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 이명희가 과장의 폐단을 아뢰니 왕세자가 이를 가납하다
정언 이명희(李命熙)가 상서하여 말하기를,
"과장(科場)이 엄하지 못하여 교위(巧僞)가 날로 늘어만 갑니다. 금년 가을 생진(生進)의 감시(監試) 때에 함부로 들어왔다가 잡힌 자가 있었고 회시(會試) 때에도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왔다가 발각된 자도 있었으며, 정시(庭試)의 과거에서는 한 사람이 지은 글을 열 사람이 옮기어 베껴 납권(納券)하여 기묘하게 합격을 바라기도 하였으니, 청컨대 전시(殿試)나 정시에 면시(面試)하는 법을 정하여 거짓을 무릅쓰는 폐단을 없애도록 하소서. 명경과(明經科)의 옛 제도는 초시(初試)에서 그 글을 살피고 회시에서 그 강(講)을 시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시 때에 각각 방외(方外)에서 문장에 능한 자를 데려다가 그로 하여금 대작(代作)하게 하는데, 이를 원병(援兵)이라고 이름합니다. 청컨대 그 법을 서로 바꾸어 초시에서 강을 시험하고 회시에서 글을 고시하게 하여 간악한 폐단을 막게 하소서. 근자에 사치하는 풍조가 날로 성하여 귀척(貴戚)과 경재(卿宰)들이 다투어 제택(第宅)을 일으키어 높은 용마루와 거대한 들보들이 거리와 언덕을 가로 걸쳐 있습니다. 탐욕 많은 무변(武弁)이나 교활한 음관(蔭官)이 한번 풍부한 고을살이를 겪고 나면 문득 큰 제택을 세우는데, 이렇게 한 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전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이를 본 자는 다투어 서로 부러워하고 본뜨곤 합니다. 이 한가지 일로써 민력(民力)이 여기에 탕진되는 것을 족히 상상할 수 있으니, 마땅히 간가(間架)의 법을 정하여 그 가운데에서 참람함이 지나친 자는 즉시 훼철시켜야 합니다. 수령(守令)으로서 탐묵(貪墨)한 자는 남의 것을 박할(剝割)하여 제 몸을 살찌우고, 교활한 데 능한 자는 윗사람을 잘 섬겨서 명예를 구하며, 혼용(昏庸)한 자는 정사를 하리(下吏)에게 맡기곤 하는데, 세 가지 폐단이 정황은 같지 않지마는 해가 되는 것은 동일합니다. 마땅히 자주 어사(御史)를 보내되 반드시 온 도(道)를 살피지는 않더라도 한두 고을을 추생(抽栍)하여 기한을 절박하게 하지 말고 종용히 염찰(廉察)하게 한다면 팔로(八路)의 군현(郡縣)이 항상 어사가 그 지경을 출몰(出沒)하는 것같이 되어 소심(小心)하고 외탄(畏憚)하여 징집(懲戢)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왕세자가 이를 가납(嘉納)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70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54면
-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
○正言李命熙上書言:
科場不嚴, 巧僞日滋。 今秋監試, 生進之冒入被捉者有之, 會試時他人替入發覺者有之, 庭試之科, 一人爲文十人傳寫, 而納券以求奇中, 請定爲殿、庭面試之法, 以革假冒之弊。 明經科舊制, 初試考其文, 會試課其講。 故初試時各携方外能文者, 使之代作, 名以援兵。 請兩易其法, 初試課其講, 會試考其文, 以防其奸弊也。 近者奢風日盛, 貴戚卿宰, 競起第宅, 崇棟巨樑, 橫跨巷陌。 貪弁、猾蔭一經腴邑, 便起甲第, 爲之者恬不知恥, 見之者爭相羨效。 卽此一事, 足想民力之盡於是矣, 宜定間架之法, 其尤僭踰者, 卽毁撤之。 守令之貪墨者, 剝割肥己, 能猾者善事要名, 昏庸者委政下吏, 三弊不同情, 而爲害則一也。 宜頻遣御史, 不必遍審一道, 抽栍一二邑, 勿迫期限, 使之從容廉察, 則八路郡縣, 恒若御史之出沒其境, 小心畏憚, 有所懲戢矣。
王世子嘉納之。
- 【태백산사고본】 52책 70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54면
- 【분류】정론(政論)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