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32권, 영조 8년 10월 6일 경신 1번째기사
1732년 청 옹정(雍正) 10년
버려진 아이를 거두면 부릴 수 있게 한다는 명을 각부에 신칙하게 하다
우의정 서명균(徐命均)이 아뢰기를,
"지금 백성의 일이 급박하기가 지난해보다 더 심합니다. 진청(賑廳)으로 하여금 급궤(給饋)하게 하고 싶지만 실로 계속하기가 어려운 근심이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방금 옷이 얇은 군사들에게 유의(襦衣)245) 를 지급하게 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위에 있는 사람이 본시 널리 은택을 베풀 수는 없는 것이니, 사람들이 모두 동포(同胞)의 의(義)를 생각하여 각기 보는 대로 행랑 아래 데려다 두고서 추위와 배고픔을 면하게 해 준다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호조 판서 김재로(金在魯)가 아뢰기를,
"버려진 아이를 구해 살려줄 경우 그 아이를 부릴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명이 있어 외방에는 알린 적이 있는데, 서울에는 반포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각별히 각부(各部)에 신칙하여 집집마다 데려다 기르게 한다면 길거리에서 죽어 넘어지는 참혹한 일은 없게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다시 거행 조목을 내어 각부에 분부(分付)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3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20면
- 【분류】구휼(救恤) / 행정(行政) / 풍속-풍속(風俗)
- [註 245]유의(襦衣) : 동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