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 감사 조영로가 양역(良役)의 폐단에 대해 상소하다
전라 감사 조영로(趙榮魯)가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국가 백년(百年)의 가장 고질적인 폐단은 양역(良役)이니, 호포(戶布)·구전(口錢)·유포(遊布)·결포(結布)의 말이 어지러히 번갈아 나왔으나 적절히 따를 바가 없습니다. 백성은 더욱 날로 곤란해지고 폐해는 날로 더욱 심해져 간혹 한 집에서 부자(父子)·조손(祖孫)이 군적(軍籍)에 이름이 편입되기도 하고, 간혹 한 집에서 3, 4형제가 직접 군포(軍布)에 응하기도 합니다. 또 이웃의 이웃이기 때문에 책임을 당하고 일가의 일가이기 때문에 징수(徵收)를 당하게 됩니다. 어린 아이는 유하(乳下)에서 포함되고, 죽은 사람은 지하에서 징수를 당하며, 한 사람이 달아나면 열 가구가 보존되지 못하니, 비록 양재(良宰)·현수(賢守)가 있더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오직 신이 한 가지 얻은 것을 망령되이 말씀드리건대, 변통(變通)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각읍의 잡역(雜役)의 대가로 바치는 쌀을 임시 변통으로 상량(商量)하여 크게 억제를 가하면 대체로 남는 수량이 있게 됩니다. 각군(各軍) 2필(疋)의 역(役)에 대하여 그 1필을 남겨 두고 그 감하여 준 대가를 잡역 가미(雜役價米)의 남는 숫자로 옮겨 채우면 각읍에 있어서는 심하게 손해보는 것이 없고 양역(良役)에 있어서도 역시 약간 헐해지지 않겠습니까?
호남(湖南)으로 말씀드리자면 당년(當年)의 재앙으로 탈이 난 2만 7천의 실결(實結)을 제외하면 나머지 결수(結數)는 20만 결(結)입니다. 1결에서 내야하는 세액은 대동미(大同米)·삼수량(三手糧), 잡비와 아울러 모두 20두(斗)가 되는데 경납(京納)되고, 영(營)·읍(邑)의 월름(月廩) 및 손님에게 지출되는 것은 그 가운데에서 상쇄(相殺)하여 회계해야 됩니다. 또 잡역미(雜役米)는 적게는 5, 6두를 바치고 많게는 간혹 10여 두에 이르며, 모두 합하면 1결에서 바치는 것은 많게는 30여 두가 되니, 지금부터 시작하여 1개 도(道)를 통하여 그 많고 적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특별히 28두로 정하면 실제로 균부(均賦)의 도(道)가 될 것입니다. 20두는 이미 원세(元稅)가 되므로 남은 8두 이내에서 3두를 치계(雉鷄)·시탄(柴炭)을 바꾸어 쓰는 비용으로 삼아도 남는 것이 있는데, 실제 남은 5두는 평년(平年)의 쌀값으로 1관(貫)의 돈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는 1결이 1관의 돈을 얻는 것이니 20만 결로 20만 관의 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내(道內) 경외(京外)에서 군포를 바치는 사람의 총 합계는 9만 3천 1백 38명이니, 바치는 군포는 통계가 18만 6천 2백 76필이 됩니다. 이제 그 쌀을 감하여 20만 관의 돈으로 하되 매양 포 1필은 운반비로 절산(折算)하여야 합니다. 잡역으로 말씀드리자면, 옛날에는 5두·10두로 다과부적(多寡不敵)한 것을 지금 한결같이 8두로 한다면, 부역이 고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양정(良丁)으로 말씀드리자면 옛날에는 2필을 바치던 것을 지금은 변경하여 1필로 한다면, 양역이 가볍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먼저 연충(淵衷)을 결정하시고 다음으로 여러 신하에게 물어 보셔서 신으로 하여금 우선 본도(本道)에서 그 편부(便否)를 시험하도록 허락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양역(良役)의 폐단이 오늘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아픔이 내 자신에 있는 듯하니 식식(食息)을 어찌 느슨히 할 수 있겠느냐? 수령(守令)을 제대로 가려 뽑지 못하여 황구(黃口)에게 첨정(簽丁)하고 인족(隣族)에게 징포(徵布)하며, 남자가 아닌데도 충원을 대신해야 하고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성책(成冊)되어 한 집안에 10여 필이 밑돌지 않으니, 이런 폐단을 막지 않고 다만 그 필수(疋數)만을 줄인다면 날이 오래되고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10필이 넘게 되지 않으리란 것을 어찌 알겠는가? 경과 여러 수령들은 힘쓰고 힘쓰라. 그 가운데 민(民)이 많고 군(軍)이 적거나, 군이 많고 민이 적은 곳을 상세히 살펴 그 상황을 알리고 상량해서 처리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9책 6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26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역(軍役) / 재정-역(役)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재정-잡세(雜稅)
○庚辰/全羅監司趙榮魯上疏, 略曰:
國家百年痼弊, 最是良役, 戶布、口錢、遊布、結布之說, 紛然迭出, 而莫適所從。 民益日困, 弊日益深, 或一家而父子祖孫, 名編軍籍, 或一室而三四兄弟, 身應軍布。 又以隣之隣而見責, 族之族而被徵。 黃口有乳下之括, 白骨被地下之徵, 一人在逃, 十家不保, 雖良宰、賢守, 亦末如之何矣。 第惟如臣一得, 妄謂有可以變通者。 各邑雜役價代捧之米, 通融商量, 大加撙節, 則多有餘數。 就各軍二疋之役, 存其一疋, 而其所減之代, 以雜役價米餘數移充, 則在各邑無甚所損, 而在良役不亦稍歇乎? 以湖南言之, 除當年災頉二萬七千實結, 餘結則二十萬結。 而一結所出稅, 大同、三手糧竝雜費總爲二十斗, 爲京納, 而營邑月廩及使客支供, 自其中會減者也。 又雜役米, 少者捧五六斗, 多或至十餘斗, 摠計一結所捧, 多則爲三十餘斗, 自今爲始, 通一道陞降其多寡, 特定爲二十八斗, 則實爲均賦之道也。 二十斗旣爲元稅, 而所餘八斗內, 以三斗爲雉鷄、柴炭貿用之費而有餘, 實餘五斗, 以中年米價, 可貿一貫錢。 是一結得一貫錢, 二十萬結可得二十萬貫錢。 而道內京外納布軍摠合爲九萬三千一百三十八名, 所納軍布計爲十八萬六千二百七十六疋也。 今使減其米, 而以二十萬貫錢, 每布一疋, 折駄運之需。 以雜役言之, 昔之五斗、十斗, 多寡不敵者, 今爲一定之八斗, 則可謂賦役均也。 以良丁言之, 昔之納二疋者, 今變爲一疋, 則可謂良役輕也。 伏願先斷淵衷, 次詢諸臣, 許令臣先從本道, 試其便否。
批曰: "良役之弊, 非今斯今。 若恫在己, 食息奚弛? 不擇守令, 則簽黃口徵隣族, 非男子而代充, 不及産而成冊, 一家之內, 不下十餘疋, 不禁此弊, 只減其疋, 日久歲遠, 安知不復爲過十乎? 卿與諸守令, 懋哉懋哉。 其中民多軍少, 軍多民少處, 詳察狀聞, 商量處之。"
- 【태백산사고본】 49책 6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26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역(軍役) / 재정-역(役)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재정-잡세(雜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