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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68권, 영조 24년 8월 2일 갑신 1번째기사 1748년 청 건륭(乾隆) 13년

화평 옹주를 장사지냈는데 의물의 성대함이 국장에 버금갈 정도였다

화평 옹주(和平翁主)를 장사지냈는데, 의물(儀物)의 성대함이 국장(國葬)에 버금갈 정도였다. 분묘(墳墓)를 만드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렸으므로 기읍(畿邑)의 백성들이 그 때문에 농사를 폐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 옹주가 하가(下嫁)할 때 금평위(錦平尉) 박필성(朴弼成)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귀주(貴主)들의 혼인에 매양 주혼(主婚)하여 왔었다. 그런데 화순 옹주(和順翁主)가 하가할 때의 의물을 내가 관주(館主)가 되었을 때에 견주어 보면 열 배나 더 풍성하였으며, 이제 귀주의 자장(資裝)은 또 화순 옹주에 견주어보면 더할 수 없이 풍성하였다."

하였다. 옹주가 출궁(出宮)했을 처음에 임금이 이현(梨峴)에 있는 별궁(別宮)을 하사하였는데, 옹주가 사양했었다.


  • 【태백산사고본】 51책 68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0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甲申/葬和平翁主, 儀物之盛, 亞於國葬。 治墳數朔, 畿邑之民, 爲之廢農。 初翁主下嫁時, 錦平尉 朴弼成語人曰, ‘吾於貴主之婚, 每爲主婚, 和順之下嫁, 比吾館主時儀物之豐十倍矣。 今貴主資裝, 比和順, 尤萬萬矣。’ 翁主出宮之初, 上賜梨峴別宮, 主辭焉。


  • 【태백산사고본】 51책 68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0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