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상신 김창집·이이명의 벼슬을 회복하라고 명하다.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다
고(故) 상신(相臣)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頣命)의 벼슬을 회복하라고 명하였다. 이날 임금이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備局堂上)을 인견(引見)하여 하교하기를,
"사책(史冊)을 두루 보면 저군(儲君)을 세운 것이 어찌 한정이 있으랴마는, 어찌 내가 겪은 바와 같은 것이 있었겠는가? 네 사람이 연차(聯箚)한 것을 역적으로 몰아 교문(敎文) 가운데에 넣고서 오늘날 그 임금을 섬기는 자가 감히 신축년005) ·임인년006) 의 일을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말할 수 있겠는가? 근년 대신이 입시(入侍)하였을 때에 두 신하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먼저 하교하려 하였으나, 그 뒤에 또 갈등이 있어 매우 탄식하고 내버려 두었다. 두 사람이 아직도 죄적(罪籍)에 있으니, 어찌 공평하다 하겠는가? 대리(代理)를 연차한 의리에 대하여 그 임금을 섬기는 마음이 있는 자라면 누가 감히 그 시비를 다툴 수 있겠는가? 해조(該曹)를 시켜 특별히 복관(復官)하게 하라."
하였다. 판부사(判府事) 송인명(宋寅明)·풍원군(豐原君) 조현명(趙顯命) 등이 말하기를,
"신들은 기유년007) 처분할 때에 가부를 의논하는 데에 참여하여 들었으니, 이제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성상께서 반드시 고쳐 처분하시려 한다면 국안(鞫案)을 다시 상고하여 아들과 손자의 죄가 용서할 만하고서야 비로소 이 일을 의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이 어찌 친히 보았겠는가? 기유년008) 처분할 때에 모두 복관하였다면 경들이 반드시 다투지 않을 것이다. 그때 하문하였으므로 오늘날의 폐단이 있게 되었거니와, 당초에 아들과 손자에 관한 하교를 한 것이 실로 구차하다. 내 하교를 들은 뒤에는 나를 섬기는 자가 결코 다시 운운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풍원(豐原)이 아뢴 것은 참으로 그르다. 국안(鞫案)을 다시 상고한다면 서덕수(徐德修)의 일도 장차 다시 상고할 것인가? 중전(中殿)을 섬기는 자는 이렇게 하여서는 안 된다. 서덕수는 이미 영구히 풀어 주었거니와, 이것은 한 가지이면서 두 가지인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5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651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왕실(王室) / 정론-간쟁(諫諍) / 사법(司法) / 변란-정변(政變) / 인물(人物)
- [註 005]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 [註 006]
○命復故相金昌集、李頤命官。 是日上引見大臣備堂, 敎曰: "歷觀史冊, 建儲者何限, 而豈有若予之所經歷者哉? 以四人聯箚, 驅之於逆, 至入於敎文中, 今日北面其君者, 敢以辛壬之事, 曰可曰否乎? 頃年大臣入侍時, 兩臣中一人欲先下敎, 而其後又有葛藤, 深嘅置之矣。 兩人之猶在丹書, 其曰公乎? 聯箚代理之義理, 若有北面其君之心, 孰敢爭其是非乎? 其令該曹特爲復官。" 判府事宋寅明、豊原君 趙顯命等曰: "臣等於己酉處分時, 參聞可否, 今無他見。 聖上必欲改處分, 則更考鞫案, 以子若孫罪有可恕, 然後始可議此事也。" 上曰: "卿輩豈親見之乎? 己酉處分時, 若竝爲復官, 則卿等必不爭矣。 其時詢問, 故致有今日之弊。 當初子若孫之敎, 實爲苟且矣。 聽予下敎之後, 北面於予者, 決不當復有云云, 而豊原之陳達, 誠非矣。 若更考鞫案, 則徐德修事, 亦將更考乎? 事中殿者, 不可如此。 德修旣永雪, 此乃一而二也。"
- 【태백산사고본】 37책 5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651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왕실(王室) / 정론-간쟁(諫諍) / 사법(司法) / 변란-정변(政變) / 인물(人物)
- [註 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