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임 대신·원임 대신과 약방 제조를 동궁의 경선당에서 인견하다
임금이 시임 대신·원임 대신과 약방 제조를 동궁(東宮)의 경선당(慶善堂)에서 인견하였다. 세자는 금사관(金紗冠)과 청도포(靑道袍) 차림으로 임금의 오른쪽에 있었는데, 세자가 처음에는 대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서 싫어하는 기색이 있자, 임금이 웃으면서 도로 들어가게 하였다. 세자가 걸음을 재촉하여 들어가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무엇을 잃은 것 같은 섭섭한 기색이었다. 조금있다가 세자가 다시 서실(西室)로 와서 창문을 열고 서니, 임금이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다시 보게 하였다. 그제야 세자가 엄연한 자세로 빙 둘러 보았는데, 얼굴빛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중관(中官)이 문방 도구를 봉진(奉進)하니, 세자가 종이를 펴 놓게 하고는 나아가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는데, 붓대를 놀리는 것이 매우 익숙해 있었고 획을 긋는 것이 매우 힘이 들어 있었다. 붓이 마르면 붓을 중관에게 주어 먹물을 묻혀서 가져오게 하여 또 휘둘러 글씨를 써 내려 갔는데, 거의 종이에 꽉 찰 정도가 되자, 중관이 이를 궁관(宮官)에게 봉전(奉傳)하였으며, 대신과 여러 신하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보았다. 검열 이성중(李成中)에게 이르자 이를 가지고 가서 보장(寶藏)하게 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이어 이르기를,
"조금 전에 칭얼댄 것은 사람들이 저를 안는 것을 싫어해서이다. 지난번 부채를 보고서 잡으려고 하기에 내가 이르기를, ‘내 손이 부채에 다쳤다.’고 했더니, 그뒤로는 부채를 보고서도 잡으려 하지 않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42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20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上引見時原任大臣、藥房提調于東宮之慶善堂。 世子以金絲冠、靑道袍, 在上之右, 世子見多生面, 有厭苦色, 上笑令還入, 世子促步而入, 諸臣皆悵然如失。 旣而世子還至西室, 拓窓而立, 上命諸臣復仰瞻。 於是, 世子儼立環視, 載色載笑。 中官奉進文房諸具, 世子令展紙, 就作書畫, 而搦管甚習, 引畫甚力。 筆乾則以筆授中官, 蘸墨以來, 又揮灑書, 幾盈紙。 中官奉傳于宮官, 大臣、諸臣以次傳看。 至于檢閱李成中請歸而寶藏, 上可之。 因言: "俄者之啼, 恐人抱之耳。 向者見扇而欲持予謂予手見傷於此, 其後見扇而不執矣。"
- 【태백산사고본】 32책 42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20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