(君臣)의 관계를 맺자는 청나라의 요구에 조선이 거절하자 청의 태종(太宗)이 직접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니, 이에 조정은 일시 남한 산성(南漢山城)으로 피난하여 성(城)을 고수하였지만 삼전도(三田渡)에서 항복하고 청나라의 요구를 들어주었던 것을 말함.
- [註 077]
삼황(三皇) : 명나라 태조·신종·의종을 말함.- [註 078]
용어(龍馭) : 천자의 수레.○丙辰/上行望拜禮於後苑, 以毅皇忌辰也。 上曰: "毅宗聞我國城下之盟, 少無怒意, 而只恨不能早救, 皇朝之恩, 何可忘耶? 思之不覺於悒。" 敎曰: "三皇報祀之後, 今日毅皇忌辰, 望拜御苑, 香烟向北, 怳然若龍馭復臨。 追惟往歲, 不覺涕沾。 嗚呼! 一隅海東, 大明猶在。 五月初十日 高皇忌辰, 七月二十一日神皇忌辰, 當一例行禮, 以伸微誠, 分付儀曹。 噫! 雪鬢暮年, 寧日恒少, 若今不爲, 更待何日? 他日嗣王其能思我此心, 則奚徒予幸? 寔體我聖祖、聖考尊周之盛德也, 其宜勖哉。"
- 【태백산사고본】 54책 73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99면
- 【분류】왕실(王室) / 외교(外交)
- [註 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