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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71권, 영조 26년 5월 19일 경신 1번째기사 1750년 청 건륭(乾隆) 15년

홍화문에 나아가 사서인을 불러서 양역에 대하여 묻다.

임금이 홍화문(弘化門)에 나아가 사서인(士庶人)을 불러서 양역(良役)에 대하여 물었다. 임금이 영의정 조현명(趙顯命) 등에게 말하기를,

"이윤(伊尹)이 이른바 ‘한 사람이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한다면 내가 밀쳐서 구렁에 떨어뜨린 것과 같다.’ 하였는데, 바로 내 마음을 이른 말이다."

하고, 이어서 하교하기를,

"너희들의 고질적인 폐단은 양역보다 더함이 없기 때문에 궐문에 임하여 묻게 된 것이다. 유포(遊布)와 구포(口布)는 당초에 논하고도 싶지 않으니, 호포와 결포로써 너희들의 소원 여부를 듣고자 한다. 반경(盤庚)091) 세 편은 모두 백성에게 하유하는 글이다. 나도 지금 백성들에게 하유하노니, 각자 소견을 말하라."

하고, 윤음을 받아 적으라고 명하고 말하기를,

"아! 이번에 궐문에 임한 것은 실로 백성을 위한 연유에서이다. 우리 사서(士庶)들은 모두 이 하유를 들으라. 생각해보면, 지금의 민폐는 양역 같음이 없으니, 지금에 이르러 고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느 지경에 이르러 탈가(稅駕)092) 될 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 성고(聖考)께서는 깊이 이 폐단을 진념하여 여러 차례 사륜(絲綸)을 내리셨고 그 뜻이 또한 간측하셨으나, 잘 받들어 모시지 못하여 한갓 임금은 있으나 신하가 없다는 탄식만 있었을 뿐이 아니었으니, 사왕(嗣王)이 된 자 그 일을 추모할 때 통탄하는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아! 오늘의 신민은 열성조께서 애휼(愛恤)하셨던 자들이다. 모든 부형(父兄)이 항상 아끼던 세간을 아들이나 아우에게 주면 아들과 아우된 자는 아끼고 보호하여 혹시 상하기라도 할까 항상 걱정하는 것인데, 하물며 억조(億兆) 사서(士庶)를 어찌 아끼고 보호하는 세간에 비교하겠는가? 부르짖고 원망하여 바야흐로 도탄 속에 있어도 구해내지 못하니, 장차 무슨 낯으로 지하에 돌아가서 선조(先祖)의 영령을 대하겠는가? 말이 여기에 미치니, 나도 모르게 목이 메인다. 그러나 경장(更張)이 잘못되면 그대로 둔 옛것만 같지 못한 것이다. 내가 임어한 지 2기(紀)093) 가 되었으나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다. 뜻이 비록 간직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 역시 선령과 신민을 저버림이 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일을 경영하면서도 자식에게 하유(下諭)하지 않으면, 이 어찌 부모의 도리라고 하겠는가? 한더위를 정양(靜養)하는 가운데 있으면서 병을 무릅쓰고 문에 임하여 사서(士庶)를 불러 물어보는 것이다. 옛부터 폐단을 구하려 하는 자는 호포(戶布)니 결포(結布)니 유포(遊布)니 구전(口錢)이니 하고 말하는데, 구전은 일이 매우 보잘것없고, 유포 역시 매우 불편하니, 이 두 가지는 나의 뜻이 결코 시행하고 싶지 않으므로 지금 묻고 있는 것은 호포와 결포 및 이 밖에 좋게 폐단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도인 것이다. 너희들도 상상컨대 칠실(漆室)의 한탄094) 이 있을 것이니, 각기 면전에서 소회를 말하고 모름지기 물러나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였는데, 오부(五部)의 방민(坊民)과 금군(禁軍) 등 50여 인이 모두 호포가 편하다고 말하고, 결포가 편하다고 말한 자는 몇 사람에 불과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한(漢)나라에서는 불필요한 관원을 도태시켰는데, 지금은 만민의 고혈(膏血)을 혹 제조 한 사람이 붓 한번 휘두르는 사이에 써버리게 되니, 어찌 해괴하지 않겠는가?"

하니, 조현명이 말하기를,

"수입을 헤아려 지출하여야만 경비를 써나갈 수 있으니, 안으로는 부질없는 관사에서 밖으로 주현(州縣)까지 적당히 줄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임어(臨御)한 지가 이미 2기(紀)에 가깝지만 해놓은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때문에 생민을 위하여 폐단을 제거하려고 한다마는 주현(州縣)을 줄이는 것은 곤란하다."

하니, 홍봉한이 말하기를,

"도성 안으로만 말하더라도 호전(戶錢)의 총계가 약 4만여 냥이 됩니다. 대호(大戶)·중호(中戶)를 막론하고 1냥을 넘지 않아야 하므로 4필의 무명을 내던 사람이 단지 1냥만을 내게 되는데, 어찌 혜택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궐문에 임하여 백성에게 하소한 것은 그 편부를 물어서 하정(下情)이 상달(上達)케 하려 함이었다. 이날 박문수는 먼저 사람을 시켜 방민에게 신칙하기를, ‘호포의 논의는 임금의 뜻이니, 자기 소견을 말하지 말고 호포로 대답하라. 그렇지 않으면 죄가 있으리라.’ 하였다. 박문수는 호조 판서로 경장(更張)의 일을 맡고 있으니 임금의 신임이 매우 두터웁다 하겠는데, 그가 먼저 임금의 뜻에 아부하여 속이고 가릴 계획을 꾸몄다. 아! 도하(都下)의 백성은 양역과는 관계가 없는데, 어떻게 한번의 효유에 쉽사리 감동되어 시골 백성을 대신하여 호포를 내기를 소원할 이치가 있겠는가? 다만 박문수가 시켜서 그러한 것이다. 이러고서 설사 달리 폐단을 바로잡을 좋은 방책이 있다 하더라도 하정이 어떻게 해서 상달될 수 있겠는가? 조현명·홍계희(洪啓禧)가 그들의 의욕을 펴려 한 것도 오로지 박문수가 우익(羽翼)이 된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양역의 폐단은 바로잡지 않을 수 없겠으나 임사(任使)하는 신하들이 모두 이러하니, 발을 돌리기도 전에 무한한 부작용과 실패가 뒤따랐음은 괴이하지 않도다. 위에는 성군이 있으나 나라를 모유(謨猷)하는 신하의 불성실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통탄함을 견딜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53책 7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68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금융(金融) / 역사(歷史)

  • [註 091]
    반경(盤庚) : 《서전》의 편명.
  • [註 092]
    탈가(稅駕) : 이사(李斯)가 진(秦)의 재상(宰相)이 되어 부귀가 극도에 이르자 "내가 탈가할 곳을 알지 못하겠노라."고 한 데서 나온 말. 탈가란 곧 해가(解駕)로, 수레를 풀고 편안하게 휴식하고자 하는 뜻임. 즉 이사가 부귀가 극도에 달하였으나, 향후의 길흉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으로 한 말임. 전하여 장래의 사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으로 쓰임.
  • [註 093]
    기(紀) : 1기는 12년임.
  • [註 094]
    칠실(漆室)의 한탄 : 국가의 정치가 잘못되는 것을 탄식한다는 뜻. 옛날 노(魯)나라 칠실이라는 고을에 살던 과년(過年)한 처녀가 국가의 정치가 잘못되면 그 영향이 아녀자에게까지 파급되어 고통을 겪게 된다는 말을 한 데서 온 말임.

○庚申/上御弘化門, 召士庶人, 詢問良役。 上謂領議政趙顯命等曰:

伊尹所謂 ‘一夫不獲, 若己推而納溝中’ 者, 正謂予心也。" 仍敎曰: "汝等痼弊, 莫如良役, 故臨門下詢。 游布、口布, 初不欲論, 而戶、結布間, 欲聞汝之願否。 盤庚三篇, 皆是諭民之書。 予今亦諭于民, 其各陳所見。" 令書綸音曰: "噫! 今者臨門, 實由爲民。 嗟我士庶, 咸聽玆諭。 顧今民弊, 莫若良役, 及今不更張, 將不知稅駕何地。 粤我聖考, 深軫此弊, 屢下絲綸, 聖意懇惻, 而不能奉承, 非徒有有君無臣之歎, 爲嗣王者追慕, 痛慨之心若何? 嗚呼! 今日臣民, 卽列祖聖考之愛恤者也。 凡人之父兄以常愛什物, 付之子弟, 爲子弟者愛之護之, 猶恐或傷, 況億兆士庶, 豈比愛護什物乎? 呼號怨咨方在塗炭而莫能濟活, 將何顔面歸拜陟降乎? 言之及此, 不覺嗚咽。 然更張不善, 莫若仍舊貫。 臨御二紀, 尙今遲回。 意雖在焉, 此亦負陟降負吾民也。 父母爲子弟做事, 而不諭子弟, 是豈父母之道哉? 當暑靜攝之中, 强疾臨門, 召問士庶。 自昔說救弊者, 戶布也結布也遊布也口錢也, 口錢事甚零瑣, 遊布亦甚難便, 此二件予意決不可行, 今問者戶布、結布與此外好樣救弊之道也。 爾等想有漆室之歎, 其各面陳, 毋須退悔。

五部坊民及禁軍等五十餘人, 皆言戶布便, 而便結布者不過數三人。 上曰: "則汰冗官, 而今時則萬民膏血, 或費於一提調一揮筆之間, 豈不駭乎?" 顯命曰: "量入爲出, 然後可以經費需用, 內而漫司, 外而州縣, 隨宜刪削亦宜。" 上曰: "臨御已近二紀, 而了無所爲。 故必欲爲生靈除弊, 而削縣難矣。" 鳳漢曰: "雖以城中言之, 戶錢之數, 約爲四萬餘兩。 勿論大、中戶, 毋過一兩, 則四疋木當納之民, 只納一兩, 亦豈不爲惠也?"

【史臣曰: 臨門籲衆, 欲詢其便否, 而使下情上達也。 是日朴文秀先使人飭坊民曰, ‘戶布之議, 上意也, 勿生己見, 以戶布爲對。 不然有罪。’ 文秀以戶判任更張事, 上之委任甚重, 而渠先阿上意, 爲欺蔽計。 嗚呼! 都下之民, 未有良役之侵, 豈易感動於一番曉諭, 替鄕民願納戶布之理哉? 特爲文秀之所指使而然也。 如是而雖有他救弊之策, 下情何由而上達? 所以趙顯命洪啓禧之展其所欲, 專由文秀之爲羽翼也。 良役之弊, 雖不可不救, 而任使之臣皆如此, 無怪乎不旋踵而有無限變敗也。 上有聖君, 而謀國之不臧至此, 可勝歎哉?】


  • 【태백산사고본】 53책 7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68면
  • 【분류】
    왕실(王室) / 정론(政論)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금융(金融)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