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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54권, 영조 17년 7월 24일 병술 1번째기사 1741년 청 건륭(乾隆) 6년

약원에 명하여 동궁이 거처하는 경선당에 입진하게 하다

임금이 약원(藥院)에 명하여 경선당(慶善堂)에 입진(入診)하게 하니, 경선당은 바로 동궁(東宮)이 거처하는 곳이다. 임금이 도제조(都提調) 김재로(金在魯)에게 말하기를,

"경(卿)이 매양 세자(世子)를 보려하고 또 의관(醫官)으로 하여금 진찰(診察)을 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 당(堂)에서 경(卿)을 부른 것이다."

하였다. 임금이 동궁(東宮)에게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읽을 것을 명하고 또 글자를 써볼 것을 명하니 세자가 두 폭(幅)을 써서 올렸는데, 하나는 ‘군신 부자(君臣父子)’란 네 글자를 썼고, 하나는 ‘충효(忠孝)’란 두 글자를 썼다. 임금이 보고 나서 영의정 김재로에게 전해 주니, 김재로가 말하기를,

"신이 여름에 글자를 써 주시기를 앙청(仰請)하였더니, ‘효제 충신 인태(孝悌忠信仁泰)’란 여섯 글자를 써 주셨습니다. 여섯 글자가 의미가 있었는데, 지금의 이 여섯 글자도 또한 다 의미가 있습니다. 예학(睿學)126) 의 숙성(夙成)함이 이와 같으니 우리 동방(東方)에 억만년의 한없는 복입니다."

하고, 김재로가 한 폭으로써 제조(提調) 조관빈(趙觀彬)에게 나누어 줄 것을 청하니,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다. 조관빈이 ‘충효(忠孝)’란 두 글자를 취하니, 임금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제조가 두 글자를 취한 것도 또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였다. 도승지(都承旨) 권적(權𥛚)이 말하기를,

"신만이 홀로 향우(向隅)127) 의 탄식이 있습니다."

하니, 세자(世子)가 또 ‘숙야(夙夜)’란 두 글자를 써서 주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 두 글자도 또한 의미가 있으니, 경은 지신사(知申事)128) 를 체직(遞職)할 수 없다."

하였다. 임금이 또 하교하기를,

"숙종(肅宗)께서 일찍이 집희당(緝熙堂)에서 어제(御製)한 시가 있었는데, 오늘 여기에 오니 마음에 느낀 바가 있다. 주서(注書)는 기록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서 친히 외우기를,

"성문(聖門)의 천만 마디 말은,

방심(放心)한 곳을 찾아서 알게 하고자 한 것이라네.

천서(天叙)는 온전한 덕(德)을 밝혔는데,

인심(人心)은 암암리에 흩어져 옮겨 가네.

백사(百邪)를 장차 날마다 버리려 할진대,

일경(一敬)을 반드시 굳게 가져야 한다.

춘저(春邸)에 일이 없는 날에는,

항시 사부(師傅)를 대할 때와 같이 하라."

하였다. 외우기를 끝마치고 나서 주서 및 궁관(宮官)에게 일기(日記)에 기재할 것을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54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26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註 126]
    예학(睿學) : 세자의 학문.
  • [註 127]
    향우(向隅) : 상대하는 사람이 없어 구석을 향함.
  • [註 128]
    지신사(知申事) : 도승지(都承旨).

○丙戌/上命藥院, 入診于慶善堂, 堂乃東宮所御也。 上謂都提調金在魯曰: "卿每欲見世子, 且欲令醫官診察, 故召卿于是堂耳。" 上命東宮讀《童蒙先習》, 又命寫字, 世子書進二幅, 一則書君臣父子四字, 一則書忠孝二字。 上覽訖, 傳與領議政金在魯, 在魯曰: "臣於夏間仰請書字, 則書下孝悌忠信仁泰六字。 六字有意味, 而今此六字亦皆有味。 睿學之夙成如此, 我東方億萬年無疆之休也。" 在魯請以一幅分與提調趙觀彬, 上許之。 觀彬取忠孝二字, 上笑曰: "提調之取二字, 亦似有意矣。" 都承旨權𥛚曰: "臣獨有向隅之歎矣。" 俄而, 世子又書下夙夜二字。 上曰: "此二字亦有意, 卿不可遞知申矣。" 上又敎曰: "肅廟曾有緝熙堂御製詩, 今日臨此, 有感於心矣。 注書其書之。" 仍親誦曰:

聖門千萬語, 放處欲求知。 天敍明全德, 人心暗鑠移。 百邪將日去, 一敬必堅持。 春邸無事日, 恒如對傅時。 誦訖, 命注書及宮官, 載於日記。


  • 【태백산사고본】 40책 54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26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