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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59권, 영조 20년 2월 21일 기사 4번째기사 1744년 청 건륭(乾隆) 9년

밀창군 이직이 세자 가례, 빈궁 책봉과 관련하여 《국조어첩》 등의 개정을 아뢰다

종부시 제조(宗簿寺提調) 밀창군(密昌君) 직(樴)이 아뢰기를,

"왕세자의 표덕(表德)055) 과 입학(入學), 관례(冠禮)와 가례(嘉禮), 그리고 빈궁(嬪宮)을 책봉(冊封)하는 예(禮)를 이미 이루었으니, 의당 《국조어첩(國朝御牒)》《선원보략(璿源譜略)》을 다시 수정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자전(慈殿)의 주갑(周甲)이 앞으로 2년이 남아 있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바는 사체가 중대함이 있기 때문이다. 잇따라 계속 간인(刊印)할 필요가 없으니 먼저 어첩(御帖)을 수정하여 올리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59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127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註 055]
    표덕(表德) : 자(字)를 말함.

○宗簿提調密昌君 啓言: "王世子表德、入學、冠禮、嘉禮及嬪宮冊封之禮已成, 宜於《國朝御牒》《璿源譜略》中, 更爲修正。" 上曰: "慈殿周甲, 前隔二年。 予有所待, 事體重大。 不必續續刊印, 只先修御帖以進也。"


  • 【태백산사고본】 44책 59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127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