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58권, 영조 19년 9월 19일 무술 1번째기사
1743년 청 건륭(乾隆) 8년
외연에 무동(舞童)을 쓰는 것을 《악학궤범》에 실어 후일에 상고하게 하다
임금이 장악원 제조 윤득화(尹得和)를 불러 보고, 하교하기를,
"외연(外宴)에 비로소 무동(舞童)을 썼는데, 1작(爵)에는 초무(初舞)이고, 2작에는 아박(牙拍)이고, 3작에는 향발(響鈸)이고, 4작에는 무고(舞鼓)이고, 5작에는 광수무(廣袖舞)이고, 6작에는 다시 향발이고, 7작에는 다시 광수무를 추었으니, 이는 선조(宣祖)이후 백 년 가깝게 기악(妓樂)을 정지하고 무동을 쓴 새로운 제도이다. 이로써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실어 후일 상고하는 자료로 삼도록 하라."
- 【태백산사고본】 43책 58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115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예술(藝術)
○戊戌/上召見掌樂提調尹得和, 敎曰: "外宴, 乃用舞童, 而一爵初舞, 二爵牙拍, 三爵響鈸, 四爵舞鼓, 五爵廣袖, 六爵復響鈸, 七爵復廣袖, 此穆廟後近百年停妓樂用舞童之新制也。 以此載之《樂學軌範》, 俾資後考。"
- 【태백산사고본】 43책 58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115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예술(藝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