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정승을 비난했던 이언세에 대해 언급한 윤광천을 친국하고 흑산도로 귀양보내다
장령 윤광천(尹光天)을 친국하고, 이어서 흑산도(黑山島)에 천극(栫棘)하라고 명하였다. 이언세의 사건을 처리한 뒤에 윤광천이 아침에 대각에 나아가서 청대(請對)하였는데, 밤 3경에 임금이 비로소 그를 불러서 보았다. 윤광천이 전계(前啓)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관동 지방을 양전하는 일에 대하여는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신하여 처리하게 하였고, 이중조(李重祚)를 파직시키는 일은 윤허하였다. 그가 또 아뢰기를,
"사령(辭令)이라는 것은 덕치의 부험(符驗)이므로 옛날의 명왕(明王)은 반드시 이것을 신중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 언관(言官)을 책망하시어 대부분 고가(藁街)246) 에 설문(設問)한다는 죄목에 비기시는데, 당나라 때에 인주(人主)들은 모두 간관(諫官)에 대해 몹시 노하였어도 다만 관직을 깎아 변방에 귀양보냈을 뿐이었고 형륙(刑戮)과 주살이 있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하였는데, 지금 전하께서는 정말로 그들을 설문하여 주륙하고자 하십니까? 만약 다만 그들을 위협하려고 이미 여러 차례 그리하셨다면 두려울 것이 없겠습니다만, 과연 진짜로 이것을 행한다면 후세에 전하를 어떠한 임금이라고 하겠습니까? 청컨대, 이러한 등의 하교를 마음에서 싹틔워 사륜(絲綸)에 나타내지 마소서. 이언세의 중도에 지나친 말은 반드시 여론의 오랫동안 쌓인 불평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니, 불평을 쌓게 한 것은 바로 대신들의 잘못인 것입니다. 이 언세가 소년처럼 비분 강개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말을 제대로 골라서 하지 못하였으나, 이것은 족히 깊이 죄를 줄 만한 것이 못되는데, 어찌 전하께서는 경솔하게 그를 꺾어 버리시기를 더하시고, 또 엄한 하교를 내리시는 것입니까? 심지어 고가에 설문한다는 등의 말씀을 하시면서 위엄과 노여움으로 크게 진노하시니, 이것이 어찌 성인(聖人)의 사령과 교지에 흠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재이(災異)를 만나 수성(修省)하는 때에 한편으로는 소석(疏釋)할 바를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귀양보내어 쫓아내는 형벌을 시행하시는데, 재앙을 없애거나 완화시켜 화기(和氣)를 인도하여 맞이들이는 방도가 아닙니다. 청컨대 이언세를 멀리 귀양보내라는 명령을 도로 거두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너는 이언세가 영상을 침해하고 배척한 것을 옳다고 하는 것인가? 좌상이 간사하고 음흉하며 우상이 외람되고 교활하다는 것도 또한 마땅하다고 여기는가?"
하자, 윤광천이 말하기를,
"이언세의 상소 또한 중도에 지나침이 없지 아니하나, 영상이 잘못한 바도 없지 아니하며, 좌상과 우상도 또한 개제(愷悌)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고가에 설문한다는 말은 바로 임금의 대훈(大訓)에 불만스러운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너도 또한 대훈에 불만인가?"
하니, 윤광천이 말하기를,
"신이 만약 대훈에 불만이 있다면 어찌 감히 어탑 앞에 출입하겠습니까?"
하자, 임금이 굳이 이를 캐물었다. 윤광천이 말하기를,
"대체로 노론(老論)은 스스로 군자(君子)라고 생각하면서 소론(少論)을 가리켜 소인(小人)이라고 하며, 자기들은 충신이라고 말하면서 소론을 가리켜 역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대훈으로써 숙특(淑慝)을 식별할 수가 없는데, 경솔하게 먼저 이를 행한다면, 혹은 불만스러운 자도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스스로 군자(君子)의 당이라고 일컫는다면, 이용기(李龍紀)도 또한 그 가운데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 때문에 불만인가?"
하자, 윤광천이 말하기를,
"이것을 가지고 불만으로 여긴다면, 이것은 반역할 마음입니다. 어찌 감히 이용기를 빼버리지 않는다고 하여 불만스러운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특별히 그 작은 절목들을 말씀하시는데, 대훈은 실로 잘못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불만스럽다.’라고 말하고, 또 ‘잘못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였다. 윤광천이 말하기를,
"이것은 신의 말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사소하게 이런 따위의 의논이 있었을 뿐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훈이 깨끗하기가 해와 별과 같은데, 네가 감히 말하기를, ‘사소하게 불만스럽다.’라고 하는가?"
하므로, 윤광천이 말하기를,
"신이 어찌 감히 그러하겠습니까? 만약 불만스러운 마음이 있다면 비록 죽음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마음 속에서 싹틔우지 말라는 말은 비록 적(敵)이라고 하더라도 가볍게 더할 수가 없을 터인데, 어찌 감히 이러한 말을 군부(君父)의 앞에서 아뢸 수가 있겠는가? 네가 윤광의(尹光毅)의 족형이 되어서 속임을 당한 것이다."
하고, 이어서 먼저 그 관직을 교체시키라 명하고, 하교하기를,
"불만이라는 두 글자가 이미 그의 입에서 나왔으니, 이것을 묻지 않는다면 장차 대훈을 어디에 두겠는가?"
하였다. 승지 박필재(朴弼載)가 말하기를,
"윤광천은 이미 ‘대훈이 불만스럽다.’라고 말하였으니, 진실로 엄하게 처치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다만 전후에 대관(臺官)들을 국문(鞫問)한 사건을 모두 몇 번이나 겪었으므로, 나라의 체모가 점차로 더욱 손상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윤광천 같은 허망된 사람이 반드시 평일에 들은 바를 가지고 지적해 알리는 것이 만연(蔓延)될 우려가 많으니, 어찌 크게 민망스럽지 않겠습니까?"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만연될 걱정은 내가 마땅히 헤아려서 처리하겠다."
하고, 드디어 친국하겠다고 명하였다. 이때 윤광천은 궁문을 닫아서 나올 수가 없었으므로 아직도 대궐 안에 있었는데, 이에 개양문(開陽門) 밖에서 조복(朝服)을 벗기고 가계(枷械)를 갖추어서 국청(鞫廳)에 하옥하였다. 임금이 친히 금상문(金商門) 밖에 친림하여 ‘당인(黨人)을 붙좇고 대훈에 불만스럽다.’라는 등의 정절(情節)을 신문하였는데,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증인으로 끌어들여 고발하지 말게 하였으니, 대개 그 사건이 만연될까 염려하였기 때문이었다. 윤광천은 다만 ‘당인을 붙좇는다.’라는 것만을 자복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자복하지 아니하면서 심지어 ‘이언세가 문득 불만스러운 마음을 가졌었다.’고까지 말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난 밤에는 그를 구원하려고 꾀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이언세를 밀치어 배척하니, 이것도 또한 무상(無狀)하다."
하므로, 윤광천이 말하기를,
"이언세의 상소에서 은연중에 ‘음양이 뒤섞이고 숙특(淑慝)을 구분하지 못한다.’라는 저의가 있었으므로, 이것이 불만스럽다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약 이와 같은 것을 알고 있었다면 무슨 까닭으로 이언세를 구원하려고 하였는가?"
하자, 윤광천이 말하기를,
"대각(臺閣)에 나아간 뒤에야 비로소 그 전체 소장을 보고서 그것을 알았으며, 이미 청대(請對)하기를 구하였기 때문에 대각의 체모에 구애되어 태도를 바꾸어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니, 부도(不道)하게 위를 범하고 국시(國是)를 현란시켰다는 것으로 지만하여 납공(納供)하도록 명하였으나, 윤광천이 불복하였다. 이때 임금이 몹시 노하였는데, 윤광천이 형벌을 받을 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아비의 살을 잠시 어루만져 보고 죽겠다.’고 청하였으니, 윤광천의 집에 여든 살 먹은 늙은 아비가 있었기 대문이었다. 임금이 참담한 모양으로 한참 동안 있다가 형을 정지시키라 명하고, 말하기를,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즈음에는 그 말하는 것이 선하다고 하였는데, 그도 또한 한 가닥 타고난 천성(天性)을 지키는 마음이 없어지지 아니한 점이 있다."
하자, 판의금부사 정석오(鄭錫五)가 나아가서 말하기를,
"이와 같이 그 죄는 족히 징계할 만하지만, 마땅히 효자의 도리를 참작하여 처리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만약 죽는다면, 우리 전하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렵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판의금부사가 나의 마음을 알고 있다."
하고, 이어서 섬에 유배하되, 그로 하여금 아비를 보고 떠나게 하라 명하였다. 또 이언세에게는 즉시 그가 귀양간 곳에 가극(加棘)하라 명하니, 윤광천의 공초로 인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60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158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농업-양전(量田)
- [註 246]고가(藁街) : 한(漢)나라 시대 장안(長安)에 있던 만이(蠻夷)의 거류지. 원제(元帝) 때 서역 부교위(西城副校尉) 진탕(陳湯)이 왕명을 칭탁하고는 질지선우(郅支單于)를 습격하여 머리를 베어 와서 고가(藁街)에 10일 동안 매달아 두었다는 고사(故事). 곧 주륙하여 위세를 보임을 뜻함.
○庚申/親鞫掌令尹光天, 仍命栫棘于黑山島。 李彦世處分後, 光天朝詣臺請對, 夜三更始召見。 光天申前啓, 不允。 至關東量田事, 令廟堂稟處, 李重祚罷職事, 允之。 又啓言:
辭令者, 德之符也, 古之明王必愼之。 今殿下責言者, 擧擬之以設問藁街, 唐時人主, 皆峻虐怒, 諫官只貶官投畀而已, 未聞有刑戮誅殺。 今殿下誠欲問而戮之耶? 若但威之而已屢則不懼, 果眞行之, 後世以殿下爲何如主也? 請勿以此等敎, 萌於心而形於絲綸。 李彦世過中之言, 必因聞輿論之積不平, 而積不平者, 此乃大臣之過也。 彦世不勝少年慷慨之心, 語不裁擇, 此不足深罪, 而何殿下輕加摧折, 又下嚴敎? 至以設問等語, 威怒大震, 此豈不有欠於聖人之辭敎乎? 況遇災修省之日, 一邊思所以疏釋, 一邊施之以竄逐, 非所以消弭災沴導迎和氣之道。 請還收李彦世遠竄之命。
上曰: "汝以李彦世之侵斥領相, 爲是耶? 左相之奸譎, 右相之濫滑, 亦以爲當耶?" 光天曰: "彦世之疏, 亦不無過中, 而領相不無所失, 左、右相亦不可謂愷悌也。" 上曰: "藁街設問, 卽指不滿大訓者也。 汝亦不滿於大訓耶?" 光天曰: "臣若不滿於大訓, 則何敢出入於榻前乎?" 上固問之。 光天曰: "大體老論, 自以爲君子, 而指少論爲小人, 自以爲忠, 而指少論爲逆。 故以大訓, 不能旌別淑慝, 而輕先爲之, 或有不滿者矣。" 上曰: "旣自謂君子黨, 則龍紀亦入其中。 故以此不滿乎?" 光天曰: "以此不滿, 則是逆心也。 何敢以未脫龍紀, 有不滿之心乎? 特謂其小節目, 而大訓實無瑕也。" 上曰: "旣曰不滿, 又曰無瑕, 何也?" 光天曰: "此非臣之言。 彼中有些少此等議論耳。" 上曰: "大訓皎如日星, 爾敢曰些少不滿乎?" 光天曰: "臣何敢爾? 若有不滿之心, 則雖死甘心。" 上曰: "勿萌於心字, 雖敵以下不可輕加, 何敢以此語, 達於君父之前乎? 以汝爲尹光毅之族兄而見欺矣。" 仍命先遞其職, 敎曰: "不滿二字旣發於渠口, 此而不問, 則將置大訓於何地乎?" 承旨朴弼載曰: "光天旣以大訓不滿爲言, 則固當嚴處, 而第前後鞫問臺官, 凡幾遭矣, 國體漸益有傷。 而如光天虛妄之人, 必以平日所聞, 多有指告蔓延之患, 豈不大可悶乎?" 上曰: "蔓延之患, 予當量處矣。" 遂命親鞫。 時光天門閉不得出, 尙在闕中, 乃於開陽門外脫朝衣, 具枷械下鞫廳。 上親臨金商門外, 訊問趨附黨人不滿大訓等情節, 而勿令援告他人, 蓋慮其蔓延也。 光天只服趨附黨人, 餘皆不服, 至曰李彦世便有不滿之心, 上曰: "前夜營救, 而今反推彦世, 此亦無狀。" 光天曰: "彦世疏, 隱然有陰陽混淆, 淑慝不辨底意, 是不滿也。" 上曰: "若知如此, 何故救彦世也?" 光天曰: "詣臺後, 始見其全疏而知之, 業已求對, 故拘於臺體而不得變改矣。" 命以犯上不道, 眩亂國是, 遲晩納供, 光天不服。 時, 上怒甚, 光天受刑之際, 泣請少撫父膚而死, 光天家有八十老父故也。 上慘然良久, 命停刑, 曰: "人之將死, 其言也善, 渠亦有一端秉彝之不泯者。" 判義禁鄭錫五進曰: "如是足懲其罪, 宜以孝理酌處。 此人若斃, 則恐傷我殿下之心。" 上曰: "判金吾知予心。" 仍命島配, 使之見其父而去。 又命李彦世, 卽其所加棘, 因光天之供也。
- 【태백산사고본】 45책 60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158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농업-양전(量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