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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47권, 영조 14년 2월 23일 을사 2번째기사 1738년 청 건륭(乾隆) 3년

칙사에게 주는 증정품을 다음 칙행 때 실어 보내는 문제와 장악원의 주악하는 일을 논하다

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우의정 송인명(宋寅明)이 아뢰기를,

"칙사에게 은밀히 증정하는 것을 저들이 국가의 금령이 있어서 감히 가지고 가지 못하니, 전례대로 다음 칙행 때 실어 보내기를 청했다고 합니다. 이미 증정한 뒤에는 비록 실어 보내 달라는 청을 거절할 수 없으나, 도감에서 경솔하게 계문했으니, 그 당상은 마땅히 종중 추고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공자가 말하기를,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은밀한 증정은 이미 명분이 올바르지 못한 것이다. 만일 도감에서 사사로이 스스로 증정하는 것이라면 그만이겠지만, 지금 만일 계하한다면, 조가(朝家)에서는 알지 못하는 것으로 할 수 있겠는가? 당초에 도감에서 방색(防塞)하지 못하고 초기(草記)하여 번거롭게 품한 것은 지극히 경솔한 데 관계되는 것이다."

하였다. 병조 판서 박문수(朴文秀)가 아뢰기를,

"만약 은밀히 증정한 일이 드러나면 어찌 유사(有司)에게 핑계대면서 조가에서는 알지 못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후로는 전례에 의거하여 수역(首譯)에게 부쳐서 실어 보내도록 하고 번거롭게 품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이조 판서 조현명(趙顯命)은 아뢰기를,

"바로 이 한 가지 일에서 건륭(乾隆)의 나라 다스리는 법을 볼 수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이는 건륭의 다스리는 법이 엄해서가 아니라 강희(康熙) 때의 기강(紀綱)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하였다. 영의정 이광좌(李光佐)가 아뢰기를,

"신이 장악원(掌樂院)의 주악(奏樂)하는 일에 대하여 그윽이 어리석은 소견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여민락(與民樂)의 음조(音調)는 그 소리가 유원(悠遠)하고 심후(沈厚)하여 조종조(祖宗朝)의 덕택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신이 장악원의 주악을 듣지 못한 지 이미 30여 년이 되었는데, 이번 연향 때에 들어보았더니 부촉(浮促)함이 심했습니다. 피인(彼人)들 중에 음악을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였다면 우리 나라를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장악원 제조를 종중 추고하고, 전악(典樂)에게 거듭 신칙하여 예전의 소리를 회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옳다. 여민락이 비록 주악하는 소리가 가장 큰 것이기는 하지만, 군악(軍樂) 이외에는 어찌 산을 진동하게 하는 것이 있겠는가? 내가 열무(閱武)할 때에 군문(軍門)의 세악(細樂)을 들어보았더니, 그 소리가 촉급(促急)했었다. 이번 동가(動駕)에서 도감의 취타(吹打)를 들어보았더니, 더욱 예촉(銳促)하여 들을 수가 없었다. 간혹 장악원의 풍악을 점검해 들어보면, 소리가 매우 저미(低微)하였고, 연향 때에 연주하는 이른바 보허자(步虛子)와 영산회(靈山會)의 성음도 길어야 할 부분이 너무 단촉(短促)하고 낮아야 할 부분이 너무 높았으니, 또한 거듭 신칙하지 않을 수 없다. 악관(樂官)은 주의하도록 하고, 반드시 먼저 책벌(責罰)을 가할 필요는 없다."

하였다. 이광좌가 아뢰기를,

"세상에 어찌 음악을 아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옛날에는 사람을 가려서 구임(久任)했었으니, 지금도 본원의 제거(提擧)로 하여금 따로 가려서 자벽(自辟)028) 하여, 그 부촉(浮促)한 소리를 고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칙사의 하마연(下馬宴)은 의당 서울에 들어온 이튿날에 남별궁(南別宮)에서 베풀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저들이 이미 처음 청한 것을 즉각 승낙하였고, 또한 연향의 음식도 이미 갖추어졌었기 때문에, 첫날에 거행했습니다만, 이 뒤로는 마땅히 이튿날에 하는 예로 준행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47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8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사법-탄핵(彈劾) / 인사(人事) / 외교-야(野) / 예술-음악(音樂)

  • [註 028]
    자벽(自辟) : 장관이 자의로 관원을 추천하여 임명하는 일.

○上引見大臣備堂。 右議政宋寅明曰: "勑行密贈, 彼以國有禁令, 不敢持去, 請依前輸送於後使行云。 旣贈之後, 雖不可拒其輸送之請, 而都監率爾啓聞, 堂上宜重推。" 上曰: "孔子云必也正名, 密贈名旣不正, 若自都監私自贈之則已, 今若啓下則謂朝家不知可乎? 都監之初不防塞, 草記煩稟, 極涉輕率矣。" 兵曹判書朴文秀曰: "密贈之事若見露, 豈可委之有司, 而謂朝家不知乎? 此後則依例付首譯輸送, 不必煩稟矣。" 吏曹判書趙顯命曰: "卽此一事, 乾隆之治法可見。" 上曰: "此非乾隆之法嚴也, 康熙之紀綱尙存矣。" 領議政李光佐曰: "臣於院樂事, 竊有愚見矣。 我國《與民樂》之調, 其聲悠遠深厚, 可想祖宗朝德澤入人者深矣。 臣之不聽院樂, 已三十餘年。 今於宴饗聞之, 浮促甚矣。 使彼中知樂者聽之, 謂我國何如耶? 提調從重推考, 申飭典樂, 使復古聲焉。" 上曰: "卿言是矣。 《與民樂》雖爲樂聲之最大者, 軍樂之外, 豈有動山者乎? 予於閱武時, 聽軍門細樂, 則其聲促急矣。 今於動駕, 聞都監吹打, 則尤銳促, 不堪聽矣。 間閱樂院風樂, 聲甚低微, 宴饗時所謂《步虛子》《靈山會》音, 永處太促, 低處太高, 亦不可不申飭樂官, 宜令擇擬, 不必先加罰責也。" 光佐曰: "世豈無知音者? 古則擇人而久任, 今亦使本院提擧, 別擇自辟, 俾革其浮促之音可矣。" 寅明曰: "勑使下馬宴, 當於入京翌日設行於南別宮, 而今行則彼旣卽諾於初請, 且因宴需已備, 故行於初日, 而此後宜遵翌日之例矣。"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35책 47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87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사법-탄핵(彈劾) / 인사(人事) / 외교-야(野) / 예술-음악(音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