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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40권, 영조 11년 5월 26일 을축 1번째기사 1735년 청 옹정(雍正) 13년

승지 이일제가 변방의 사정에 대해 아뢰다

임금이 소대(召對)를 행하였다. 말이 변방(邊方)의 일에 미치자, 승지 이일제(李日躋)가 말하기를,

"신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나갔을 때에 변방의 사정을 대략 탐지하였습니다. 대개 여진족(女眞族)의 소굴은 백두산(白頭山)의 북쪽 숙신(肅愼)의 옛땅에 있었으니, 우리 나라의 경계와 한 줄기 강물이 간격(間隔)해 있을 뿐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東人]들이 언제나 걱정하기를, ‘저들이 사변이 생길 것 같으면 장차 우리에게 길을 빌려서 영고탑(寧古塔)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하지만 신의 생각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영고탑은 곧 금(金)나라 사람들의 옛 소굴이었고, 건주(建州)는 바로 청(淸)나라가 개국(開國)한 터전이기 때문에 저들은 건주흥경(興京)이라고 일컬으며, 심양(瀋陽)을 성경(盛京)이라고 일컫습니다. 또 듣건대, ‘영고탑진(寧古塔鎭)오랄진(烏喇鎭)선창(船廠)에 옮겼다.’고 하는데, 그 땅은 성경과 영고탑의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서로의 거리는 각각 7백 리입니다. 가령 청나라 사람들이 곤란하여 자기들 소굴로 돌아간다면, 하필 오랄(烏喇) 지방의 쉽게 알고 있는 길을 버리고 남의 경계에 잘 알지도 못하는 땅을 거치겠습니까? 두만강(豆滿江)압록강(鴨綠江)의 연안은 지나가는 길이 너무나 험하니, 만약 저들이 우리의 내지(內地)로 들어와서 설한령(薛罕嶺)을 넘게 된다면 더욱 멀리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목극등(穆克登)이 와서 양국(兩國) 경계(境界)를 정한 것은 생각건대, ‘장차 여도(輿圖)를 만들기 위한 것이요, 후일에 길을 빌리려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이 걱정하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근래 변방의 소란이 없었는데, 이것은 실로 청나라 사람들이 중국 땅으로 들어가서 그 동북 지역에 살던 여러 종족들이 뒤따라 남쪽으로 옮겨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들으니, 저들의 관외(關外)에 있는 난민(亂民)들이 무리를 모아서 산삼을 채취하고 짐승을 사냥한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의 관방(關防)이 허술하니, 이쪽의 형편을 익숙히 알지 못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 땅에서의 산물(産物)은 옥수수가 아니면 기장인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큰 주발에 가득히 담은 쌀밥을 먹는 것을 바라보고서 침을 흘리며 욕심 내기를 마지 않고 있는 실정이니, 만일 중원(中原)에서 사변이 생기면 고려 말엽의 홍건적(紅巾賊)의 전철을 밟을 것입니다. 비록 평안도 일로(一路)를 가지고 말하더라도 적유령(狄踰嶺) 아래 계반(鷄盤) 9계단의 험로를 따라서 일찍이 하나의 성보(城堡)도 쌓은 것이 없으며, 강계부(江界府)의 성(城)은 겨우 부잣집의 담장과 같을 뿐입니다. 우리 동방에서는 산성(山城)을 쌓기 좋아하고 요로에서 적을 막기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도신(道臣) 박사수(朴師洙)는 매양 말하기를, ‘요해지에 돌을 쌓아서 보루를 만들고 나무를 꽂아서 목책(木柵)을 설치한다면 오히려 오랑캐 기병들의 표략(剽掠)을 방어할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옳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40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47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군사-관방(關防) / 외교-야(野)

○乙丑/上行召對。 語及邊事, 承旨李日躋曰: "臣奉使時, 略探邊情。 蓋女眞巢窟, 在於白頭山肅愼故地, 距我界隔一衣帶而已。 東人每憂, 彼若有事, 將借路於我, 歸寧古塔。 臣意不然, 寧塔金人之舊窟, 建州淸國之開基, 故彼以建州興京, 瀋陽盛京。 又聞移寧塔鎭烏喇鎭船廠云, 其地處於盛京寧塔之間, 相距各七百里。 假令淸人困而歸巢, 何必捨烏喇易知之道, 而涉他境素昧之地乎? 沿江, 徑路絶險, 若穿我內地, 踰薛罕則尤爲迂回。 向年穆克登之來定兩界, 意者將爲輿圖, 而不在他日借路耳。 臣之所憂者, 我國之近無邊警, 實由於淸人之入中國, 東北雜種, 隨而南徙故也。 今聞彼關外亂民, 聚黨採獵, 我之關防踈虞, 無不備諳。 渠土生理, 非薥則黍, 望見我人之大椀喫飯, 流涎不已。 萬一中原有事, 則紅巾, 可爲前車。 雖以平安一路言之, 遵狄嶺鷄盤九階之險, 曾無一垜之築, 江界府城, 僅如富屋之垣耳。 我東好築山城, 而不思當路遮賊, 故道臣朴師洙每曰: ‘要害聚石爲壘, 揷木設柵, 猶可禦遊騎之剽掠耳。’" 上然之。


  • 【태백산사고본】 30책 40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47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군사-관방(關防)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