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72권, 영조 26년 11월 11일 경술 2번째기사
1750년 청 건륭(乾隆) 15년
세손사의 차출에 대하여 명하다
명하기를,
"세손사(世孫師) 1원(員)은 숭록(崇祿) 종1품으로, 부(傅) 1원은 숭정(崇政) 종1품으로 정하라."
하였는데, 이때 세손 사부(世孫師傅)를 차출하려고 하였으나, 예(例)를 상고할 수가 없었다. 임금이 전교하기를,
"세자가 입학할 때에는 대제학이 박사(博士)가 되니, 세손이 입학할 때에는 예문 제학이 되고, 원자(元子)의 안태사(安胎使)를 중신(重臣)으로 차출하니, 원손의 안태사는 재신(宰臣)으로 차출해야 하는데, 이는 참조(參照)해서 한 것이다."
하고, 이어서 예조에 명하기를,
"대신에게 물으라."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영부사 김재로가 말하기를,
"마땅히 성교(聖敎)를 참조하여 대략 동궁(東宮)의 사부와 차등을 두어야 합니다."
하고, 다른 대신의 의논 역시 같았기 때문에 이런 명이 있게 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72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87면
- 【분류】왕실(王室) / 인사(人事)
○命世孫師一員, 定以崇祿從一品, 傅一員, 定以崇政從一品。 時世孫師傅將差出, 而無可考之例。 上敎曰: "世子入學時, 大提學爲博士, 世孫入學時, 藝文提學爲博士, 元子安胎使, 差以重臣, 元孫安胎使, 差以宰臣, 此足爲旁照者也。" 仍命禮曹, 問議于大臣, 至是領府事金在魯議以爲: "當依聖敎旁照, 略有差等於東宮師傅。" 他大臣議亦同, 故有是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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