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60권, 영조 20년 9월 13일 정해 2번째기사
1744년 청 건륭(乾隆) 9년
조관빈에게 명하여 9일제를 성균관에서 설시하고 박창원 등 7인을 뽑다
홍문관 제학 조관빈(趙觀彬)에게 명하여 9일제(九日製)를 반궁(泮宮)에서 설시하게 하였는데, 박창원(朴昌源)·임석헌(林錫憲) 등 7인을 시취하였다. 박창원과 임석헌에게는 모두 직부 전시(直赴殿試)198) 하게 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차등 있게 급분(給分)199) 하라 명하였다. 처음에 고관(考官)이 임석헌의 지은 글을 제1등의 자리에 두고 박창원을 제2등의 자리에 두었는데, 임금이 어필로써 일[一] 자를 박창원의 시원에다 썼었다. 개탁(開坼)하여 방방(放榜)하게 되자, 모두 급제를 주었다. 박창원은 곧 화평옹주(和平翁主) 부마인 박명원(朴明源)의 형이었다. 절일제(節日製)에서 두 사람에게 급제를 주는 것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임석헌은 일찍이 임술년200) 에 임금이 시학(視學)하였을 때에는 경생(經生)으로서 입시하니, 임금이 마음으로 그를 가상하게 여겼었는데, 세마(洗馬)가 되기에 미쳐서는 특별히 소견하고 《소학(小學)》 일부를 내려 주면서 세자를 보도(輔導)하는 책임을 힘쓰도록 하였으므로, 박성원의 상소에서 그를 배척한 것이 반드시 여기에서 연유되지 아니한 바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때에 이르러 등제(登第)하니, 임금이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임석헌이 공연히 박성원에게 공박을 당하였으니, 지금 다시 계방(桂坊)의 직임에 있게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60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151면
- 【분류】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