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58권, 영조 19년 8월 17일 정묘 1번째기사
1743년 청 건륭(乾隆) 8년
뜬소문 때문에 도성을 지키는 것과 강도에 들어가는 것의 편의 여부를 유엄에게 묻다
임금이 경기 감사 유엄(柳儼)을 소견(召見)하였다. 이때에 심양 문안사(瀋陽問安使)의 행차가 있었는데, 경외(京外)에서 어수선하여 뜬소문이 크게 떠도니, 임금이 몹시 근심하여 도성을 지키는 것과 강도(江都)에 들어가는 것의 편의 여부를 유엄에게 물었다. 이에 유엄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는 외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무슨 말인가?"
하자, 유엄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약소 국가입니다. 몽고(蒙古)가 공격해 오면 청인(淸人)의 경우와 같이 접대(接待)해야 하고, 비록 서달(西韃)이 공격해 온다 하더라도 또한 이와 같이 할 뿐입니다."
하였다. 이에 임금이 아무 대답 없이 주서를 돌아다보며 이르기를,
"이런 말들은 모두 기록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우리 나라는 참으로 약소 국가이다. 그러나 유엄의 대답한 말은 어찌 이다지도 무례(無禮)하단 말인가? 식자(識者)로 하여금 한심하게 여길 만하니, 임금의 대답이 없었던 것도 마땅한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58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111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 사법-치안(治安) / 외교-야(野)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