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69권, 영조 25년 6월 23일 기해 2번째기사
1749년 청 건륭(乾隆) 14년
임금이 금성위 박명원의 집에 거둥하였는데 이 날이 화평 옹주의 소상이다
임금이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의 집에 거둥하였는데, 이 날이 화평 옹주(和平翁主)의 소상(小祥)이었다. 임금이 그 대문에 이르러 남여(藍輿)에서 내려와 슬프게 눈물을 흘리며 배종(陪從)한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오륜(五倫)도 없는가? 모름지기 나에게 하루의 여가라도 허락하라."
하고, 임금이 화평 옹주를 생각하는 슬픔이 심하여 자주 그 집에 거둥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임금이 하교하기를,
"밤이 깊어 문을 닫았을 것이니 군병(軍兵)이 더러 끼니를 거르는 폐단이 있을 것이다. 군문(軍門)으로 하여금 밥을 전달하도록 하고, 그 성(城) 밖에 있는 자에 대해서는 군문에서 밥을 먹인 뒤에 계달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4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