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43권, 영조 13년 2월 14일 임신 6번째기사
1737년 청 건륭(乾隆) 2년
김재로가 포흠의 징수를 독촉하여 수령들이 봄까지 창고를 봉하지 않고 있음을 아뢰다
임금이 상참(常參)을 행하였다. 좌의정 김재로(金在魯)가 말하기를,
"오래된 포흠(逋欠)의 징수를 독촉하는 것이 제일 불쌍히 여길 만합니다. 비록 생존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당초에 이미 빈궁하였고 또 해마다 새로 납입해야 하는 것이 있으므로, 모두 판비(辦備)할 길이 없어서 도망하기에 이르고, 침탈이 인족(隣族)에게 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전(舊典)에 연유된 것 이외에 각 아문(衙門)에서 해유(解由)049) 에 구애받는 것이 매우 많기 때문에, 수령들이 받아들이기를 독촉하여 그치지 않고 있어서 간혹 봄이 되도록 창고를 봉하지 않기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창고를 열어야 할 때까지 창고를 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백료(百僚)들이 모두 모여서 이미 이런 말을 들었으니, 도신(道臣)에게 신칙하여 적발되는 대로 논죄(論罪)하게 하라. 해유에 구애받는 것은 마땅히 너그럽게 해야 된다."
하였다. 헌납(獻納) 채응복(蔡膺福)이 전계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43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39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재정-전세(田稅) / 재정-창고(倉庫) / 사법(司法)
- [註 049]해유(解由) : 수령(守令)이나 관(官)의 물품을 관장하던 관원이 교체될 때, 후임자에게 사무를 인계한 다음 호조(戶曹)에 보고하여 책임의 해제를 받음. 이상이 없으면 이조(吏曹)에 통지하여 해유 문자(解由文字)를 발급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