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재 유생을 시험하였는데 제술에 고유, 강에 김택려가 수석하다
임금이 숭문당(崇文堂)에서 친히 태학(太學)의 거재 유생(居齋儒生)을 시험하였다. 옛날의 제도는 거재 유생은 모두 이름을 기록하고 들어왔으며, 강(講)에 능하지 못한 사람을 스스로 ‘불통(不通)’이라 쓰고 나가게 되어 있었는데, 이 날은 임금이 특별히 스스로 원하는 대로 따라주라고 명하니, 혹은 강(講)으로 혹은 제술(製述)로 하여 이틀 만에 마쳤다. 고유(高裕)가 제술의 수석을 차지했는데, 그때 나이 스물 하나였다. 고유는 상주(尙州) 사람으로 주선(周旋)하고 응대(應對)하는 것이 자못 정상(精詳)·한숙(閑熟)하였으므로 그를 본 연신(筵臣)들이 모두 인재(人材)라고 칭찬하였다. 좌의정 송인명(宋寅明)이 말하기를,
"들으니, 그의 먼 조상을 향현사(鄕賢祠)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하니, 이 사람은 영남의 사족(士族)입니다. 옛날의 정경세(鄭經世)는 9대(代)의 유학(幼學)으로서 남상(南床)215) 의 극선(極選)이 되었으니, 사람을 쓰는 도리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는 법입니다."
하였다. 강(講)에서는 생원(生員) 김택려(金澤麗)가 또한 수석을 차지했는데, 고유와 함께 직부 전시(直赴殿試)하도록 명하였다. 참고관(參考官) 이중경(李重慶)이 막 안동(安東)에서 체임(遞任)되어 돌아왔으므로 임금이 본읍(本邑)의 사습(士習)을 물으니, 이중경이 말하기를,
"안동에는 무신년216) 에 관련된 자가 많은데, 나라에서 깊이 다스리지 아니하여 법망(法網)을 벗어난 자들이 제멋대로 당론(黨論)을 일삼기 때문에 신이 도신(道臣)과 의논하여 형벌로 다스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그 향권(鄕權)을 나누어 그 무리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그 직임을 맡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였다. 송인명이 말하기를,
"무신년에 역적을 다스린 것이 너무 너그럽긴 했지만, 이 또한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德)인 것입니다. 이제 와서는 적도(賊徒)가 변하여 이미 양민(良民)이 되었으니, 어찌 반드시 추구(追究)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영남의 사람을 물리치고 쓰지 않아 자포자기함이 이와 같으니, 이 또한 조정의 잘못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56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70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인사-선발(選拔) / 과학-지학(地學) / 인물(人物)
○庚辰/上親試太學居齋儒生于崇文堂。 舊制儒生居齋者, 皆錄名而入, 其不能講者, 自書不通而出, 是日上特命從自願, 或講或製, 兩日而罷。 高裕居製述之首, 時年二十一。 裕 尙州人也, 周旋應對, 頗精詳閑熟, 筵臣見者, 皆稱人材。 左議政宋寅明曰: "聞其遠祖, 享於鄕賢祠云, 是嶺之士族也。 古之鄭經世, 以九代幼學, 爲南床極選, 用人之道, 當如是也。" 講生金澤麗亦居首, 命與高裕直赴殿試。 參考官李重庚新自安東遞歸, 上問本邑士習, 重庚言: "安東, 多戊申株連者, 而國家不深治之, 漏網者恣爲黨論, 臣議于道臣, 多以刑治之者。 又分其鄕權, 不使渠輩專其任也。" 寅明曰: "戊申治逆果太寬, 而此亦好生之德。 到今龍蛇旣化爲赤子, 又何必追究乎?" 上曰: "嶺人擯而不用, 自暴如是, 是亦朝廷之失也。"
- 【태백산사고본】 41책 56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70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인사-선발(選拔) / 과학-지학(地學)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