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30권, 영조 7년 10월 17일 정미 3번째기사
1731년 청 옹정(雍正) 9년
비변사에서 백령도의 말을 대청도로 옮기고 그 땅에 농사를 짓게 하자 하다
비변사(備邊司)에서 아뢰기를,
"당선(唐船)의 왕래가 요즘 더욱 심해졌습니다. 백령도(白翎島) 한 진(鎭)은 해서(海西)에서 으뜸가는 요충지인데, 도민(島民)이 매우 적어서 당선을 몰아내고 제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목장(牧場)은 비옥하여 좋은 밭을 만들 만한데, 대청도(大靑島)는 바로 본도(本島)와 서로 바라보이는 곳입니다. 갑신년481) 에 본진(本鎭)에서 보고한 것으로 인해 태복시(太僕寺)에서 목마(牧馬)를 대청도에 이송(移送)했다 합니다. 지금 만약 백령도의 나머지 말을 대청도에 다 옮기고, 백령도에 있는 옛목장은 백성들에게 농사지어 먹도록 허락해 준다면, 땅은 이미 경작할 수 있고 백성도 또한 많이 들어갈 것이니, 그렇게 되면 비단 당선을 몰아 내는 힘을 얻을 뿐만 아니라, 태복시의 마정(馬政)에도 유익할 듯합니다. 도신(道臣) 서종옥(徐宗玉)의 말도 역시 그렇다고 하니, 청에 따라 시행함이 편리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30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81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 교통-마정(馬政) / 외교(外交) / 농업(農業)
- [註 481]갑신년 : 1704 숙종 30년.
○備邊司啓言: "唐船往來, 近尤甚焉。 而白翎一鎭, 最爲海西要衝, 島民甚尠, 無以驅制唐船。 牧場膏沃, 可作良田, 而大靑島, 卽本島相望地也。 甲申年, 因本鎭所報, 自太僕, 移送牧馬於大靑云。 今若以白翎餘馬, 盡移大靑, 白翎所在舊牧場, 許民耕食, 土旣可耕, 民亦多入, 則不但得力於驅逐唐船, 似有益於太僕馬政。 道臣徐宗玉之言, 亦以爲然, 依請行之便。" 上允之。
- 【태백산사고본】 23책 30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81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 교통-마정(馬政) / 외교(外交) / 농업(農業)