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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69권, 영조 25년 4월 11일 무자 1번째기사 1749년 청 건륭(乾隆) 14년

축시 정 5각에 대보단에서 친히 명나라 세 황제에게 제향을 올리다

축시(丑時) 정 5각(刻)에 대보단(大報壇)에서 친히 명나라 세 황제에게 제향을 올렸다. 임금이 면복(冕服) 차림으로 여(輿)를 타고 영화당에서 나오니 승지와 사관이 제복을 입고 배종하였다. 중문 밖에 이르러 【지금의 열천문(冽泉門)이다.】 임금이 여에서 내려 동쪽 협문(夾門)을 거쳐 소차(小次)에 들어가 장차 제향을 행할 즈음에 전악(典樂)이 공인(工人) 이무(二舞)087) 와 육일(六佾)을 거느리고 들어와 자리에 나아가니, 감찰(監察)·전사관(典祀官) 그리고 여러 집사(執事)들이 모두 먼저 네 번 절하였다. 진폐 찬작관(進幣瓚爵官)·천조관(薦俎官)·전폐 찬작관(奠幣瓚爵官)이 들어와 남쪽 유문(壝門) 밖으로 나아가고 대축(大祝)은 단(壇)에 올라와 신위(神位) 앞에 나아가서 장막을 걷고 통례(通禮)가 외판(外辦)을 아뢰자 임금이 면복을 갖추고 소차에 나아간다. 예의사(禮儀使)가 임금을 인도하여 동쪽 문으로부터 들어와 판위(版位)에 나아가 북쪽을 향하여 서고 인하여 행사(行事)하도록 청하자 털과 피[毛血]를 땅에 묻게 하고 헌가(軒架)는 경안지악(景安之樂)과 열문지무(烈文之舞)를 연주하였으며, 음악이 8장(章)에서 끝이 나자 임금이 네 번 절하고 위차에 있는 자도 또한 절을 하였는데 승지와 사관은 예에 따라 절하지 않았으며, 절이 끝나자 음악이 그쳤다.

임금이 관세(盥洗)를 행하고 제 1위(位)의 준소(尊所)에 나아가 서쪽을 향하여 서니 등가(登歌)가 숙안지악(肅安之樂)과 열문지무(烈文之舞)를 연주하였다. 임금이 남쪽 섬돌로부터 올라와서 태조 고황제의 신위 앞에 나아가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신관례(晨祼禮)를 행하고 엎드렸다 일어났다. 그리고 남쪽 섬돌로부터 내려와 제 2위의 준소에 나아가 서쪽을 향하여 서서 처음의 예와 같이 하였고, 제 3위에도 이와 같이 하였다. 임금이 위차로 돌아오자 찬(饌)을 올리고 헌가는 옹안지악(雍安之樂)을 연주하였다. 음악이 그치자 임금이 제 1위의 준소에 나아가 서쪽을 향해 서니 등가가 수안지악(壽安之樂)과 열문지무(烈文之舞)를 연주하였다. 임금이 섬돌에 올라와 태조의 신위 앞에 나아가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고 근시(近侍)가 술잔을 드리니 임금이 세 번 모래 땅에 지우고 술잔을 올리니 악사(樂師)가 음악을 그쳤다. 대축이 제문을 읽으니 임금은 엎드려 있다가 제문 읽기를 마치자 임금이 내려가 위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예의사가 인하여 임금을 인도하여 제 2의 신위에 나아가 초헌례를 처음과 같이 거행하고 대축이 제문을 읽었으며, 제 3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다.

대축이 제문을 읽고 읽기를 마치자 문무(文舞)는 물러나고 무무(武舞)가 나아갔으며 헌가는 서안지악(舒安之樂)을 연주하였다. 음악이 그치자 임금이 아헌례를 행하기를 처음의 예와 같이 하였고 춤은 소무(昭武)를 썼으며, 임금이 종헌례를 역시 이와 같이 행하였다. 임금이 남쪽 섬돌로부터 올라와서 의종의 신위 앞에 나아가 북쪽을 향해 꿇어앉아 음복을 하고 위차에 돌아와 네 번 절하였다. 대축은 변두(籩豆)를 거두고 등가는 옹안지악(雍安之樂)을 연주하였으며 음악이 그치자, 헌가가 경안지악(景安之樂)을 연주하고 임금이 네 번 절을 하였으며 절을 마치자 음악이 그쳤다. 임금이 망요위(望燎位)에 나아가니 승지는 지방(紙牓)을 받들고 대축은 축폐(祝幣)를 받들어 불살랐으며, 예의사는 임금을 인도하여 소차에 돌아왔다. 이날 밤에 임금이 신관례를 행하고 내려와서 위차에 돌아오자 한 떼의 검은 구름이 북쪽으로부터 일어나 신령스러운 비가 잠시 내렸고 슬픈 바람이 가볍게 불어와 동산의 나무에서 소리가 나고 황색 장막이 휘날렸는데, 이미 네 번 절하고 돌아오자 바람에 구름이 걷히었고 북두 칠성이 찬란하게 빛났으니, 종사관(從事官)과 뜰아래 있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38면
  • 【분류】
    왕실(王室) / 외교(外交)

  • [註 087]
    이무(二舞) : 문무(文舞)와 무무(武舞).

○戊子/丑正五刻, 親享大明三皇帝於大報壇。 上具冕服, 乘輿出映花堂, 承、史服祭服陪從。 到中門外, 【今冽泉門。】 上降輿, 由東夾門, 入小次, 將行祭, 典樂帥工人二舞、 【文舞、武舞。】 六佾, 入就位, 監察、典祀官、諸執事皆先四拜。 進幣瓚爵官、薦俎官、奠幣瓚爵官入就南壝門外, 大祝陞壇, 詣神位前, 撤帕, 通禮啓外辦, 上具冕服, 出小次。 禮儀使導上入自東門, 詣版位北向立, 因請行事, 瘞毛血, 軒架作景安之樂、烈文之舞, 樂八成, 上四拜, 在位者亦拜, 而承、史例不拜, 拜訖, 樂止。 上行盥洗, 詣第一位尊所, 西向立, 登歌作肅安之樂、烈文之舞。 上陞自南陛, 詣太祖高皇帝神位前, 北向跪, 行晨祼禮, 俯伏興。 降自南陛, 詣第二位尊所, 西向立, 如初禮, 第三位, 亦如之。 上降復位, 進饌, 軒架作雍安之樂。 樂旣止, 上詣第一位尊所, 西向立, 登歌作壽安之樂、烈文之舞。 上陞陛, 詣太祖神位前, 北向跪, 近侍宿爵, 上三祭沙地而咜, 樂師止樂。 大祝讀祭文, 上俯伏, 讀訖, 上降復位。 禮儀使因導上詣第二位, 行初獻禮如初, 大祝讀祭文, 第三位亦如之。 大祝讀祭文, 讀訖, 退文舞進武舞, 軒架作舒安之樂。 樂止, 上行亞獻如初禮, 而舞用昭武, 上行終獻亦如之。 上陞自南陛, 詣毅宗神位前, 北向跪, 飮福降復位, 四拜。 大祝撤籩豆, 登歌作雍安之樂, 樂止, 軒架作景安之樂, 上四拜, 拜訖, 樂止。 上詣望燎位, 承旨奉紙牓, 大祝奉祝幣焚之, 禮儀使導上, 還小次。 是夜, 上行晨祼禮, 降復位, 一陣黑雲, 自北而起, 靈雨乍零, 悲風颯至, 苑樹有聲, 黃帳飄揚, 旣行四拜返, 風收雲, 星斗森燦, 從官在庭下者無不異之。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38면
  • 【분류】
    왕실(王室) / 외교(外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