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가 제도에 곡식을 주자 하니 대신에게 하문하여, 곡식을 배정하다
임금이 대신(大臣)과 비당(備堂)을 인견하였다.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가 아뢰기를,
"금년의 흉황(凶荒)은 작년에 견주어 더욱 참혹하기 그지없으니, 장차 어떻게 접제(接濟)해야 하겠습니까? 들리는 바에 의하면 호서(湖西)의 양반 가운데 조수(操守)가 있는 사람이 추위와 굶주림에 몰려 소금을 먹고 스스로 죽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사대부의 부녀(婦女)들이 남자의 옷으로 변복(變服)을 하고 도둑질을 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민인(民人)들이 서로 모여 겁략(劫掠)을 일삼는다면 어찌 주군(州郡)을 공격 약탈하는 우환이 없을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4만 석의 곡식을 구획(區劃)·판출하여 성상께서 특별히 비망기(備忘記)를 내리시어 제도(諸道)에 나누어 준다면 조금이나마 급박함을 구제할 수 있어 백성들이 반드시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하고, 또 속히 환곡(還穀)의 봉납을 정지시키라는 명을 내릴 것을 청하고 또 기호(畿湖)와 양남(兩南)을 접제하는 계획에 대해 진달하니, 임금이 드디어 대신(大臣)에게 하문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국가가 의지하는 곳으로 백성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백성의 부모(父母)가 되어 그 적자(赤子)를 범연하게 본다면, 아! 저 창생(蒼生)들이 다시 누구에게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아! 오늘의 생민들은 바로 조종조(祖宗朝)의 적자이며, 성고(聖考)께서 백성을 구휼하시던 성대한 뜻을 내가 직접 우러러 목도한 바 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한밤에도 잠을 잊는다.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이르면 만곡(萬斛)의 곡식이 있다 한들 뒤늦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경기는 상정미(詳定米)276) 2천 석(石)을 전에 이미 백급(白給)하였으나, 2천 석을 또 백급하고 그 나머지 6천석은 이내 군향(軍餉)으로 하라. 호서는 호조의 세태(稅太) 1만 석을 작년에 예에 따라 획급(劃給)하고 혜청(惠廳)의 대동미(大同米) 2천 석을 백급하라. 호남은 상진조(常賑租) 5천 석을 재상(災傷)이 우심(尤甚)한 고을에 백급하고 대동미 7천석을 작년의 전례에 의거하여 진곡(賑穀)으로 유치하게 하라. 영남은 상진조(常賑租) 7천 석을 우심한 고을에 백급하고 대동미 7천 석을 또한 전례에 의거하여 진곡으로 유치하게 하라. 양남(兩南)의 우심한 고을은 신포(身布)와 신공(身貢)을 호서의 예에 의거해 절반을 탕감시키고 환모곡(還耗穀)을 참작해 헤아려 획급하라. 영동의 우심한 고을의 신포와 신공도 절반을 탕감시키고 모곡(耗穀) 전부를 특별히 허급(許給)하라. 해서의 연안(延安)·배천(白川)은 경기의 우심한 고을과 다름이 없으니 상진조 5백 석을 백급하여 진자(賑資)에 보태게 하라. 흉년에 안집(安集)시키는 방법으로는 백성을 동요시키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니, 호서의 상번군(上番軍)은 정번(停番)토록 하라. 진제(賑濟)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오로지 자목(字牧)277) 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의당 수의(繡衣)를 보내어 그 능부(能否)를 염찰(廉察)해야 하나, 때늦게 신칙하고 면려시키는 것보다는 먼저 조처하는 것이 나으니, 그대 방백(方佰)들은 각별히 신칙 면려토록 하라. 그리고 만일 직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전최(殿最)278) 를 기다릴 것 없이 즉시 폄체(貶遞)시키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32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23면
- 【분류】정론(政論) / 구휼(救恤) / 군사-휼병(恤兵)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치안(治安) / 재정-국용(國用) / 재정-공물(貢物) / 재정-전세(田稅) / 재정-역(役)
- [註 276]상정미(詳定米) : 상정법(詳定法)에 의하여 바치는 미곡(米穀). 황해도에 한하여 상정조례(詳定條例)를 정해 전 1결(田一結)에 12두(斗)를 징수하였으나, 그 후 별수미(別收米) 3두를 더하여 15두를 징수하였음. 대동법(大同法) 대신 황해도에 한해 징수한 전세(田稅)임.
- [註 277]
자목(字牧) : 수령(守令).- [註 278]
전최(殿最) : 조선조 때 관리들의 근무 성적을 상·하로 평정하던 법. 상이면 최(最), 하이면 전(殿)이라 한데에서 나온 말로, 경관(京官)은 각 관사의 당상관(堂上官)·제조(提調)가, 외관(外官)은 관찰사(觀察使)가 매년 6월 15일과 12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등제(等第)를 매겨 계문(啓聞)하였음.○癸卯/上引見大臣備堂。 靈城君 朴文秀奏曰: "今年凶荒, 比昨年尤慘, 將何以接濟乎? 聞湖西兩班有操守者, 迫於飢寒, 飮鹵自死, 士夫婦女, 有變着男服, 而爲盜者云。 夫民人相聚劫掠, 則安知無攻掠州郡之患乎? 請以四萬石穀, 區劃料辦, 自上特下備忘, 分給諸道, 則可救一分之急, 而民必感泣矣。" 又請速下還穀停捧之命, 又陳畿湖兩南接濟之策。 上遂詢於大臣, 仍敎曰: "國之所依, 莫過於民, 爲民父母, 恝視赤子, 則吁嗟元元, 更望于何? 噫! 今之生民, 乃祖宗朝赤子, 而聖考恤民之盛意, 予所親仰者。 思之及此, 中夜忘寐。 冬盡春屆, 雖有萬斛, 後時奚用? 京畿則詳定米二千石, 前已白給, 而二千石又爲白給, 其餘六千石, 仍作軍餉。 湖西則戶曹稅太一萬石, 依昨年例劃給, 惠廳大同米二千石白給。 湖南則常賑租五千石白給于尤甚邑, 大同米七千石, 依昨年例留賑。 嶺南則常賑租七千石白給于尤甚邑, 而大同米七千石, 亦依前留賑。 兩南尤甚邑, 身布、身貢依湖西例, 折半蕩減, 還耗參量劃給。 嶺東尤甚邑身布、身貢亦減半全耗, 特爲許給。 海西延 白, 與京畿尤甚邑無異, 常賑租五百石白給, 以補賑資, 而歉歲安集, 莫過於不擾民, 湖西上番軍, 其令停番。 賑濟善否, 專在字牧, 當遣繡衣, 廉察能否, 而後時飭勵, 莫如其先, 咨爾方伯, 各別飭勵。 若有不勝任者, 不待殿最, 其卽貶遞。"
- 【태백산사고본】 24책 32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23면
- 【분류】정론(政論) / 구휼(救恤) / 군사-휼병(恤兵)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치안(治安) / 재정-국용(國用) / 재정-공물(貢物) / 재정-전세(田稅) / 재정-역(役)
- [註 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