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영조실록 67권, 영조 24년 1월 12일 정유 1번째기사 1748년 청 건륭(乾隆) 13년

양역의 공평을 기하기 위해 사정을 엄히 할 것을 명하다

사정(査正) 당상과 낭청을 입시(入侍)하라고 명했는데, 왕세자(王世子)도 시좌(侍坐)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빈풍(豳風)009) 으로 농사짓는 것을 가르치려는 뜻은 원량(元良)010) 으로 하여금 먼저 양역(良役)의 고통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대개 양역의 고통은 열조(列朝)로부터 이미 그러했는데 수령들이 누혈(漏穴)을 만들어 징렴(徵斂)하여 사용(私用)하고 있으니 이는 극히 무상(無狀)한 처사이다. 민진후(閔鎭厚)는 단지 줄이기만을 힘썼을 뿐이어서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지금 이 하교가 있은 뒤에 진실로 숨기거나 빠뜨리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중률(重律)로 감처(勘處)하겠다. 그러나 나는 엄히 계칙하지만 경 등은 힘써 너그러운 쪽을 따른 연후에야 뒷날의 폐단이 없을 것이다."

하고, 이어 하교하기를,

"이번에 사정(査正)하는 것은 그 의도가 백성을 위하는 데 있는 것이니, 경외(京外)를 어찌 다르게 할 수 있겠는가? 왕명(王命)은 마땅히 가까운 데에서 먼 데로 파급되는 법인데, 도성 백성들의 거꾸로 매달린 것 같은 고통이 외방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사정을 외방에만 행하는 것이 어찌 왕정(王政)에 있어 마땅한 것이겠는가? 서울의 사정안(査正案)도 본청(本廳)으로 하여금 똑같이 거행하게 하라. 아! 백성들의 큰 폐단은 양역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과거 열조(列朝) 때에는 강구(講究)한 것은 많았으나 좋은 방책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적막하기만 하다. 지금의 이 거조에 대해서는 앞서의 전교에서 이미 하유하였는데 대정령(大政令)이 잘 행해진다고 하더라도 제거해야 될 폐단 또한 작지 않을 것이다. 아! 전결(田結)을 숨겨 사용(私用)한 데 대한 율(律)은 무거운 것인데, 더구나 사사로이 국민을 사역(使役)시킨 것이겠는가? 이번에 사정한 뒤 혹 추후에 출현한 것을 보고하지 않는다면 이는 임금을 속이는 것이고 또한 그 임금의 적자(赤子)를 사용(私用)한 것이 된다. 어찌 아 대부(阿大夫)011) 가 전야(田野)를 개간하지 않은 정도일 뿐이겠는가? 의당 드러나는 대로 무겁게 다스리겠다. 위에 있는 사람이 법을 적용함에 있어 어찌 사람의 귀천 때문에 높이거나 낮출 수가 있겠는가? 각도(各道)의 성책(成冊)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하교하는 것은 이 또한 먼저 명령을 내리고 뒤에 다스린다는 뜻이니, 삼가 이 뜻을 본받아 방헌(邦憲)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고, 서인수(徐仁修)에게 고신(告身)을 빼앗는 율(律)을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이는 금오(金吾)의 의언(議讞)으로 인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하문한 다음 이 전교가 있게 된 것이었다. 좌의정 조현명(趙顯命)이 서로(西路)의 제번전(除番錢)012) 을 비국의 회록(會錄)에 보고하게 할 것을 청하니, 이를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67권 3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277면
  • 【분류】
    행정(行政) / 사법(司法) / 재정(財政)

  • [註 009]
    빈풍(豳風) : 《시경(詩經)》의 빈풍 칠월편(七月篇)을 말하는 것으로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에게 농사의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지은 시임.
  • [註 010]
    원량(元良) : 세자.
  • [註 011]
    아 대부(阿大夫) :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아(阿)라는 지방을 맡아 다스렸던 대부(大夫)인데, 왕의 측근에게 아부를 잘 하여 정치를 잘한다는 칭송이 자자했지만 실제의 정치는 매우 잘못하였던 탓으로 결국 팽형(烹刑)을 당했음.
  • [註 012]
    제번전(除番錢) : 군관(軍官) 등이 번(番)에 드는 것을 면하기 위하여 대신 바치던 돈.

○丁酉/命査正堂、郞入侍, 王世子侍坐。 上曰: "予以《豳風》敎稼穡之意, 欲使元良, 先知良役之苦。 蓋良役之苦, 自列朝已然, 而守令之作爲漏穴, 徵斂私用, 極無狀。 閔鎭厚但務減省而無效。 今此下敎之後, 苟有隱漏, 當以重律勘處。 然予則嚴飭, 而卿等務從寬緩, 然後可無後弊。" 仍敎曰: "今者査正之擧, 意蓋爲民, 京外奚異? 王命當自近及遠, 都民之倒懸, 無異外方。 而其所査正, 只行外方, 此豈王政之所宜? 京中査正案, 其令本廳, 一體擧行。 噫! 民之巨弊, 莫先於良役, 越在列朝, 講究者多, 而其無善策, 尙今寥寥。 今者此擧, 旣諭前敎, 豈曰大政令而其若善行, 除弊亦不細。 噫! 隱用田結, 其律重也, 況私役國民乎? 今番査正之後, 若或有不報追現者, 則是欺君也, 亦是私用其君之赤子也。 奚徒阿大夫田野之不闢乎? 當隨現重繩。 而在上者用法, 豈可以人之貴賤而低仰乎? 各道成冊未到之前, 先爲下敎者, 此亦先令後治之意也, 欽體此意, 無犯邦憲。" 命徐仁修, 施以告身之律, 因金吾議讞, 下詢諸臣而有是敎。 左議政趙顯命, 請以西路除番錢, 報備局會錄, 允之。


  • 【태백산사고본】 50책 67권 3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277면
  • 【분류】
    행정(行政) / 사법(司法)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