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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46권, 영조 13년 11월 29일 임오 1번째기사 1737년 청 건륭(乾隆) 2년

조상(朝象)을 탓하고 지평 정옥의 파직을 청하는 부교리 이정보의 상소

부교리(副校理) 이정보(李鼎輔)가 상소하기를,

"하늘은 노여움을 그치지 아니하여 견책하는 뜻을 거듭 알리고 민심은 두려워하고 흉흉하여 진정할 수 없으니, 조만간 화란(禍亂)이 일어난다는 것은 지혜 있는 사람의 말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데, 전하께서는 끝내 대오 각성하지 못하시고 한결같이 경진(競進)하시어 그 위망은 앉아서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삼가 듣건대 며칠 전 밖에 나가 있는 여러 신하가 기한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하여 대간(臺諫)이 장주(章奏)로 준엄하게 발론하고 성상의 하교(下敎)도 엄절하였다고 합니다. 대저 밖에 나가 있는 여러 신하들이 조정에 나왔다가 다시 물러간 것은 어찌 그들이 마음으로 즐겨 한 것이겠습니까? 근래 조상(朝象)을 잠깐 엿본다면 맨 처음 발단된 일은 엄중히 다스리자는 논계(論啓)를 정지시켜 임금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허물게 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을 해치려는 마음이 점점 심해져서 보이지 않는 곳에 함정을 다시 파 놓고는 아침에 한 사람을 제거하고 저녁에 한 사람을 또 제거하여, 조정 인원의 거의 절반이 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혹은 같은 조정에 함께 있기를 즐겨 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혹은 아직도 구습(舊習)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격동(激動)시켜 나와 다른 사람들은 들추어내 모두 임금의 명을 어긴 죄로 귀착하고, 세상 사람의 절반을 몰아쳐 조정에 앉아 있기가 불안하도록 하여, 종말에는 조정을 나간 여러 신하들을 중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논계를 내어 그들로 하여금 들볶이게 하여 처신하기가 군색하도록 하였으니, 그 설계가 참으로 교묘하였습니다. 박격(博擊)의 논의가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와 우포도 대장(右捕盜大將)에 대한 논계에 나온 데 이르러서는 극도에 달하였으니, 신은 어떠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마는, 지평(持平) 정옥(鄭玉)은 견책하여 파직하심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상소가 들어가자, 하교하기를,

"인화(人和)가 된 뒤라야 시의(時議)도 조정될 수 있는데, 아! 개벽(開闢)의 유시가 있은 후에도 비단 혼돈(混沌)함이 다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공격하고 배척함이 먼저 하지도 않고 뒤에 하지도 않아서, 그 의심하고 막혀 있는 것 역시 지난날과 다름이 없어서 조정이 절반은 비었다는 말을 제가 감히 글로 아뢰었으니, 부교리 이정보는 삭직(削職)하라."

하고, 이어서 하교하기를,

"아! 이정보뿐만 아니라 여러 신하들이 머뭇거리며 아직도 구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모두 ‘나라도 옛날 나라요 사람도 옛사람이다.’라는 따위의 말에 연유한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나의 명령을 어지럽히는 자가 누군인가? 태아(太阿)411) 가 무디지 않으니, 먼저 그 뿌리부터 베어버릴 것이다. 대소 신료들에게 자문하니, 지난날의 광유(廣諭)한 바를 마음속으로 더욱 두렵게 생각하여 국사(國事)에 합심 협력할 것이며, 서울에 있는 신하로서 병을 핑계대며 조정에 나오지 않는 자와 지방에 있는 신하로서 머뭇거리며 관망하는 자는 종중 추고(從重推考)할 것이니, 각기 직위에 따라 즉시 올라오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46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8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人事)

  • [註 411]
    태아(太阿) : 명검(名劍)의 이름.

○壬午/副校理李鼎輔上疏言:

天怒未已, 譴告荐疊, 群情洶懼, 莫可鎭定。 早晩禍亂之作, 不待智者而知之, 而殿下終不省悟, 一向泄泄, 其危亡可坐而待矣。 伏聞日昨以在外諸臣之過限不來, 臺章峻發, 聖敎嚴截。 夫在外諸臣, 旣進而復退, 豈其心之所樂爲? 第瞷近日朝象, 則最初做得, 不過停嚴討之啓, 使王綱墜壞, 而伐異之心滋甚, 暗地之穽復設, 朝除一人, 暮除一人, 殆空半朝之人, 而或諉之以不肯同朝, 或激之以猶爲舊習, 訐異己之類, 盡歸於方命之科, 敺半世之人, 不安於朝廷之上, 末乃發在外重勘之啓, 使之厮炒窘阨於去就之際, 其爲計誠巧矣。 搏擊之論, 至於湖南伯及捕將之啓而極矣。 臣未知有何機關, 持平鄭玉宜施譴罷也。

疏入, 敎曰: "人協而後時可調。 噫! 開闢之後, 非特無異混沌, 其所攻斥, 或不先不後, 其所疑阻, 亦無異往時, 半朝之說, 渠敢書奏, 副校理李鼎輔削職。" 仍下敎曰: "噫! 非特鼎輔, 諸臣趑趄, 猶售舊習者, 蓋由國是舊國, 人是舊人等說也。 由此推之, 亂我令者誰? 太阿不鈍, 先誅其源。 咨大小臣, 惟往日之廣諭, 益惕于心, 寅協其國, 在京諸臣之稱恙不進者、在外諸臣之趑趄逡巡者, 從重推考, 其各率職, 卽令上來。"


  • 【태백산사고본】 34책 46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8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