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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55권, 영조 18년 6월 4일 신묘 2번째기사 1742년 청 건륭(乾隆) 7년

주조의 여부와 대소전 병행에 대해 의논하다

돈을 더 주조해야 할 것인가와 대소전(大小錢)의 편부(便否)를 중외에 물어보라고 명하였다. 이때에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가 돈을 주조하자는 의논을 주장하니, 영의정 김재로(金在魯)가 말하기를,

"박문수가 청나라 돈[燕錢]을 무역해다가 우리 나라 돈과 병행하자고 하는데, 만일 저들 돈을 가지고 합해서 주조한다면 이는 잠상(潛商)과 다를 것이 없고, 또 병행해서 쓰게 한다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어떻게 피아(彼我)의 분별을 하겠습니까? 반드시 사단이 생기기 쉬울 것입니다. 만일 우리 나라 돈을 금하고 오로지 저들의 돈만 쓰게 한다면, 화폐의 권한은 저들에게 있으니 처음에는 비록 실행한다 해도 끝에 가서는 반드시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신이 여러 재신(宰臣)들과 상의해 보니 모두 어렵게 여겼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돈이 권한이 두 곳에 있게 되면 큰 폐단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송인명(宋寅明)이 말하기를,

"천하의 일이란 한 집안의 사의(私議)가 아닙니다. 여러 재신 이하가 모두 불편함을 말하면,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박문수에게 이르기를,

"영성(靈城)은 그 이해(利害)를 분명히 말해 보라."

하였다. 박문수가 말하기를,

"지금 경외(京外)에서는 전화(錢貨)가 크게 흉년 들어 부자 형제가 장차 보전치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민심이 어떻게 해서 크게 흩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청나라 돈을 무역해 와서 쓰는 것이 과연 불편할 것 같으면, 재상이나 사민(士民)을 막론하고 사기(沙器)로써 유기(鍮器)를 대신하여 쓰되, 모든 일용(日用)의 유기를 아울러 거두어 모아 돈을 주조하면, 족히 오늘날의 물고기가 입을 오물거리며 괴로워하듯 하는 위급함에서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의 말도 또한 학철(涸轍)140) 의 위급을 구해보자는 계책에서 나온 것으로 부득이해서 한 말입니다. 숙종 초년에 명신(名臣)·석보(碩輔)들이 어찌 지금만 같지 못했겠습니까마는, 모두 청나라 돈을 무역해다가 쓰자고 하여 자문을 보내기까지 하였으니, 이 말은 신이 창출(創出)한 말이 아닙니다."

하고, 송인명이 말하기를,

"지금은 돈을 더 주조하는 길 외에는 다른 좋은 계책이 없습니다. 다만 전화의 권한은 위에 있어야지 아래로 돌아감은 불가합니다. 사주(私鑄)에 이르러서는 더욱 엄금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3년을 한정하여 구전(舊錢)을 통행(通行)하게 하고 3년 뒤에는 신전(新錢)을 통행하게 하면, 부민(富民)들이 비록 구전을 저장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의 말이 옳다. 더 주조하는 것으로 정할 것이니, 여러 신하들도 각자 소견을 진달하라."

하였는데, 비국 당상 김시형(金始炯)·민응수(閔應洙)·조상경(趙尙絅) 등은 모두 더 주조해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윤양래(尹陽來)는 철전(鐵錢)을 주조해 쓰는 것이 편리하겠다고 하였으며, 김약로는 따로 당십전(當十錢)·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하되 구전은 그대로 두고서 병행하게 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라고 하였다. 임금이 또 삼사(三司)와 승지에게 물으니, 장령 유만추(柳萬樞)는 말하기를,

"대소전(大小錢)을 병행하게 하는 것이 편리할 것입니다."

하였고, 옥당(玉堂) 윤광의(尹光毅)는 말하기를,

"오늘날의 걱정은 돈의 다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주(人主)의 절용(節用)과 애민(愛民)에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것은 오유(迃儒)의 말이다."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나의 뜻은 돈을 없애버리면 편리할 것으로 여겼으나 여러 신하들의 의논은 없앨 수 없다고 여기는데, 옛사람의 말에 ‘꾀는 경서(卿庶)에까지 물어봐야 한다.[謀及卿庶]’라고 하였다. 더 주조하는 편부(便否)와 대소전을 병행한다는 말로 한성 판윤이 오부(五部)의 방민(坊民)을 불러서 물어보고 또 관문(關文)으로 제도(諸道)에 물어보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55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58면
  • 【분류】
    금융-화폐(貨幣)

  • [註 140]
    학철(涸轍) : 학철 부어(涸轍鮒魚)의 준말.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리에 물이 괴어, 거기에 있던 붕어가 볕이 나자 물이 말라가니 입을 오물거리며 사경(死境)에서 괴로워하는 형상을 표현한 말.

○命以加鑄錢及大小錢便否, 詢于中外。 時靈城君 朴文秀主鑄鐵之議, 領議政金在魯言: "朴文秀請得錢, 欲與我國錢竝行, 而若以彼錢合鑄, 則此無異潛商, 又令幷行, 則愚民何以知彼我之分乎? 必易生事矣。 若禁我國錢而專用彼錢, 則貨權在彼, 初雖設行, 末必有弊。 臣與諸宰商議, 則皆以爲難矣。" 上曰: "錢權有二, 則有大弊矣。" 寅明曰: "天下事非一家私議。 諸宰以下皆言不便, 則亦無奈矣。" 上謂文秀曰: "靈城, 其明言利害也。" 文秀曰: "卽今京外錢貨大荒, 父子兄弟將至於不保之境。 民心幾何不至於大渙散乎? 錢貿來, 果若不便, 則勿論宰相、士民, 以沙器代鍮器, 而凡日用鍮器, 竝收聚鑄錢, 足救今日魚喁之急。 臣言亦出於救涸之計而不得已也。 肅廟初年, 名臣、碩輔豈不若今朝, 而皆以貿用錢, 至於移咨, 此非臣創出之言也。" 寅明曰: "今則加鑄之外, 無他善策。 而第貨權, 宜在於上, 而不可歸之於下。 至於私鑄, 尤可嚴禁。 自今限三年通行舊錢, 三年以後, 令行新錢, 則富民雖欲藏置舊錢, 亦不可得矣。" 上曰: "卿言是也。 以加鑄爲定, 諸臣各陳所見。" 備堂金始炯閔應洙趙尙絅等皆以爲當加鑄, 尹陽來以鑄用鐵錢爲便, 金若魯對以宜別鑄當十錢、當百錢, 而舊錢則仍置竝行爲便。 上又問三司及承旨, 掌令柳萬樞曰: "大小錢竝行爲便。" 玉堂尹光毅曰: "今日之憂, 不在於錢之多小, 而惟在於人主之節用、愛民。" 上曰: "此迂儒之言也。" 上又曰: "予意則以罷錢爲便, 而諸臣之議以爲不可罷, 古人云, ‘謀及卿庶。’ 以加鑄便否及大小錢竝行之說, 漢城判尹招問五部坊民, 又以關文詢諸道。


  • 【태백산사고본】 41책 55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58면
  • 【분류】
    금융-화폐(貨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