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병사 박찬신이 황주의 극성을 살펴 본 상황에 대해 아뢰다
황해 병사(黃海兵使) 박찬신(朴纘新)이 아뢰기를,
"삼가 사폐(辭陛)할 때의 성지(聖旨)에 따라 사리를 이해하는 수령(守令)들과 황주(黃州)의 극성(棘城)에 모이기로 약속을 하여 형편을 두루 살펴보았더니, 흙으로 축조한 옛 성지(城址)는 그 높이가 겨우 열자 남짓 밖에는 안되고 그 중간에는 또 무너진 곳이 있었습니다. 지금 만일 그 성지에 나아가서 절반은 옛날에 축조한 것을 사용하고 절반은 돌을 깎아서 쌓고 성(城)의 안두(岸頭)에는 한 개의 포루(砲樓)를 설치하며 성의 우측을 석통포(石筒浦)라 하는데 그 옛 포구(浦口)를 수백보(數百步)쯤 파서 조수(潮水)로 하여금 성 밑에 이르도록 하고, 성의 좌측은 대야통(大也筒)이라 하는데 대야통 둘레의 안팎을 열 자쯤을 파서 높은 곳을 언덕으로 만들고 우묵한 곳을 호(濠)로 만들게 하며, 또 산산진(蒜山鎭)의 첨사(僉使)를 폐지하고 본영(本營)의 우후(虞候)로써 절충과(折衝窠)로 삼아 겸하여 관장하게 하여 극성의 안에 옮겨 거처하게 하고, 겨울 삼삭(三朔) 동안은 병사(兵士)가 산산(蒜山)에 머물러 방어하고, 우후는 돌아와 본영(本營)을 지키게 한다면, 급박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믿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니, 일이 비국(備局)에 내려졌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38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444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癸酉/黃海兵使朴纉新啓言: "謹依辭陛時聖旨, 與解事守令, 約會于黃州 棘城, 周覽形便, 則土築舊址, 其高僅丈餘, 間又頹圯。 今若就其址, 一半用舊築, 一半代石以築, 城之岸頭, 設一砲樓, 而城之右曰石筒浦, 掘其舊浦口數百步, 使潮水達于城下, 城之左曰大也筒, 環筒內外掘丈許, 使高者爲岸, 凹者爲濠。 又罷蒜山鎭僉使, 以本營虞候作折衝窠兼管之, 移處於棘城之內, 而冬三朔則兵使留防, 蒜山虞候還守本營, 可爲緩急之恃。" 事下備局。
- 【태백산사고본】 29책 38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444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