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38권, 영조 10년 4월 20일 을축 5번째기사
1734년 청 옹정(雍正) 12년
생원·진사·유생의 관복의 제도에 대해 유신들에게 각자의 의견을 수렴할 것을 명하다
생원(生員)·진사(進士)·유생(儒生)의 관복(冠服)의 제도에 대해 여러 유신(儒臣)들에게 각자의 의견을 수렴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앞서서 조명익(趙明翼)의 상소로 인하여 옥당(玉堂)으로 하여금 널리 고증하게 하니, 교리(校理) 유최기(兪最基)가 말하기를,
"난삼(襴衫)과 복두(幞頭)는 바로 중국의 제도로서 고(故) 상신(相臣) 민정중(閔鼎重)이 연경(燕京)에 갔을 때 구해온 것입니다. 그래서 비로서 그 제도를 알게 되었는데, 지금 예(禮)를 좋아하는 가문에서도 또한 자못 관례(冠禮)할 때에 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상께서 중국의 제도를 사용하고자 하시니, 신은 실로 감탄하는 바이나, 이번에는 응방(應榜)의 기일(期日)이 이미 박두하여 그 기한 내에 마련하여 준비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해조(該曹)에 명하여 그 관복(冠服)의 제도를 산림(山林)의 여러 유신(儒臣)들에게 널리 물어보도록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여러 유신들의 의견을 수렴한 것이 모두 명백히 근거할 만한 것이 없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뒤에 마땅히 널리 자문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38권 8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433면
- 【분류】의생활-관복(官服) / 외교(外交)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