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53권, 영조 17년 6월 4일 정유 3번째기사
1741년 청 건륭(乾隆) 6년
관동 안집 어사 김상적이 복명하니, 진구하는 행정 및 수령의 현부를 하문하다
관동 안집 어사(關東安集御史) 김상적(金尙迪)이 복명(復命)하였다. 임금이 불러다 진구(賑救)하는 행정 및 수령(守令)의 현명함과 무능함을 하문하자, 김상적이 매우 상세하게 대답하고, 이어서 관동의 삼(蔘)에 대한 폐단을 아뢰기를,
"1년의 공삼(貢蔘)이 합계가 40여 근(斤)인데, 그 값과 잡비(雜費)를 모두 백성들의 전결(田結)에서 내게 하니, 합하면 2만 8천여 냥(兩)입니다. 그 수효를 헤아려 감해 준다면 큰 은혜가 되겠습니다."
하고, 또 양구(楊口)에서 백토(白土)를 파서 번원(燔院)080) 에 바치게 하므로 백성들의 폐단이 매우 많다고 말하니, 임금이 묘당(廟堂)에 명하여 품처(稟處)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53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18면
-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財政) / 공업-관청수공(官廳手工)
- [註 080]번원(燔院) : 사옹원(司饔院)의 별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