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빈 이씨가 원자를 집복헌에서 탄생하다
영빈 이씨(暎嬪李氏)가 원자(元子)015) 를 집복헌(集福軒)에서 탄생하였다. 그때 나라에서 오랫동안 저사(儲嗣)가 없으니 사람들이 모두 근심하고 두려워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온 나라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시임 대신(時任大臣)·원임 대신(原任大臣) 및 여러 재신과 옥당(玉堂)에서 모두 나아가 청대(請對)하니, 임금이 이들을 인견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번갈아 하례하는 말을 올리니, 임금이 말하기를,
"삼종(三宗)016) 의 혈맥이 장차 끊어지려 하다가 비로소 이어지게 되었으니, 지금 다행히 돌아가서 열성조(列聖祖)에 배알(拜謁)할 면목이 서게 되었다. 즐겁고 기뻐하는 마음이 지극하니, 그 감회 또한 깊다."
하였다. 봉조하(奉朝賀) 민진원(閔鎭遠)이 말하기를,
"원자를 보양(保養)하는 절차를 진실로 극진하게 해야 마땅한데, 석복(惜福)의 도리에 더욱 마땅히 뜻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니, 판부사(判府事) 서명균(徐命均)이 말하기를,
"석복의 도리는 검약(儉約)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였다. 민진원이 말하기를,
"옛날 경종[景廟]께서 처음 태어났을 때 인현 왕후(仁顯王后)께서 취하여 아들로 삼았었는데, 지금도 또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고, 여러 대신들이 원자의 호(號)를 빨리 정하여 종묘에 고하고 반사(頒赦)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도 경들의 청대하기를 요구한 뜻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대비전[東朝]에 이것을 품지(稟旨)하였다."
하였다. 이어서 유시를 내리기를,
"삼종의 혈맥을 지금 부탁할 데가 있으니 즐겁고 기쁜 마음을 어찌 말하랴? 내전(內殿)에서 아들로 취하고 원자의 호를 정하는 일을 어찌 조금이라도 늦출 수가 있겠는가? 즉시 이를 거행하여 위로 종묘와 사직에 고하고 아래로 8도에 반사하도록 하라."
하였다. 봉조하(奉朝賀) 이광좌(李光佐)가 말하기를,
"무릇 원자궁(元子宮)에 종사하는 자들은 궁인(宮人)과 내관(內官)을 물론하고 반드시 근후(謹厚)한 자를 골라서 좌우에 둔다면 자연히 습관과 성격이 잘 이루어지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내전에서 아들로 취하는 것은 사체가 매우 중하니, 마땅히 화기가 궁궐의 사이에 넘쳐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신이 여러 번 이러한 말씀을 우러러 권면하였으나, 아직도 그 효과가 없으니, 능히 천지(天地)의 큰 도량에 유감(遺憾)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경이 어떻게 아는가?"
하자, 대답하기를,
"진실로 화평스러운 미덕(美德)이 있었으면 이남(二南)017) 의 교화(敎化)가 반드시 이미 멀고 가까운 곳에 두루 미쳤을 터인데, 조정의 신하들이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권면하기를 더하겠다."
하였다. 박문수가 또 말하기를,
"당론(黨論)은 실로 망국(亡國)의 기초가 되는데, 지금 국가에서는 단지 한 살 먹은 원량(元良)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때에 여러 신하들이 만약 당파의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이 어찌 나라를 체념(體念)하는 도리이겠습니까? 전하께서 비록 ‘이미 탕평(蕩平)을 이루었다.’고 하시나, 능히 민진원·이광좌로 하여금 머리를 맞대고 일은 집행하도록 하지 못하시니, 이것은 가짜 탕평[假蕩平]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삼종의 혈맥이 지금 다행이 다시 이어졌으니, 원자를 도와주어서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경들이 삼가 협조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하였다. 조현명(趙顯命)이 말하기를,
"원자를 보양(保養)하는 절목은 내전에서 모두 직접 맡아서 관리해야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가납(嘉納)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40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466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정론-간쟁(諫諍)
- [註 015]원자(元子) : 사도 세자임.
- [註 016]
삼종(三宗) : 효종·현종·숙종.- [註 017]
이남(二南) :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의 두 명. 주남은 주나라 문왕의 후비가 수신 재가(修身齊家)한 일을 노래한 것이고, 소남은 남국(南國)의 제후(諸侯)가 후비의 덕화(德化)를 입은 것을 읊은 것임.○壬辰/暎嬪 李氏誕生元子于集福軒時國家久無儲嗣, 人皆憂懼, 至是擧國懽忭, 時原任大臣及諸宰玉堂, 咸詣請對, 上引見諸臣, 迭陳賀語, 上曰: "三宗血脈將絶而始續, 今幸有歸拜列祖之顔。 喜悅之極, 感懷亦深矣。" 奉朝賀閔鎭遠言: "保養之節, 固當極至, 而惜福之道, 尤宜加意。" 判府事徐命均曰: "惜福之道, 在於儉約矣。" 鎭遠曰: "昔景廟始生, 仁顯王后取以爲子, 今亦宜然。" 諸大臣請亟定號元子, 告廟頒赦, 上曰: "予已知卿等求對之意, 故已稟于東朝矣。" 仍下諭曰: "三宗血脈, 今有所托, 欣喜曷喩? 內殿取子, 元子定號, 豈容小緩? 卽爲擧行, 上告廟社, 下頒八道。" 奉朝賀李光佐曰: "凡從事於元子者, 毋論宮人與內官, 必擇謹厚者, 爲之左右則自然有習與性成之效矣。" 靈城君 朴文秀曰: "內殿取子, 事體尤重, 宜使和氣藹然於宮闈之間。 臣屢以此仰勉, 而尙無其效, 不能無憾於天地之大也。" 上笑曰: "有效無效, 卿何以知?" 對曰: "苟有和平之美、二南之化, 必已覃及遠邇矣, 廷臣豈不知之乎?" 上曰: "予當加勉。" 文秀又曰: "黨論實爲亡國之基, 卽今國家, 只有一歲元良。 此時諸臣苟有黨心, 是豈體國之道乎? 殿下雖曰已致蕩平, 而不能使閔鎭遠、李光佐聚首做事, 不過是假蕩平也。" 上曰: "三宗血脈, 今幸復續, 扶而安之, 惟在卿等之寅協。" 趙顯命曰: "元子保養之節, 內殿皆宜照管。" 上嘉納之。
- 【태백산사고본】 30책 40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466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정론-간쟁(諫諍)
- [註 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