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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63권, 영조 22년 1월 12일 기묘 2번째기사 1746년 청 건륭(乾隆) 11년

좌의정 송인명이 탕평을 주장하며 인재의 보합을 아뢰다

좌의정 송인명(宋寅明)이 아뢰기를,

"신이 반생(半生) 동안 도움을 받아 임금을 섬겨 왔던 것은 곧 탕평(蕩平)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위(誠僞)가 혼동되기 쉽고 득실(得失)이 뒤섞여 끝내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같이 하게 하지 못한 것은 물론, 부억(扶抑)이 서로 혹 지나치고 취사(取捨)가 혹 치우침에 따라 필경에는 각기 자신만을 위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그 폐단을 바로잡으려 한다면 인재를 널리 모아 치우친 정사(政事)를 하지 않아야 할 뿐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계해일기(癸亥日記)》를 본적이 있다. 인묘(仁廟)께서 하교하기를, ‘대북(大北)의 자손이라도 죄가 없으면 기용하고, 공신의 아들이라도 죄가 있으면 베어야 한다.’ 했는데, 이 하교를 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요(堯)·순(舜)을 본받으려면 의당 조종(祖宗)을 본받아야 하는 법이니, 경의 이 말은 경의 마음만 그럴 뿐만이 아니라 나의 마음도 본래 이러하였다. 경은 비록 널리 기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말을 했으나 오직 재능이 있는 사람만을 뽑아야 할 뿐이다. 어떻게 저울로 다는 것처럼 반드시 고르게 할 수 있겠는가?"

하자, 송인명이 말하기를,

"성심(聖心)의 소재를 신도 또한 우러러 본받고 있습니다만 세도(世道)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성상께서도 또한 어떻게 그 정위(情僞)를 다 살필 수 있겠습니까? 지금 탕평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만 모두 자신만을 위할 뿐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국가와 운명을 함께 한 세신(世臣)과 시례(詩禮)의 정훈(庭訓)이 있는 구가(舊家)의 자손으로서 나아가는 것은 어렵게 여기고 물러가는 것은 쉽게 여기는 사람들이야 어찌 기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축년006) ·임인년007) ·무신년008) 에 자신에 하자가 있었던 사람은 진실로 말할 것이 없겠습니다만, 애당초 하자가 없는 사람이나 신진(新進)인 명관(名官)의 부류들이야 무슨 분별할 만한 완준(緩峻)이 있기에 억지로 명목(名目)을 만들어 그 사이가 자못 수화(水火)와 빙탄(氷炭)보다도 더 심하게 되었으니, 말류(末流)의 폐단이 장차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다만 마땅히 지공(至公)한 마음을 지녀야 하고 소소한 일은 관대하게 조처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성상께서 지극히 공평한 마음으로 다스린다면 어찌 함께 대도(大道)로 나아갈 수 없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의 말이 모두 고심(苦心)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였다. 이에 앞서 송인명이 소유(疏儒) 이덕제(李德濟) 등의 일을 신구(伸救)하다가 견파(譴罷)당하여 도성을 나갔었다. 다시 정승이 됨에 이르러서는 세상에서 탕평론(蕩平論)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하나의 당을 이루고 있는데, 그 폐단이 매우 극심한 것을 보고 규모(規模)를 조금씩 변동시켜 노(老)·소(少) 가운데 이름을 아끼는 사람을 취하여 수습하여 보합(保合)시킬 계책을 세우려 하였다. 그리하여 차자(箚子)를 올리려다 올리지 못했었는데, 이 때에 이르러 등대(登對)한 것으로 인하여 이런 주달(奏達)이 있게 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6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20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역사-편사(編史) / 인사-관리(管理) / 사법(司法)

○左議政宋寅明奏曰: "臣之半生藉手而事君者, 卽蕩平也。 而誠僞易混, 得失相參, 終不能同其不同, 而扶抑或過, 取舍或偏, 畢竟各歸自私。 欲捄其弊, 則惟當廣收人才, 勿爲偏係之政而已。" 上曰: "予嘗見《癸亥日記》仁廟下敎有曰, ‘雖大北子孫, 無罪則用之, 雖功臣有罪則誅之’, 此敎予豈忘之乎? 欲法, 當法祖宗, 卿之此言, 非特卿心爲然, 予心本自如此也。 卿雖以廣用爲言, 惟才是取而已。 何可如稱衡之必均適乎?" 寅明曰: "聖心所在, 臣亦仰體, 而世道至此, 聖上亦何能盡察其情僞乎? 今之爲蕩平者, 只皆自爲而已。 若其喬木世臣, 詩禮舊家之人, 難進易退者, 豈可不用乎? 辛、壬戊申之身有瑕累者, 固無可言, 而初無可疵之人, 新進名官之類, 有何緩峻之可別, 而强作名目, 其間殆甚於水火氷炭, 末流之害, 將不可勝言。 臣意則只當以至公爲心, 小小事在所闊略也。 聖上若以至公駕馭, 則豈不能偕之大道乎?" 上曰: "可知卿言, 皆出於苦心也。" 先是, 寅明以伸救疏儒李德濟等事, 被譴罷黜城。 及復相也, 見世之爲蕩平之論者, 自成一黨, 其弊滋甚, 欲稍變規模, 取老少中自好者, 以爲收拾保合之計。 欲上箚而未果, 至是因登對而有是奏。


  • 【태백산사고본】 47책 6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20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역사-편사(編史) / 인사-관리(管理)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