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55권, 영조 18년 3월 26일 을유 1번째기사
1742년 청 건륭(乾隆) 7년
왕세자가 입학하고 윤득민을 장령으로 하다
왕세자가 입학하였다. 대제학 이병상(李秉常)이 박사(博士)로 진참(進參)하였는데, 장명(將命)은 윤득민(尹得敏)이었다. 이날 왕세자는 쌍동계(雙童髻), 공정책(空頂幘), 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태학(太學)에 나아가 이어 학생의 옷으로 바꿔 입었는데, 청금(靑衿)과 연두건(軟頭巾), 세조대(細絛帶)를 갖추고 작헌례(酌獻禮)를 행하였으며, 이어 서치(序齒)080) 를 행하였다. 박사는 공복(公服)을 입었으며 장명(將命) 이하 제집사(諸執事)는 학생의 옷을 입고 진참하여 《소학(小學)》을 강하고, 강이 끝나자 비백(篚帛)과 포수(脯脩)를 박사에게 바쳤으니, 예(禮)인 것이다. 【의주(儀註)는 정미년081) 〈효장 세자의〉 입학 때와 같이 하였다.】 장명(將命)은 유생의 극선(極選)이었다. 태학에서는 처음에 김양택(金陽澤)을 장명으로 삼으려 하였다. 김양택은 고(故) 판서 김진규(金鎭圭)의 아들인데, 김양택이 일로 인하여 인혐(引嫌)하고 나오지 않자 윤득민으로 대신시킨 것이다. 윤득민은 이조 참의 윤급(尹汲)의 형의 아들이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55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53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경연(經筵) / 의생활(衣生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