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31권, 영조 8년 1월 13일 신미 2번째기사
1732년 청 옹정(雍正) 10년
주강에 나가니, 송성명이 철옹 산성에 양식을 늘리는 일 등을 청하다
임금이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지경연(知經筵) 송성명(宋成明)이 아뢰기를,
"이번에 칙사(勅使)를 전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신이 철옹 산성(鐵瓮山城)을 두루 살펴보았더니, 실로 하늘이 만든 관방(關防)이었습니다. 옛날에 상신(相臣) 황희(黃喜)가 처음으로 이 성을 설치하면서 규모와 제도가 넓고 원대하였는데, 요즈음에는 등한시하여 내버려두어 양식도 점점 줄어들어 현재 남아 있는 수효가 4만 석(石)에 불과하니, 묘당으로 하여금 본도(本道)에서 구획(區劃)하도록 거듭 경계하여 10만 석을 한도로 머물러 두게 해서 환란에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송성명이 어천 역관(魚川驛館)을 영변 성내(寧邊城內)로 옮기기를 청하고, 또 북관(北關)의 친기위(親騎衞)018) 예(例)에 의거하여 별무사(別武士) 수백 명을 영변에다 창설해서 배치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묘당으로 하여금 상확(商確)해서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31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95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018]친기위(親騎衞) : 함경도(咸鏡道) 출신으로 궁재(弓才)·마재(馬才)·힘이 센 자를 뽑아서 병영(兵營)과 감영(監營)에 둔 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