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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33권, 영조 9년 1월 5일 정해 1번째기사 1733년 청 옹정(雍正) 11년

탕평책·진휼책·수령 선발 등 실효가 없는 열 가지 일에 대한 심명열의 상소

정언(正言) 심명열(沈命說)이 상소하여 실효(實効)가 없는 열 가지 경계에 대해 말하기를,

"탕평(蕩平)의 정책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실제의 효과는 까마득하고, 진휼(賑恤)의 정책이 근실(勤實)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실제의 혜택은 적고, 수령(守令)을 뽑고 처음 벼슬하는 자를 선발하였으나 신중하게 선택하는 실상이 없고, 인재(人才)를 찾아내고 숨어 있는 이를 방문했으나 선발·등용하는 실적(實績)이 없고, 간신(諫臣)이 비록 갖추어졌으나 허물을 바로잡은 실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경연(經筵)을 비록 설치하였으나 계옥(啓沃)006) 의 실적(實績)을 듣지 못하고, 사치가 날로 번성하나 절약하고 검소하는 실적이 없고, 사정(私情)에 치우친 것이 제거되지 아니하여 공도(公道)를 넓힐 실효가 멀어졌고, 장오(贓汚)를 금하는 법이 비록 엄격하여도 징계되어 두려워하는 실적은 없고, 묘유(卯酉)007) 의 법은 형식적일 뿐이고 종합적으로 밝히는 실적이 없습니다. 이는 다만 전하께서 명예를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고 실적을 힘쓰는 성의가 얕기 때문입니다.

신이 삼가 성상께서 사람을 등용하는 방법을 살펴보건대, 그 사람의 어질거나 어리석음은 헤아리지 않고 오직 작록(爵祿)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자만 채용하며, 나아가고 물러남에 있어 옳고 그른 것은 묻지도 않고 오직 직명(職名)을 공손하게 받드는 자에게만 맡기십니다. 그래서 경수(涇水)008) ·위수(渭水)009) 가 합류(合流)하고 얼음과 숯불이 같은 그릇에 담긴 꼴이 되었습니다. 관원들의 기강(紀綱)이 이로 말미암아 혼란스러워지고 명예와 절개가 이로 인해 무너졌으니, 이는 위에서 탕평(蕩平)의 실상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묘당(廟堂)의 추천과 전조(銓曹)의 주의(注擬)에 있어서 이쪽의 한 사람을 등용하려고 하면 반드시 저쪽의 한 사람을 등용하며 재능이 있고 없는 것은 헤아리지 않고 오직 서로 대거리가 되게 하는 일을 아주 공평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심지어는 대각(臺閣)에서 사람을 탄핵함에 있어서도 저쪽의 한 가지 일을 논핵하려고 하면 반드시 이쪽의 한 가지 일을 논핵하여 반드시 양쪽 것을 다 논핵하는 것을 능사로 삼고 있으니, 비록 논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만약에 그 상대가 될 만한 일을 얻지 못하면 감히 한쪽만을 논핵하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공의(公議)가 시행되지 못하고 정직한 말이 들리지 못하는 것인데, 이는 아래에서 탕평(蕩平)의 실상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검소함을 숭상하시는 교화는 다만 전하의 한 몸에만 행해질 뿐이고 전하를 모시는 사람과 노복(奴僕)과 비첩(婢妾)들에게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옹주(翁主)의 결혼 때 혼수품의 화려함과 호화로운 연회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전해 말하고 있는데, 그것도 전하께서 낭비를 걱정하시고 재물을 아끼시던 처음의 마음에 흠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부마(駙馬)의 띠[帶]를 장사하는 사람이 백금(白金)으로 사서 바쳤다.’고 하는데, 한 개의 서대(犀帶)가 비록 매우 중요한 보물(寶物)이라고는 하더라도 어찌 백금이란 많은 값이 나가겠습니까? 한 개의 띠가 이와 같다면 다른 물품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액정서(掖庭署)의 하례(下隷)가 구타를 당한 것에 대하여 갑자기 장교(將校)를 엄중하게 형벌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장교가 주먹으로 임금의 하례를 구타한 것은 진실로 매우 망령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액정서의 하례가 함부로 날뛰면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도 당연히 엄중하게 금해야 하는 것인데, 유독 장교에게만 형장(刑杖)을 치면서 신문하게 하였으니, 신은 전하의 죄인을 다스리는 정책에 사심(私心)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끝부분에는 이조 참판(吏曹參判) 신방(申昉)을 재신(宰臣)들이 경연(經筵)에서 배척한 것의 공평하지 못한 점과 대신(大臣)이 정리(政吏)를 구속하고서도 한마디의 상소로 인책(引責)하지 않고 의기양양하게 정무에 임하는 것을 논핵하면서 마땅히 견책(譴責)하고 파직(罷職)시킬 것을 명하게 하고, 또 이기헌(李箕獻)이 용렬하고 어리석은 자임에도 갑자기 정언(正言)으로 의망(擬望)된 것과 박규문(朴奎文)은 교활하고 자질구레한 자임에도 외람되게 헌납(獻納)의 임무를 준 것과 권해(權賅)는 북도(北道)의 감영(監營)에 비장(裨將)으로 있을 적에 도신(道臣)이 장계(狀啓)를 올려 파직시켰던 자인데 갑자기 청환(淸宦)의 의망(擬望)에 오르게 된 것과 이자(李滋)는 윤리를 무시하고 의리에 어긋났으므로 향리(鄕里)에서 버림받은 자인데 오히려 대망(臺望)에 주의(注擬)된 것을 논핵하면서 모두 개정(改正)해야 한다고 하였고, 거창 부사(居昌府使) 박동추(朴東樞)는 백성을 침해 학대하여 죄없는 자를 함부로 죽였으니 잡아다가 사실을 밝히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비답하기를,

"상소 중에 경계하도록 한 것에서 간혹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고 아직 세속적인 습성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있다. 그러나 말한 것이 모두 절실하니 매우 칭찬할 만하다. 신방의 일은 그대의 말이 지나치다. 이기헌 등의 일은 모두 말한 대로 시행하겠다. 박동수의 일은 먼 곳의 풍문을 어찌 다 믿을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얼마 후 경연의 신하 중에 이기헌이자의 일을 아뢴 자가 있었는데, 벼슬길을 막지 말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33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2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구휼(救恤) / 왕실-경연(經筵)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註 006]
    계옥(啓沃) : 자신의 마음을 임금의 마음에 주입(注入)시킴.
  • [註 007]
    묘유(卯酉) : 묘시(卯時)에 출근하여 유시(酉時)에 퇴근함.
  • [註 008]
    경수(涇水) : 흐린 물.
  • [註 009]
    위수(渭水) : 맑은 물.

○丁亥/正言沈命說上疏, 言十無實之戒曰:

蕩平之名非不美, 而實效則邈, 賑恤之政非不勤, 而實惠則小, 擇守令選初仕, 無愼簡之實; 搜人材訪幽隱, 無調用之實。 諫臣雖備, 而繩糾之實未見; 經筵雖設, 而啓沃之實靡聞。 奢侈日盛, 節儉之實蔑如; 偏私未祛, 恢公之實遠矣。 贓汚之律雖嚴, 而無懲畏之實; 卯酉之法徒勤, 而無綜核之實。 此直由於殿下好名之心勝, 務實之誠淺故耳。 臣竊觀聖上用人之道, 不計其人之賢愚, 而惟以順受爵祿者向用之; 不問去就之是非, 而惟以恭承職名者專任之。 涇渭合流, 氷炭同器, 官方由是而混淆, 名節職此而壞損, 此上之失蕩平之實也。 廟堂之剡薦、銓曹之注擬, 欲擧此邊一人, 則必擧彼邊一人, 不計才否, 而惟以互對爲至公。 至於臺閣之彈人, 欲論彼中一事者, 必論此中一事, 只以雙擧爲能事。 雖有不可不論者, 若不得其對, 則不敢偏論。 故公議不行, 直聲無聞, 此下之失蕩平之實也。 殿下崇儉之化, 只行於殿下一身, 而不能及侍御僕妾之列。 昨冬潙汭釐降之日, 資裝之華美, 宴需之浮濫, 人多傳說, 此亦有嫌於殿下恤費惜財之初心。 且聞駙馬之帶, 市人以百金貿納云, 一犀帶雖曰至寶, 豈至百金之多耶? 一帶如此, 他物可知。 向者掖隷被打, 遽有將校嚴刑之命。 將校之拳敺王人, 誠甚悖妄。 掖隷之橫行作挐, 亦當嚴禁, 而獨於將校刑訊之, 臣謂殿下之刑政, 未能無私也。

尾論吏曹參判申昉宰臣筵斥不公, 大臣囚禁政吏, 而不以一疏引咎, 揚揚赴政, 宜命譴罷。 且論李箕獻之庸騃儱侗, 遽擬正言之望; 朴奎文之輕狡鄙瑣, 濫授獻納之任。 權賅曾佐北幕, 道臣狀罷, 而猝通淸望; 李滋蔑倫悖義, 鄕里擯棄, 而尙擬臺望, 幷令改正。 居昌府使朴東樞侵暴百姓, 濫殺無辜, 宜令拿覈。 批曰: "疏中勉戒, 間或有未曉予意, 亦未脫俗習者, 而言俱切實, 深用嘉之。 申昉事, 爾言過矣。 李箕獻等事, 幷依施。 朴東樞事, 遠外風聞, 何可盡信?" 後, 筵臣有白箕獻事者, 命勿枳。


  • 【태백산사고본】 25책 33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2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구휼(救恤) / 왕실-경연(經筵)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