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에서 조덕린의 상소 내용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되니 그를 처벌하기를 청하다
사헌부 【장령 송시함(宋時涵)이다.】 에서 전계를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공홍 수사(公洪水使) 허정(許晶)은 늙어서 혼암하고 잔약하며, 구성 부사(龜城府使) 양빈(梁彬)은 늙고 혼암하여 일을 살피지 못하고 있으니 모두 개차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사간원 【정언 김한철(金漢喆)이다.】 에서 전계를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조덕린(趙德隣)이 지난해에 올린 한 통의 소장은 모두 요사하고 패려한 말이었는데, ‘정명(正名)’이란 두 글자를 거론한 것은 더욱 흉악하고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실로 흉적이 쓴 격서(檄書)의 효시(嚆矢)이고 괘서(掛書)의 근저(根柢)이었는데, 큰 역적이 법망에서 누락되었기 때문에 물정(物情)이 오래도록 놀라고 있으니, 절도(絶島)에 정배시키소서. 경상도의 전 수사 유경장(柳經章)은 부임하는 길에서 국기일(國忌日)을 당하였는데도 풍악(風樂)을 성대하게 울렸으니, 사판(仕版)에서 삭제시키소서."
하고, 또 기내(畿內)의 재해가 더욱 심한 고을에는 더 급재(給災)353) 하기를 청하니 비답하기를,
"조덕린에 대한 일은 너무 지나치다. 유경장의 일은 해부(該府)로 하여금 잡아다가 조처하게 하겠다. 말단의 일은 비국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겠다."
하였다. 김한철이 드디어 피혐하면서 아뢰기를,
"영남(嶺南)에서 의리가 회색(晦塞)되어 변괴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조덕린의 정명설(正名說)이 저절로 하나의 의리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을사년354) 의 흉론(凶論)은 밖으로는 진계(陳戒)를 핑계대어 부도한 말을 삽입한 것이었으니, 이른바 당연한 법칙을 각기 극진히 행하여 타고난 천성을 굳게 지켜 보전해야 된다는 등의 말들은 진실로 이미 한없이 음특(陰慝)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북두성(北斗星)이 기울어지면 임금이 잠자리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데, 이런 때에 잃어버렸던 일을 시험삼아 다시 더듬어 보면 진성(眞性)이 그 가운데 있고 양심(良心)이 앞에 보이게 된다.’고 논하였으며, 끝으로 결론짓기를, ‘백세(百世) 전과 천세(千世) 뒤에 반드시 정명(正名)으로 실상을 구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인데, 지금 세상에 있어 실상에 의거하여 정명(正名)시킬 분은 우리 전하(殿下)에게 있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이렇게 수미(首尾)가 서로 조응(照應)되고 지의(指擬)가 망측하기 그지없습니다. 전하께서 시험삼아 그의 소장을 가져다가 다시 열람하여 보신다면, 그것이 역적을 위한 격서(檄書)의 장본이었음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찬배시키라는 명을 내릴 적에는 단지 황옥(黃屋)355) 에 마음을 두지 않았고 지위를 요구할 뜻이 없었다 하지만, 창졸간에 눈물을 훔치고 즉위(卽位)하게 되었다는 등의 말로 죄안(罪案)을 만들었는데, 얼마 안 되어 곧 사면(赦免)시키고 제수(除授)하라는 명이 잇달았으므로, 풍지(風旨)를 받드는 무리들이 서로들 전파하여 의리를 만들어 내어 와언(訛言)으로 선동하였으며, 쓸리듯이 같은 궤도로 치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역변(逆變)이 있은 뒤에는 마땅히 거괴(巨魁)를 섬멸하는 형률을 시행했어야 하는데, 아직껏 목숨을 보존하고 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통분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였다. 다음날 송교명(宋敎明)이 처치(處置)하기를,
"토죄(討罪)한 것이 이미 대체(臺體)에 맞는 것이었는데, 비답에서 윤허하지 않는 것을 어찌 혐의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출사(出仕)하게 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42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15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구휼(救恤)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註 353]급재(給災) : 재해(災害)를 입은 전지에 대하여 전세(田稅)를 면제하여 주던 일. 그 재상(災傷)의 정도에 따라 차등이 있었음.
- [註 354]
을사년 : 1725 영조 원년.- [註 355]
황옥(黃屋) : 임금을 가리킴.○甲申/憲府 【掌令宋時涵。】 申前啓, 不允。 又啓: "公洪水使許晶年衰昏孱, 龜城府使梁彬老昏不省事, 請竝改差。" 從之。 諫院 【正言金漢喆。】 申前啓, 不允。 又啓: "趙德隣頃年一疏, 無非妖言悖說, 正名二字, 尤極凶慘。 此實賊檄之嚆矢, 掛書之根柢, 呑舟漏網, 物情久駭, 請絶島定配。 慶尙前水使柳經章赴任之路, 當國忌日, 盛張風樂, 請削版。" 又請畿內尤甚邑加給災結。 批曰: "趙德隣事, 太過, 柳經章事, 令該府拿處。 末段事, 令備局稟處。" 漢喆遂避嫌曰: "嶺南之義理晦塞, 變怪層生, 無他, 德隣正名之說, 自作義理故也。 其乙巳凶論, 外托陳戒, 揷入不道之語, 其所謂各盡當然之則, 全其秉彝之天等語, 固已帶得無限陰慝之意。 繼之以星斗闌干, 丙枕始覺, 試於是時略加提醒, 則眞性在中, 良心見前, 結之以百世在前, 千世在後, 其必有正名責實, 而居今之世, 據實而正名者, 其不在我殿下云者, 首尾相照, 指擬叵測。 殿下試取其疏更覽, 則庶知其爲賊檄之張本也。 其時竄配之命, 只以非心黃屋, 無意求位, 倉卒之日, 掩涕登阼等語爲案, 未幾旋宥, 除命陸續, 承風之徒, 互相傳播, 把作義理, 訛言煽動, 靡然一轍。 逆變之後, 宜施殲厥渠魁之律, 而尙保首領, 國人憤痛。" 云云。 翌日, 宋敎明處置言: "討罪旣得臺體, 靳批何必爲嫌? 請出仕。"
- 【태백산사고본】 32책 42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15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구휼(救恤)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註 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