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접하다
왕세자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접하였는데, 영의정 김재로(金在魯)·좌의정 조현명(趙顯命)이 말하기를,
"매사를 반드시 대조(大朝)께 품의하여 아뢴 뒤에 재결하시어 사람의 자식이 되어 감히 스스로 하지 않는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하니, 하령하기를,
"마땅히 명심하겠다."
하였다. 김재로가 말하기를,
"간교한 백성들 가운데 전토와 노비를 다투는 자가 이치에 꿀리면 갑자기 가짜 문권을 만들어 헐값으로 궁방(宮房)에 팔고, 궁방에서는 내수사(內需司)에 보고하여 재가를 받아 행관(行關)하며, 곧바로 추쇄하여 타량(打量)하고, 그렇지 않으면 잡아 가두어 엄하게 처벌하여 반드시 빼앗고야 마니, 지방의 잔약한 백성들은 원통함이 뼈에 사무쳐 위로 천화(天和)를 범하기에 충분합니다. 대조(大朝)께서 깊이 이 폐단을 알고 진고(陳告)한 자는 형배(刑配)하라는 하교가 있었는데도 사람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이런 폐단이 전과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송사(訟事)가 판결되지 않았는데, 먼저 사들이는 자는 해당 궁방의 직임을 맡은 자와 내수사의 관원을 종중 감처(從重勘處)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여러 신하들이 생각한 바를 간략하게 진달하고 곧 물러가기를 청하니, 하령하기를,
"대조께서 해가 저물기 전에는 파하지 말라는 하교가 계셨으니, 물러가지 말도록 하라."
하자, 조현명이 말하기를,
"만약에 물으실 일이 있으면 신 등이 마땅히 우러러 대답하겠습니다."
하니, 하령하기를,
"민간의 질고를 내가 비록 대략은 알지만 그 상세한 것은 모르니, 경 등은 나를 위하여 말해 주시오."
하니, 김재로가 먼저 경작의 괴로움과 양역의 폐단을 진달하였고, 조현명은 말하기를,
"임금에게 백성이 있는 것은 산에 흙이 있는 것과 같아서 흙이 쌓여 산이 되는데 그 밑을 파면 산은 저절로 무너지고, 백성이 모여 나라가 되는데 그 백성을 학대하면 나라는 곧 망하고 맙니다. 그러니 사랑할 자가 어찌 백성이 아니며, 두려워할 자가 역시 어찌 백성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하니, 하령하기를,
"옳다."
하였다. 대신이 또 물러나기를 청하자, 왕세자가 한참 있다가 이에 허락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37면
- 【분류】정론(政論) / 사법(司法) / 재정(財政)
○王世子引接大臣、備堂, 領議政金在魯、左議政趙顯命曰: "每事必稟大朝然後裁決, 以盡爲人子不敢自專之道焉。" 令曰: "當銘心矣。" 在魯曰: "奸民之爭田土、臧獲者, 理屈輒僞券, 廉賣於宮房, 宮房報內司, 啓下行關, 直令推刷打量, 否則捉囚嚴刑, 必奪乃已, 遐遠殘民, 刻骨冤痛, 足以上干天和。 大朝深知此弊, 有陳告者刑配之敎, 而人不畏法, 此弊猶前。 今後未決訟而先買者, 該宮所任、內司官員從重勘處。" 從之。 諸臣略陳所懷, 卽請退出, 令曰: "大朝有日入前勿罷之敎, 毋退也。" 顯命曰: "若有發問之事, 臣等當仰對矣。" 令曰: "民間疾苦, 余雖略知, 未得其詳, 卿等爲余言之。" 在魯首陳耕作之苦、良役之弊, 顯命曰: "君之有民, 猶山之有土, 土積爲山, 而掘其底則山自崩, 民聚爲國, 而虐其民, 則國乃亡。 然則可愛者非民, 而可畏者亦非民乎?" 令曰: "唯。" 大臣又請出, 王世子良久乃許之。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37면
- 【분류】정론(政論) / 사법(司法)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