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감사 유복명이 상소하여 양역의 폐단에 대하여 논하다
경기 감사 유복명(柳復明)이 상소하여 〈양역의 폐단에 대하여〉 논하기를,
"양역의 폐해는 수화(水火)보다도 심하니, 이 법을 고치지 않으면 필경엔 백성이 없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선조(先朝) 때부터 변통할 방책을 강구하였으나 아직까지 정론(定論)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대체로 호전(戶錢)이나 결포(結布)가 모두 결점이 있어서 갑자기 시행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릇 호전은 모름지기 호적법이 정돈되어야만 논의해 볼 수 있는 것인데 만근 이래로 합호(合戶)와 누적(漏籍), 사사(詐死)·위망(僞亡) 등의 간계가 가는 곳마다 모두 그러합니다. 지금 중외의 호수(戶數)가 비록 1백 70만 호에 이르고 있으나, 이른바 대호(大戶)·중호(中戶)는 열에 한둘도 못되고 소호(小戶)와 잔호(殘戶)가 거의 반절을 넘고 있습니다. 경기로 말하더라도 총 14만 7백여 호에서 대호·중호라고 할 만한 호수는 1만여에 불과한데, 경기가 이러하니 다른 도는 알 만합니다. 처지가 이러한데 돈을 거둘 경우 덜하면 국가의 경비가 아주 부족할 것이고, 무겁게 거두면 백성의 근심과 원망은 도리어 더 심해질 것이니, 이는 결코 시행해 볼 만한 방도가 아니라고 여깁니다. 결포에 있어서도 우리 나라 전세(田稅)가 대동법이 생긴 이후로 1결에서 쌀을 내는 수효가 너무 많은데, 이제 또 규정 이외의 세금을 덧붙이면 지나치게 편중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옛날 인묘조에 유사(有司)가 재정이 고갈되었다 하여 4결에 베 1필씩을 내게 하자고 청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이는 농사를 그르치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짓이라고 극언하였습니다. 비록 넉넉하다고 한 시대에도 4결에 베 1필을 가지고 오히려 어렵게 여겼는데, 하물며 지금 같은 고궁하고 위급한 때에 1결에 베 1필을 어떻게 쉽게 시행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1결을 가진 백성이 몇 사람이나 됩니까? 열 집의 마을에서 땅을 가진 자는 두서넛도 못되고 거의가 남의 전답을 빌려 짓고 있어 거기에서 난 소출을 다해도 상세(常稅)를 충당하지 못하는 판국에 전에 없던 별징(別徵)을 또 물린다면, 끝내는 반드시 옥토를 버려 썩은 흙처럼 될 것이고 묵혀서도 부족하여 떠나게 될 것이며, 인족 침징(隣族侵徵)의 폐단은 양역보다 심하고 국가의 유정지공(惟正之貢)110) 도 또한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지금에 있어서 나라의 대계를 도모하려면 수어청과 총융청을 혁파하여 남한 산성(南漢山城)과 북한 산성(北漢山城)에 넘겨주고 각사(各司)의 불필요한 관원을 도태시키며 삼군(三軍)의 둔전(屯田)을 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 대변혁에 관계되니만큼 가벼이 논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작게 변통하면 작은 이익이 있고 크게 변통하면 크게 이익이 있다.’고 하였으니, 신은 청컨대, 작게 변통하는 도리로 전하께 아뢰려 합니다.
지금 인구의 증가는 번성하다 할 수 있겠으나 군액(軍額)이 그래도 부족한 것은 실로 부호(富戶)의 장정은 거의 정역(正役)을 피하려고 하여 수월한 곳으로 들어가고 정군(正軍)의 자식은 모두 도포를 입고 당혜(唐鞋)를 신으며 부오(部伍)의 천인들도 철릭[天翼]을 입고 갓을 씁니다. 여기에 교생(校生)·원생(院生)·관군관(官軍官) 등 허다한 명목이 있어, 쉽사리 양민의 피하려는 소굴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연유에서 양역(良役)을 수괄(搜括)하지 못하고 노약자는 도리어 구차하게 충원됨이 많으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지금의 민정(民情)은 오로지 자기의 2필 응역을 어렵게 여기는 것만이 아니라, 인족(隣族)이 침징(侵徵)을 당함으로써 지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사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황구 첨정(黃口簽丁)과 백골 징포(白骨徵布)는 원기(冤氣)가 하늘을 찌르고, 한 집에서 거듭 겹쳐진 응역에 쌓인 원망이 뼈에 사무쳐 있으니, 민생의 괴로움과 고달픔은 가히 비참하다 하겠습니다. 지금의 기강과 풍속, 인심과 세도(世道)로서는 비록 주관(周官)의 제도가 있다 한들 실로 끝내 성취할 가망은 없고 혹시라도 역로(驛路)와 파발(擺撥)만을 소란하게 할 것 같은 염려만 있습니다. 신의 천박한 소견으로는 제도(諸道)의 민역을 관서의 예대로 모든 2필의 응역을 모두 1필로 바꾸면 제반 투속(投屬)이 자연히 노출되어 군액에 충당되는 도리가 있을 것이고, 각도의 장정이 전처럼 수월한 곳으로 달아나는 폐단이 없어지리라고 여겨집니다. 관서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실례로 말하더라도 1필로 책정한 뒤에는 지금까지 백성들의 원망이 없이 순조롭게 행해지고 있으니, 이는 목전의 폐단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책일 것입니다. 논자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2필의 역을 1필로 줄이면 허다한 경비가 조달되지 못한다.’고 하지마는, 이점에 대해서는 신도 생각해 본 바가 있습니다. 국가의 1년 경비 중 반절이 나올 데가 없어지는데, 이는 실로 쉽사리 보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국내의 재정을 총괄하여 외방의 불필요한 잡비를 삭감하고 형편을 보아 옮겨 구획하여 반감된 숫자에 충당한다면, 어찌 길이야 없겠습니까? 이것이 만일 부족하다고 한다면 앞에 말했던 군액 이외의 교생의 무리를 ‘제번 교생(除番校生)’이라 명명하고, 여러 읍의 군관이나 기패관(旗牌官) 등속도 ‘수포 군관(收布軍官)’이라고 칭하여 모두 1필의 응역에 충당하면, 이 역시 경비를 보충하는 일단이 될 것입니다."
하니, 되돌려 주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71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70면
- 【분류】정론(政論) / 호구-호적(戶籍) / 재정-역(役)
- [註 110]유정지공(惟正之貢) : 해마다 의례(儀禮)로 궁중 및 서울의 고관(高官)에게 바치던 공물(貢物).
○京畿監司柳復明上疏論:
良役之弊, 甚於水火, 不變此法, 終必無民。 粤自先朝, 講究變通之策, 而迄未有定論。 蓋以戶錢、結布, 俱有窒礙, 不可猝然行之故也。 夫戶錢則必須籍法申明然後, 容有可議, 而挽近以來, 合戶、漏籍、詐死、僞亡之奸, 在處皆然。 卽今中外戶數, 雖至一百七十萬, 而所謂大、中戶, 十僅一二, 小、殘戶殆踰一半。 以畿內一路言之, 十四萬七百餘戶, 而爲大、中戶者, 不過萬餘, 畿內如此, 他道可知。 惟此收錢, 從略則國家經用太不相準, 厚歛則民間愁怨反有甚焉, 此則決非可行之道也。 至於結布, 則我國田稅, 一自大同之法作, 而一結出米其數已多, 今又重之以規外之稅, 則無亦偏重之甚耶? 在昔仁廟朝, 有司有以經費匱竭, 至請四結出布, 而諸臣極言其傷農病民。 雖在殷阜之時, 四結一布, 猶且持疑, 矧今困急之日, 一結一布, 何可輕行乎? 況民之有一結者, 果幾人哉? 十家之聚, 有田者無二三, 半是雇人之田, 則殫其所出, 固不足供常稅, 況復責之以無前之別徵, 則終必至於棄良田如糞土, 陳廢不足, 渙散乃已, 隣族侵徵之弊, 殆甚良役, 朝家惟正之貢, 亦將耗縮矣。 今則爲國大計者, 罷守、摠兩營, 而付南北兩漢, 汰各司冗官, 而合三軍屯田, 此爲第一策。 而然實係大變革, 雖不可輕議。 而古人有言曰, ‘小變則小益, 大變則大益。’ 臣請以小變之說, 爲殿下陳之。 目今生齒可謂繁衆, 而軍額猶患不足者, 實由於富戶壯丁, 率多規避正役, 投入歇處, 正軍之子, 擧皆衣道袍曳唐鞋, 部伍之賤, 亦爲着天翼戴黑笠。 於是而有校ㆍ院生、官軍官之許多名色, 便作良民規避之淵藪。 由此良役無以搜括, 老弱反多苟充, 豈不痛心哉? 大抵卽今民情, 不專以自已二疋之役爲難, 只以隣族被侵, 爲難支之端。 黃口、白骨, 冤氣徹昊, 一室疊役, 積怨到骨, 民生之困瘁, 可謂慘矣。 以卽今紀綱、風俗、人心、世道, 雖有周官制度, 實無了當成就之望, 或有驛騷驚擾之慮。 若臣淺見, 則以爲諸道民役, 苟能依關西例, 凡爲二疋之役, 盡變爲一疋, 則諸般投屬, 自有査現充額之道, 而各道壯丁, 固無如前趨歇之弊矣。 雖以關西已行者論之, 定爲一疋之後, 至今民無怨而順行, 此最目前祛弊之良策也。 議者必曰, ‘二疋之役 減爲一疋, 則許多經用, 將無以責出’ 云, 此則臣亦有料度者。 國家一年經用之數, 一半無出處, 實難容易充補。 而如能總會國內財貨, 除出外方冗費, 推移區劃, 以充減半之數, 則亦豈無其道乎? 此若猶以爲不足, 則向所謂額外校生之類, 名以除番校生, 諸邑軍官旗牌官之屬, 稱爲收布軍官, 幷定一疋之役, 則此亦爲添補之一端也。
命還給。
- 【태백산사고본】 53책 71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70면
- 【분류】정론(政論) / 호구-호적(戶籍) / 재정-역(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