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68권, 영조 24년 11월 4일 갑인 3번째기사
1748년 청 건륭(乾隆) 13년
박문수가 대내의 진공한 물품에 대해 각년에 지불한 비용을 조목별로 기록해 아뢰다
호조 판서 박문수(朴文秀)가 대내(大內)로 진공(進供)한 온갖 물품에 대하여 호조에서 지난 각 년(各年)에 지불한 비용의 다소(多小)를 조목별로 기록하여 입대(入對)해 아뢰었는데, 대체로 모람(冒濫)된 것이 과반이나 되었다. 임금이 이를 열람하고 기뻐하여 말하기를,
"부기(簿記)가 명백하여 나로 하여금 알기 쉽게 만들었다."
하고, 드디어 어묵(御墨)으로 그대로 둘 것은 두고 삭제시킬 것은 삭제시키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곧 1부(部)의 《주례(周禮)》를 이루었으니, 내가 영성(靈城)162) 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영성도 나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역시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였다. 하교하여 경외(京外)의 제사(諸司)에 신칙해서 이미 어공(御供)을 감하였으니, 감히 부비(浮費)가 없게 하라는 뜻으로 수서(手書)를 내리고, 박문수를 표창하였다. 승지 김상적(金尙迪)이 말하기를,
"재변(災變)을 만난 끝에 성상께서 절약하고 감손시키는 정사가 참으로 하늘의 뜻에 대응하는 실상을 얻었습니다. 박문수의 이번 일에 대하여 신의 생각으로는 그 공이 무신년163) 에 역적을 토죄한 것보다 더 낫다고 여깁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1책 68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12면
- 【분류】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