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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42권, 영조 12년 8월 20일 신사 2번째기사 1736년 청 건륭(乾隆) 1년

경상도 진사 신헌 등이 송시열·송준길의 문묘 종사를 청하고 이인지의 무함을 아뢰다

경상도의 진사(進士) 신헌(申櫶) 등이 상소(上疏)하여 선정신(先正臣)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할 것을 청하고, 이어 이인지(李麟至)의 무욕(誣辱)에 대해 변해(卞解)하기를,

"이인지는 곧 고묘소(告廟疏)를 올린 소두(疏頭) 이재헌(李在憲)의 아들이고, 흉적 윤이익(尹以益)의 사위입니다. 김성탁(金聖鐸)에 이르러서는 이현일(李玄逸)의 문도(門徒)로서 전적으로 이인지의 의도를 답습하였는데, 한 사람이 기치를 세우자 온 도(道)가 그림자처럼 빠르게 뇌동(雷同)하였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이현일기사년352) 의 흉론(凶論)을 주장하여 문장공(文莊公) 정경세(鄭經世)의 묘비(墓碑)를 찬술하면서 이에 감히 인현 왕후(仁顯王后)를 자손록(子孫錄)에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영남 사람들의 풍기(風氣)가 모두 바뀌어져서 지난해에 있었던 조덕린(趙德隣)의 한 소장은 사특한 궤변(詭辯)을 교묘히 늘어 놓은 것으로, 이러한 의논을 은밀히 전하여 암송하고 있으니 온 도의 인심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황간(黃澗)한천(寒泉)이란 곳에 송시열의 영령(英靈)을 모신 곳이 있는데, 이인지의 소하(疏下) 4, 5인이 갑자기 들이닥쳐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면사(面紗)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습니다. 이뒤로 또 무슨 이변이 발생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유시(諭示)한 적이 있다. 돌아가서 학업을 연마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42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1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가족(家族)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사상-유학(儒學)

慶尙道進士申𨯶等上疏, 請先正臣宋時烈宋浚吉從祀文廟, 仍卞李麟至誣辱有曰:

麟至卽告廟疏頭在憲之子, 凶賊以益之壻也。 至若金聖鐸李玄逸之門徒, 專襲麟至之意, 一人立幟, 擧道影附。

又言:

玄逸主己巳凶論, 撰文莊公 鄭經世墓碑, 乃敢不載仁顯聖母於子孫錄。 嶺人風氣都換, 頃年趙德隣一疏, 詭慝閃忽, 而此等議論, 潛傳暗誦, 一道人心, 不可爲矣。 黃澗 寒泉地, 有宋時烈妥靈之所, 麟至疏下四五人, 突入指點, 裂壞面紗。 不知此後, 又生出何等變異矣。

批曰: "曾已諭。 往修學業。"


  • 【태백산사고본】 32책 42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1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가족(家族)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사상-유학(儒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