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용을 봉안하는 전각과 그 호칭을 의결하고, 강화도 보장의 편의를 묻다
임금이 강화 유수(江華留守) 이병상(李秉常)과 예조 판서(禮曹判書) 조상경(趙尙絅)을 인견하여 어용(御容)을 봉안(奉安)하는 일을 물었다. 인하여 하교하기를,
"나의 어용을 구장녕전(舊長寧殿)에 봉안하고자 하는데, 이제 듣건대, ‘선조(先朝)의 어용을 봉안한 신전(新殿)을 만약 수리하는 일이 있게 되면 임시로 구전(舊殿)에 봉안해야 하는데 이제 어용을 봉안한 후에는 마땅히 임시로 행궁(行宮)에 봉안해야 한다.’고 하니, 내 마음이 편안하겠는가? 이제 내 어용은 구전 동쪽 전각에도 봉안하기에 족하니, 이 전각에 거행하고 또 이 전각에 만약 임시로 봉안하는 일이 있게 된다면 협실(夾室)을 씀이 마땅한데, 전각의 호칭을 어찌 구장녕전(舊長寧殿)이라 일컫겠는가? 정원(政院)으로 하여금 예(例)를 상고하여 호칭을 정하게 하라."
하였다. 이튿날 정원에서 아뢰기를,
"장녕전의 편액(扁額)은 성상께서 써서 내리셨는데, 소덕문(昭德門)의 호칭을 고칠 때 예문 제학(藝文提學)으로 하여금 삼망(三望)을 갖추어 들인 예가 있습니다. 전각의 호칭은 사체가 더욱 중하니, 마땅히 제학으로 하여금 의망(擬望)014) 해 들이게 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그래서 전각의 호칭을 만녕전(萬寧殿)으로 의망해 들여 낙점(落點)하였다. 이어 장녕전(長寧殿) 절제 헌관(節祭獻官)은 강화 유수(江華留守)와 통진 부사(通津府使)로서 실차(實差)015) ·예차(豫差)016) 로 삼고, 만녕전의 수직관(守直官)은 장녕전의 예에 따라 참봉(參奉)으로서 별검(別檢)을 삼고 이어서 대축(大祝)의 실차·예차로 삼도록 명하였는데, 이병상의 청을 따른 것이었다. 임금이 강도(江都) 보장(保障)의 편의(便宜)를 물으니, 이병상이 아뢰기를,
"숙묘(肅廟)께서 후릉(厚陵)017) 에 행행(行幸)하실 때에 문수 산성(文殊山城)의 형세를 바라보고, 형세를 그려 들이라 명하고 정교하시기를, ‘통진(甬津)을 산성으로 읍(邑)을 옮긴 연후에야 보장을 이룰 수 있다.’라고 하셨으니 성모(聖謨)가 아주 예사롭지 않은 데서 나온 것입니다. 읍을 옮기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아직껏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마땅히 대신에게 물어서 처리해야 하겠다."
하였다. 이병상이 물러남에 임하여 나이가 70을 넘은 것으로써 치사(致仕)하기를 비니, 임금이 말하기를,
"구신(舊臣)은 다만 경 등 몇 사람이 남아 있다."
하고, 드디어 허락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6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167면
- 【분류】왕실(王室) / 군사(軍事)
- [註 014]의망(擬望) : 삼망(三望)을 추천하던 일. 삼망은 본래 관리의 임명 또는 시호 등을 정하는 데에 있어서 임금에게서 수점(受點)하기 위하여 합당하다고 여기는 세 사람 또는 세 개의 시호 등을 갖추어 올리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만녕전(萬寧殿)의 이름을 정하기에 앞서 삼망을 올려 임금의 낙점(落點)을 기다리는 것임.
- [註 015]
실차(實差) : 나라에 중대한 일이 있을 때에 임시로 두는 차비관(差備官)의 정임자(正任者).- [註 016]
예차(豫差) : 일이 있기 전에 미리 정한 차비관.- [註 017]
후릉(厚陵) : 정종(定宗)과 정안왕후(定安王后)의 능.○上引見江華留守李秉常、禮曹判書趙尙絅, 下詢御容奉安事。 仍敎曰: "予之御容, 欲奉安于舊長寧殿, 而今聞先朝御容所奉新殿, 若有修理之事, 則權安於舊殿, 今奉御容之後, 當權安於行宮云, 於予心安乎? 今予御容, 舊殿東殿, 足可奉安, 以此殿擧行, 此殿若有權安之事, 則宜用夾室, 而殿號豈可稱以舊長寧乎? 其令政院, 考例定號。" 翌日, 政院啓言: "長寧殿扁額, 自上書下, 而昭德門改號時, 令藝文提學, 有備三望以入之例。 殿號事體尤重, 宜令提學擬入。" 上允之。 於是, 殿號以萬寧擬入而點下。 命長寧殿節祭獻官, 以江華留守、通津府使, 定爲實、預差, 萬寧殿守直之官, 遵長寧殿例, 以參奉爲別檢, 仍爲大祝實、預差, 從秉常之所請也。 上問江都保障之便宜, 秉常奏曰: "肅廟 厚陵行幸時, 望見文殊山城形勢, 遂命圖形以入, 敎曰: ‘通津移邑於山城, 然後可成保障矣。’ 聖謨出尋常萬萬。 移邑非難事, 而尙今不行矣。" 上曰: "當問于大臣而處之矣。" 秉常臨退, 以年過七十, 乞致仕, 上曰: "舊臣只有卿等若干人。" 遂不許。
- 【태백산사고본】 46책 6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167면
- 【분류】왕실(王室) / 군사(軍事)
- [註 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