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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53권, 영조 17년 4월 8일 임인 3번째기사 1741년 청 건륭(乾隆) 6년

관학 유생의 복색은 그전대로 홍단령을 쓰도록 명하다

관학 유생(館學儒生)의 복색(服色)은 그전대로 홍단령(紅團領)을 쓰도록 명하였다. 당초에 관학 유생이 거재(居齋)할 때와 부거(赴擧)할 때에 모두 홍단령을 입게 하였는데, 유생들이 불편하게 여겨 번번이 〈《시경(詩經)》 정풍(鄭風)의〉, ‘푸르고 푸른 그대 옷깃이여[靑靑子衿]’라는 글을 가지고 마땅히 푸른 색의 옷을 입어야 한다 하였다. 대사성이 그 일을 아뢰자, 임금이 예조 낭관으로 하여금 대신과 지방에 있는 여러 유신들에게 문의하도록 하였다. 영의정 김재로가 연주(筵奏)하기를,

"《경국대전(經國大典)》 횡간도(橫看圖)에, ‘제학 생도(諸學生徒)는 단령(團領)을 입는다.’ 하였는데, 주(註)에 이르기를, ‘유학(儒學)은 청금(靑衿)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유학이란 유생이고, 청금은 혹 그것이 푸른 옷[靑衣]인가 의심하기도 하고, 혹은 옷은 붉은데 옷깃을 푸르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시경(詩經)》의 주(註) 및 자서(字書)에 이르기를, ‘금(衿)이란 영(領)이다’고 하였으니, 이것으로써 살펴보건대, 혹 붉은 옷에 푸른 깃을 말하는 것인 듯합니다.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이르기를, ‘우리 나라 유사(儒士)들이 사사로이 출입(出入)할 때에 역시 홍직령(紅直領)을 착용하였는데 명종(明宗) 말년에 연달아 국상[國恤]을 당하여 흰 옷을 입는 것이 습관이 되어 그대로 풍속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였으니, 이것으로써 살펴보건대, 붉은 옷은 반드시 조종조(祖宗朝)의 구제(舊制)일 것입니다. 무릇 복색(服色)은 청색과 흑색을 함께 쓰지만, 흑단령(黑團領)은 홍단령(紅團領)에 비교하여 더 중하므로, 중한 곳에는 흑단령을 입고 경(輕)한 곳에는 홍단령을 입으니, 조신뿐만 아니라 유사(儒士)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묘(聖廟)에 들어갈 때에는 푸른 옷을 입고 식당(食堂) 및 재(齋)에 모일 때에는 붉은 옷을 입었으니, 의도한 바가 대체로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바로 조종조에서 행하던 것이므로 경솔하게 고칠 수 없을 듯합니다."

하고, 부호군 윤봉구(尹鳳九)는 선정신 권상하(權尙夏)의 말과 명나라 조정의 태학생(太學生)이 난삼(襴衫)을 입었던 제도를 인용하여 난삼과 복두(幞頭)를 사용하도록 청하였다. 부사과 양득중(梁得中)과 전 군수 박필보(朴弼普)의 의논 또한 윤봉구의 의논과 같았는데, 임금이 김재로의 의논을 따르도록 명하고, 그대로 홍단령을 입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53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10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의생활(衣生活)

○命館學儒生服色, 仍舊用紅團領。 初館學儒生居齋及赴擧時, 皆服紅團領, 儒生不便之, 輒用靑靑子衿之文, 以爲當服靑衣。 大司成白其事, 上令禮郞, 問議于大臣及諸儒臣在外者。 領議政金在魯筵奏曰: "《大典》橫看圖, ‘諸學生徒團領,’ 而註云 ‘儒學靑衿。’ 儒學者, 儒生也, 靑衿或疑其靑衣, 或以爲衣紅而領靑, 《詩經》註及字書曰, ‘衿者, 領也。’ 以此觀之, 似或紅衣靑領之謂也。 《芝峰類說》以爲, ‘我國儒士私出入, 亦着紅直領, 明宗末年, 連値國恤, 習着白衣, 仍爲成俗’ 云, 以此觀之, 紅衣必是祖宗朝舊制也。 凡服色靑黑同用, 而黑團領比紅團領加重, 故重處衣黑, 輕處衣紅, 非但朝臣, 儒士亦然矣。 故入聖廟時着靑衣, 食堂及齋會時着紅衣, 意蓋有在。 此乃祖宗朝所行, 似不可輕改矣。" 副護軍尹鳳九, 引先正臣權尙夏之言及朝太學生服襴衫之制, 請用襴衫幞頭。 副司果梁得中、前郡守朴弼溥之議, 亦如鳳九議, 上命從在魯議, 令仍服紅團領。


  • 【태백산사고본】 39책 53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10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의생활(衣生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