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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40권, 영조 11년 2월 26일 정묘 4번째기사 1735년 청 옹정(雍正) 13년

이재후와 정형복의 상소 내용에 대해 논란하다

영의정 이의현(李宜顯)이 상소하여 사직하고, 또 말하기를,

"신이 연달아 조지(朝紙)를 접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 신하들이 석연하게 양해(諒解)했다는 하교가 계셨습니다. 대개 신이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전에 진청(陳請)한 바가 있었지만, 연석(筵席)에 입시하면 문득 신자(臣子)들이 감히 귀로써 듣지 못할 하교를 내리셨으므로 신 등은 일제히 같은 목소리로 이를 정지하도록 청하였으니, 대개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러서는 다른 일들을 말할 겨를이 없었던 때문입니다. 이미 ‘감히 들을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남의 신자(臣子)가 되어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있거니와 어찌 감히 석연한 뜻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신은 그날에 약간 면계(勉戒)하고자 하였으나, 미처 말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가슴에 불안한 마음을 품었던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임금이 말씀은 실[絲]과 같고 그 나오는 것은 솜[綸]과 같다.’고 하였으니, 진실로 말씀을 하실 때에 신중하지 아니하면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계속해서 더욱더 삼가고 신칙하기를 더하여 외간 사람들로 하여금 함부로 엿보아 헤아리지 못하게 하시고, 또한 자질구레한 생각을 흉중에 머물러 두지 마소서. 하물며 지금 전에 없던 나라의 경사가 생기고 좋은 운회(運會)가 바야흐로 새로워서 온 나라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화기로운 기운이 넘쳐 흐르며 묵은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내고 암울한 세상을 활짝 열어서 천지가 교태(交泰)하고 내외가 화합하는 데에 이르렀으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소가 들어가자, 옥당(玉堂) 김약로(金若魯)와 지평 김상로(金尙魯) 등을 인견(引見)하고, 하교하기를,

"지난날 하교한 뒤에도 만약 석연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면, 장차 여러 신하들을 어떻게 쓰겠으며 나도 또한 어떻게 남면(南面)할 수가 있겠는가? 지난날에 영상[首揆]도 또한 말하기를, ‘석연하게 알았다.’라고 하였었다. 영상이 이 당습(黨習)에 대하여 깨끗이 벗어나지 못했는데도 그 말이 오히려 이와 같았으므로, 나의 생각으로는 이때가 바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때라고 여겨서 드디어 그를 중복(重卜)082) 하기에 이르렀었다. 그런데 오늘 이 상소에서는 비단 석연하지 못하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나의 말을 부실(不實)한 것으로 돌린단 말인가?"

하고, 또 김상로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헌부의 신하들이 정형복(鄭亨復)을 망령스럽고 경솔하다고 하였으나, 지금의 대신들은 정형복에게 굽신굽신 허리를 굽혀서 사죄하고 있으니, 이목(耳目)의 관원들은 대신 이하를 모두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어서 이의현의 상소를 여러 신하들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정형복의 상소는 잘못 들은 데에서 나왔기 때문에 내가 따뜻하게 비답하여 이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이 상소에서 나는 군군 신신(君君臣臣)의 뜻을 밝히고자 한다."

하니, 김상로가 말하기를,

"비록 죄를 주더라도 반드시 그를 예로써 진퇴(進退)시켜야 합니다."

하였다. 그 이튿날 임금이 비로소 비답을 내리기를,

"비록 나이가 어려서 망령되고 경솔한 무리라고 하더라도 한밤중에 하교한 뒤에 감히 이와 같이 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흰 머리의 늙은 고굉지신(股肱之臣)이겠는가? 경이 이미 나를 저버렸으니, 내가 어찌 달리 유시하겠는가?"

하고, 이어서 함께 오라고 한 사관을 철수하라 명하고, 또 하교하기를,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곧은 자를 들어서 쓰고 굽은 자를 버린다.’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세상에서 곧은 자들은 몇 사람이겠으며 굽은 자들은 몇 사람이겠는가? 대관(大官)도 오히려 굽었는데, 다른 사람이야 족히 말할 것이 있겠는가? 내가 하교하기 전에 옳다거니 그르다거니 하면서 서로 이기려고 한 것은 오히려 혹 가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밝게 유시한 뒤에도 만약 석연하게 깨달아 알지 못하고 전처럼 자기 당파나 비호한다면 금일의 신자가 아니다. 만약 오히려 석연하지 못하다고 하여 이를 의심한다면 이것은 여러 신하들을 불충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여러 신하들에게는 곡진(曲盡)하다고 이르면서도 그 스스로는 석연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또한 무슨 뜻인가? 더욱 이상스러운 점은 그때 하교한 것은, ‘불령(不逞)하게 선동(煽動)한다.’는 말을 외운 정도에 지나지 아니하였는데, 영상의 말에는 마치 내가 달리 감히 귀로써 듣지 못할 말을 하여서 신료들을 꼼짝 못하게 억누르는 것처럼 하였으니, 이것은 깊은 밤중에 등대(登對)하느라고 정신이 혼미하고 착오된 결과가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외간 사람들로 하여금 망령되게 엿보고 헤아리지 못하게 하며 자질구레한 생각을 흉중에 머물러 두지 말라.’는 따위의 말을 하였으니, 이 무슨 말인가? ‘천지가 교태하고 내외가 화합한다.’라는 따위의 말에 이르러서는 또한 한없이 이상하고 의심스럽다. 이재후(李載厚)의 상소는 하교를 상세히 알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조정를 욕하였으니, 그 마음이 비록 간악스럽기는 하였지만 오히려 그를 용서하였다. 정형복의 상소도 또한 와전(訛傳)된 말을 잘못 듣고서 경거 망동하여 함부로 아뢴 것에 지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모두 이미 정상을 참작하여 처분하였다. 그러나 관직이 삼사(三事)083) 에 있어 이미 나의 하교를 듣고서도 오히려 또 감히 어지러운 말들을 아뢰어서 분수와 의리를 문란시켰으니 나라의 기강이 해이하게 되었으며, 인심을 현혹(眩惑)시켰으니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게 되었다. 왕자(王者)가 법을 쓸 때에는 마땅히 대관(大官)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태아(太阿)084) 가 수중에 있으니, 어찌 언제나 어물어물 넘기고 말겠는가? 나라의 뜻을 먼저 보이지 아니할 수가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40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472면
  • 【분류】
    인사(人事) / 역사-고사(故事)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註 082]
    중복(重卜) : 두 번째로 의정(議政) 벼슬에 임명함.
  • [註 083]
    삼사(三事) : 삼공(三公).
  • [註 084]
    태아(太阿) : 옛날 보검(寶劍)의 이름. 곧 제왕(帝王)의 권한을 말함.

○領議政李宜顯上疏辭職, 又曰:

臣連接朝紙, 每有諸臣釋然之敎。 蓋臣與諸臣, 前固有陳請者, 而及入筵席, 輒下臣子不敢聞之敎, 臣等之齊聲請寢, 蓋到此則他姑不暇言故耳。 旣曰不敢聞, 爲人臣子, 悚然則有之, 豈敢有釋然之意? 抑臣於伊日, 略欲勉戒, 而未及畢說, 餘懷耿耿。 古語曰: "王言如絲, 其出如綸。" 苟不能愼於出言, 其害有不可勝言者。 繼自今益加毖飭, 勿使外間妄有窺測, 亦勿使些子意, 留着胸中。 矧今邦慶無前, 景運方新, 寰區謳歌, 和氣洋溢, 痛滌査滓, 廓開纖翳, 以致天地交泰, 內外訢合, 豈不休哉?

疏入, 上引見玉堂金若魯、持平金尙魯等, 敎曰: "頃日下敎之後, 若不釋然, 將焉用諸臣, 予亦豈可南面乎? 頃日首揆亦云釋然, 首揆於此, 本不能灑脫, 而其言猶如此, 予意此正可爲之時, 遂至重卜。 今日此疏, 不但不釋然, 反以予言, 歸之不實耶?" 又顧謂尙魯曰: "憲臣以鄭亨復爲妄率矣。 今大臣則僕僕摧謝於亨復, 耳目之官, 自大臣以下皆可規正矣。" 仍以宜顯疏, 示諸臣曰: "亨復疏出於誤聞, 故溫批以鎭之。 此疏則予欲明君君臣臣之義矣。" 若魯曰: "雖罪之, 必以禮進退焉。" 翌日始賜批曰: "雖年少妄率之輩, 半夜下敎之後, 不敢若是, 況白首股肱之臣乎? 卿已負予, 予何他諭?" 仍命輟偕來史官, 又敎曰: "夫子曰: ‘擧直措枉。’ 于今之世, 直者幾人, 枉者幾人, 大官猶枉, 他無足道。 下敎之前, 曰是曰非, 互相務勝, 猶或可也, 洞諭之後, 若不釋悟, 依前護黨, 非今臣子也。 若以猶未釋然疑之, 此驅諸臣於不忠也。 爲諸臣可謂曲盡, 而自當以未釋然者, 抑何意也? 尤可異者, 其時下敎, 不過誦不逞煽動之說, 而首揆之言, 有若予以他不敢聞之敎, 箝制臣僚者然, 無乃深夜登對, 神氣昏錯之致乎? 尤況勿使外間妄有窺測, 勿使些子留着等說, 是何言是何言? 至於天地交泰, 內外訢合等說, 亦有無限異疑。 李載厚之疏, 未詳下敎, 因此而辱朝廷, 其心雖可惡, 猶有可恕。 鄭亨復之疏, 亦不過誤聽訛傳, 輕動妄陳, 故處分俱已參量, 而職在三事, 旣聽下敎, 猶且敢陳亂說, 分義紊亂, 王綱斁矣。 人心誑惑, 國不國矣。 王者用法, 宜自大官始, 太阿在手, 豈可每每泄泄? 不得不先示予意。"


  • 【태백산사고본】 30책 40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472면
  • 【분류】
    인사(人事) / 역사-고사(故事)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