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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68권, 영조 24년 8월 10일 임진 2번째기사 1748년 청 건륭(乾隆) 13년

명릉에 행행하였는데, 융복을 갖추고 교자를 타다

임금이 명릉(明陵)111) 에 행행하였는데, 융복(戎服)을 갖추고 교자(轎子)를 탔다. 금암(黔巖)에서 주정(晝停)하였고, 명릉이 있는 동구(洞口)에 이르러서는 교자에서 내려 여(輿)를 타고 익선관에 참포(黲袍)와 오서대(烏犀帶)를 갖추었다. 홍살문 밖에 이르러 배릉위(拜陵位)로 나아가 사배례(四拜禮)를 마친 다음 이어 능상(陵上)을 봉심(奉審)하였다. 여러 신하들은 천담복(淺淡服)에 오각대(烏角帶)를 갖추고 따라 나아갔다. 임금이 곡장(曲墻)의 두 모퉁이를 돈 뒤에 도로 대왕(大王)의 능 앞에 엎드려 한참을 있다가 손으로 돌을 어루만지며 오열하면서 하교하기를,

"5년이 지난 뒤에 이제 비로소 배성(拜省)하게 되니, 슬픈 감회가 배나 더하다."

하였다. 임금이 판위(板位)에 나아가 사배례를 마치고 신위(神位) 앞으로 나아가 향을 피우고 잔을 올린 다음, 판위로 물러나와 사배(四拜)하였다.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을 끝내고 나서 익릉(翼陵)·경릉(敬陵)·창릉(昌陵)의 섭행제(攝行祭)도 또한 일시에 거행하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소차(小次)로 들어가서 조금 있다가 나와 사릉위(辭陵位)로 나아가 사배례를 행하였다. 이어 익릉·경릉으로 나아가서 홍살문 밖에 이르러 사배례를 행하고 능상(陵上)과 정자각(丁字閣)의 봉심을 의주(儀註)대로 하였다. 임금이 융복을 갖추고 깃을 꽂은 다음 경릉의 재실(齋室)에서 회가(回駕)하였다. 그리고 승지를 나누어 보내 창릉순회묘(順懷墓)를 봉심하게 하였다. 오는 길에 화평 옹주(和平翁主)의 집에 임어하였다가 환궁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1책 68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05면
  • 【분류】
    왕실(王室) / 의생활(衣生活)

○上幸明陵, 具戎服乘轎。 晝停于黔巖, 至明陵洞口, 降轎乘輿, 具翼善冠、黲袍、烏犀帶。 至紅箭門外, 詣拜陵位, 四拜禮訖, 仍奉審陵上。 諸臣以淺淡服烏角帶隨詣。 上環曲墻兩周後, 還伏大王陵前良久, 以手撫石嗚咽, 敎曰: "五年之後, 今始拜省, 感愴一倍。" 上詣板位四拜禮訖, 詣神位前, 焚香獻酌, 退出板位四拜。 亞、終獻畢, 命翼陵敬陵昌陵攝行祭, 亦一時擧行。 上入小次, 少頃出詣辭陵位, 行四拜禮。 仍詣翼陵敬陵, 至紅箭門外, 行四拜禮, 奉審陵上及丁字閣如儀。 上具戎服揷羽, 自敬陵齋室回駕。 分遣承旨奉審昌陵順懷墓, 歷臨和平翁主第而還宮。


  • 【태백산사고본】 51책 68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05면
  • 【분류】
    왕실(王室) / 의생활(衣生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