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하가 과거에 합격한 인재를 임용하지 않는 폐단과, 참다운 탕평의 도를 아뢰다
임금이 친히 유생의 강독을 시험하였는데, 어느 한 유생이 강석(講席)에 들어와 스스로 불통(不通)이라고 쓰고 물러나므로, 임금이 이상하게 여겨 여러 신하들에게 묻기를,
"그가 합격한 사람의 수효가 많아서 강독해도 보탬이 없다고 말하였다면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고 오랫동안 성균관에서 유학(遊學)하면서 공업(工業)을 익히고, 편안한 마음으로 진출하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는 귀중하게 여길 만하다. 비록 한 가지 작은 재주라도 나는 혹시 그가 세상에서 버려진 진주인 듯하다."
하자, 수찬 이성중(李成中)이 말하기를,
"버려진 진주라는 하교는 진실로 인재를 애석하게 여기는 성의(聖意)에서 나온 것임을 알겠습니다. 그러나 먼 시골의 유생이 과거에 합격한 뒤에 윤락(淪落)한 대로 맡겨둔 채 거두어 임용되지 못하고 있으니, 팔방(八方)에 버려진 진주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만약 강독하는 유생을 애석하게 여기는 뜻을 가까운 데에서 미루어 먼 곳에까지 미치게 한다면, 또한 넉넉히 반우(反隅)044) 하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그렇게 여기고, 이조 판서 민응수(閔應洙)를 앞으로 나오도록 하여 엄체(淹滯)된 사람을 진작하여 발탁하는 정사에 힘쓰도록 명하였다. 승지 원경하(元景夏)가 아뢰기를,
"전하께서 이 전교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만,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규모(規模)가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탕평(蕩平)하는 도리는 반드시 홍범(洪範)045) 의 삼덕(三德)을 적용해야 하는데, 지금은 바로 서로 대치(對峙)시키는 것으로 탕평하는 정책을 삼으니, 건극(建極)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황극(皇極)은 하나인데, 저편에서도 극(極)이라 하고 이편에서도 극이라 하니, 극에도 다름이 있는가? 풍원(豐原)046) 이 매번 서로 대치하게 한 것을 옳다고 한 것은 혹시라도 전관(銓官)이 치우치게 기용하는 폐단을 염려해서이다."
하였다. 민응수가 말하기를,
"인군은 마땅히 대공 지정(大公至正)으로 극(極)을 삼아야 하는데, 피차 각각 스스로 극이라고 하는 데 대해 위에 있는 이는 참여하여 알 바가 아닙니다. 만약 양쪽을 기용하여 서로 대치하게 하는 것을 극이라고 한다면, 그 극은 단지 외면(外面)을 꾸미는 것으로 그것 역시 반드시 사사로이 좋아하고 미워함이 있을 것이니, 진실로 참다운 탕평은 아닙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극(極)이란 것은 집에다 비교하면 한편에는 옛날 재목을 쓰고 한편에는 새 재목을 써서 그 위에다 들보를 얹는 것이 바로 극이다."
하였다. 원경하가 말하기를,
"오직 인재를 기용하는 것이 참다운 탕평(蕩平)이라 할 것이니, 비록 거리가 먼 연(燕)나라와 월(越)나라 사람이라도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태제(南泰齊)·홍경보(洪景輔)와 같은 이를 만약 함께 거두어 기용한다면 그것도 규모(規模)를 정하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사신은 말한다. "탕평(蕩平)하는 정사가 서로 대치하는 데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원경하(元景夏)가 크게 탕평하는 의논을 주장하면서 언제나 동서남북에서 인재를 끌어다 등용할 것을 청하였었다. 그래서 마침내 은총을 받아 처음 벼슬살이한 지 몇 년 만에 중비(中批)로 갑자기 승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5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인사-선발(選拔) / 역사-사학(史學)
- [註 044]반우(反隅) : 《논어(論語)》 술이장(述而章)에서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배우는 이가 만약 스스로 발분(發憤)하지 않는다면 그를 열어 줄 필요가 없을 것이며, 또 스스로 말에 애쓰지 않는다면 그를 지시해 줄 필요가 없을 것이니, 마치 사각(四角)의 물건이 있는데 한 모퉁이를 가르쳐 주어서 세 모퉁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시 가르쳐 주지를 아니하였노라.[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고 한 것을 인용한 것으로, 가르침을 실시함에는 반드시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율적인 활동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뜻임.
- [註 045]
홍범(洪範) : 《서경(書經)》의 편명(篇名).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쳐서 멸(滅)하고 기자(箕子)를 찾아 천도(天道)를 물었을 때, 기자가 천지(天地)의 대법(大法)을 진달하기 위해 서술(敍述)한 것이라 함. 홍(洪)이란 크다는 뜻이고 범(範)이란 법(法)이란 뜻으로, 대법(大法)이란 말임.- [註 046]
풍원(豐原) : 조현명(趙顯命)의 봉호(封號).○上之親試講儒也, 有一儒入講席, 自書不通而退, 上怪之, 問諸臣曰: "渠以入格者數多, 講亦無益云爾, 則無足怪也, 不然而欲久遊庠學, 習其工業, 恬然無進取之心, 則是可貴也。 雖一藝之微, 予或恐其遺珠也。" 修撰李成中曰: "遺珠之敎, 固知其出於惜才之聖意。 而遐鄕之儒, 登第之後, 任其淪落, 未見其收用, 八方遺珠, 當爲幾何? 若以愛惜講儒之意, 推近及遠, 亦足爲反隅之道也。" 上然之, 命吏曹判書閔應洙進于前, 勉以振拔淹滯之政。 承旨元景夏曰: "殿下此敎屢矣, 而未見有實效者, 由規模未立也。 蕩平之道, 必用洪範之三德, 而今乃以互對爲蕩平之政, 則非建極之道也。" 上曰: "皇極一也, 而彼亦曰極, 此亦曰極, 極亦有異乎? 豐原每以互對爲可者, 或慮銓官偏用之弊也。" 應洙曰: "人君當以大公至正爲極, 彼此之各自爲極, 非在上者所與知也。 若以雙擧互對, 謂之極, 則其爲極, 只外面粉飾, 亦必有私好惡, 而實非眞蕩平也。" 上曰: "極者, 比之屋子, 一邊用舊材, 一邊用新材, 而加樑於其上者, 乃是極也。" 景夏曰: "惟才是用, 是謂眞蕩平, 雖燕、越之人, 可與同事。 如南泰齊、洪景輔者, 若俱收竝用, 則亦可爲定規模之道矣。" 上稱善。
【史臣曰: "蕩平之政, 不出於互對, 故元景夏主張大蕩平之論, 每請引用東西南北之人。 故遂被眷注, 釋褐數年, 以中批驟陞焉。"】
- 【태백산사고본】 39책 53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인사-선발(選拔) / 역사-사학(史學)
- [註 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